‘비리 온상’ 재향군인회, 대수술 필요하다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5.12.08 17:04
  • 호수 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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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풍 회장, 비리 혐의로 결국 구속…‘자진 사퇴’ 여부 두고 내부 갈등
조남풍 향군 회장이 11월3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1000만 전역 군인을 위한 보훈단체인 대한 민국재향군인회(이하 향군)의 현직 회장이 결국 구속됐다. 현직 회장이 재임 기간 중구속된 것은 향군 63년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금품 선거 의혹과 인사 전횡 등으로 논란을 빚었던 조남풍 회장이 인사 청탁과 납품 편의 등의 대가로 총 5억원가량의 금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11월30일 구속된 것이다. 같은 날 열린 조 회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에서 법원은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면서 검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하지만 조 회장 측은 회장직 자진 사퇴의사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어 조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반대파와 현 집행부 간에 내부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현직 회장이 구속되고 전임 회장 역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비리 온상’으로 전락한 향군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중국 前 고위인사 조카와 돈 거래 혐의

검찰에 따르면, 조 회장은 올해 4월 취임을 전후로 사업 관련 이권을 대가로 향군 산하 기업체의 납품업체에서 금품을 수수하고, 취임 이후에는 산하 기업체 대표와 기관장 선임과 관련해 향군 내부 인사들로부터 인사 청탁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 조 회장은 중국 전 고위층의 친인척과 돈거래를 한 혐의도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재중 동포인 조남기 전 중국 인민정치협회 부주석의 조카 조아무개씨가 조 회장의 빚 4억원을 대신 갚아주고, 그 대가로 조 회장이 조씨에게 중국 제대군인회와 추진 중인 관광 사업권을 넘겨받을 수 있도록 해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조 회장은 검찰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조씨와의 금전 거래에 대해서도 “조남기 전 부주석의 조카는 같은 집안 출신”이라면서 불법적인 돈 거래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조 회장의 구속은 조 회장 측이 지난 4월 치러진 향군 회장 선거 과정에서 금품 살포를 했다는 의혹을 다룬 지난 7월 본지 단독 보도<본지 1342호 ‘1인 500만원’ 대의원 매수 의혹>가 있은 지 5개월이 지나서다. 검찰은 지난 8월 향군 노조 등 향군 정상화 모임이 조 회장을 고발한 후 광범위한 수사를 벌여왔다. 검찰은 조 회장 구속 사태의 단초가 된 금권선거 의혹 등 나머지 비리 혐의에 대해서도 추가 조사를 벌인 후 정식 기소할 방침이다.

조 회장이 비리 혐의로 결국 사법처리되면서 향군 안팎에서는 조 회장의 자진 사퇴에 대한 압박이 커지고 있다. 향군 관리·감독 기관인 국가보훈처는 12월1일 “조회장은 국가 안전 보장을 위한 제2의 보루인 향군의 수장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무엇이 향군을 위한 길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면서 사실상 자진 사퇴를 요구했다.

향군 시·도 회장으로 구성된 시·도 회장 단도 12월3일 모임을 갖고 조 회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시·도 회장 13명 중 10명이 결의문 채택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도 회장단은 결의문에서 “조 회장의 구속은 향군 창설 이래 현직 향군 회장이 주범이 된 사상 초유의 초대형 사건”이라면서 “향군의 명예를 심대하게 손상시킨 조 회장의 즉각 퇴진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특히 시·도 회장단은 구속된 조 회장뿐만 아니라 취임 후 본회 및 산하 기업체에 들어간 선거 캠프 출신 임직원의 즉각적인 퇴진도 요구했다.

하지만 조 회장 측은 자진 사퇴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조 회장의 측근 인사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조 회장의 사퇴 여부는) 검찰이 정식 기소를 하고 법원의 판결에 따라 조 회장 본인이 결정할 사안이고, 모든 절차는 향군법과 정관 등 관련 규정에 근거해야 한다”면서 “관련 법·규정을 무시한 채 자진 사퇴를 무조건 주장하는 것은 월권행위에 다름없다”고 일축했다.

현행 향군법이나 정관에 따르면, 조 회장이 기소돼 재판에서 유죄를 인정받더라도 사퇴를 강제할 수 있는 법 규정이 없다. 이에 따라 조 회장이 최소한 대법원 확정 판결 전까지는 사퇴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향군 정상화 모임 관계자는 “조 회장 측이 자진 사퇴 요구에도 ‘법대로 하겠다’는 것은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지켜보겠다는 것”이라면서 “일종의 시간 벌기용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조 회장의 비리 의혹과 사퇴를 주장해온 향군 노조와 향군 정상화 모임 등은 조 회장의 해임을 의결할 임시총회 개최를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향군 개혁 위한 큰 틀의 대책 나와야

향군 정상화 모임 회원들이 11월26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조남풍 회장의 구속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향군 정관 제18조에 따르면, 회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거나, 대의원 3분의 1 이상의 요청이 있으면 임시총회를 소집할 수 있다. 재적 대의원 과반이 출석하면 총회가 성립되고, 출석 대의원 과반 이상이 찬성하면 본부 임원에 대한 해임을 의결할 수 있다. 현재 향군 정상화 모임은 전국 약 390명에 이르는 대의원을 대상으로 임시총회 개최를 요구하는 서명 작업에 들어갔다. 향군 정상화 모임 측은 총회 개최 요구 정족수보다 많은 250여 명의 대의원에게 서명을 받는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임시총회가 개최된다고 하더라도, 조 회장의 강제 해임을 추진하는 향군 정상화 모임 측과 퇴진을 거부하고 있는 현 집행부 간에 무력 충돌이 빚어질 개연성이 작지 않다.

조 회장의 구속 사태로 인해 그동안 향군 내부에서 벌어진 각종 부정과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대대적인 향군 개혁이 진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동안 향군 내부 비리에 미온적으로 대처해왔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보훈처는 조 회장의 금권선거 의혹과 인사 전횡 등 비리 문제가 도마에 오르자 향군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특히 보훈처는 향군 회장이 보훈처의 시정조치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회장 직무를 정지하는 방안도 마련할 방침이다. 그 외에도 부정 선거 논란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향군 회장 선거는 선거인단을 대폭 확대하고 선거관리위원회 감독 아래 치르도록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단순히 향군 회장 교체와 회장 선거제도 개선만으로는 고질적인 병폐를 보여주고 있는 향군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구속된 조 회장뿐만 아니라 전임 회장도 재임 시절에 향군 이권과 관련해 특정인과 부적절한 돈 거래를 한 의혹이 제기돼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본지 1356호 전·현직 향군 회장, 검찰 수사선상 올라>

이에 따라 급조한 일회성 제도 개선책을 내놓기보다는 향군이 무려 5000억원이 넘는 빚더미에 앉으면서 부실화의 길을 걷게 된 배경과 원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원인 분석을 토대로 향군 내부 비리 근절, 사업 투명성 제고, 경영 정상화, 제대 군인 복지사업 주력 등을 할 수 있는 큰 틀의 향군 개혁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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