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균 위원장 끌어내려던 신도들은 고액 시주자들”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5.12.10 17:09
  • 호수 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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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고액 시주자들 눈치 보나’ 비판…내부에선 “힘들게 하지 말고 빨리 나갔으면”

조계종 화쟁위원회가 주재하는 신도회 비상총회가 열렸던 12월2일,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조계사에는 오전부터 민주노총 관계자, 신도, 취재진 등이 몰려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경찰도 조계사에 기동대 400여 명, 형사 100여 명 등 총 500여 명을 배치해 삼엄한 경계를 유지했다. 조계사 주변이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이날 조계사는 2차 민중총궐기대회 다음 날인 12월6일까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거처를 제공하기로 했다. 한 위원장 측의 신변 보호 요청을 받아들였지만 시한부인 셈이다. 이날 합의 이후 조계사를 둘러싼 긴장감은 다소 완화된 듯 보였지만, “6일 이후 한 위원장의 출구전략을 두고 조계종과 민주노총의 고민과 갈등은 여전하다”는 것이 조계종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의 말이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조계사 피신이 장기화되고 있는 12월2일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경찰이 경비근무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우리도 힘들거든. 지킬 건 지켜줘야지”

지난 12월2일 본지와 어렵게 만난 조계사 종무실 관계자의 입에서는 “어렵다”는 말만 무한 반복돼 나왔다. 11월16일부터 조계사에 은신 중인 한 위원장이 장기 체류할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들은 후였다.

한 위원장은 지난 11월1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를 주동한 혐의로 경찰의 수배 대상에 올랐다. 그가 조계사로 숨어든 이후 우리나라 불교의 최대 종파인 조계종의 대표 사찰 조계사는 연일 언론의 도마에 올랐다. 조계사를 둘러싸고 ‘범법자 은닉처’ ‘사회적 약자의 마지막 피난처’ 등 엇갈린 주장들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조계사 내부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화쟁위가 12월5일 예정된 2차 민중총궐기대회의 평화 집회를 중재하겠다고 나선 가운데, 승려와 신도들이 세대별·이념별로 갈린 채 설왕설래하고 있다.

급기야 11월30일 일부 조계사 신도회 소속 신도들이 경내 관음전에 머무르고 있는 한 위원장을 강제로 끌어내려고 시도하다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조계종과 경찰 등에 따르면, 조계사 신도회 소속 10여 명이 이날 오후 2시쯤 “한상균 위원장이 조계사에 들어와 신도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조속히 조계사에서 나가 달라”고 요청하다가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

10년간 조계종 중앙신도회 일원으로 활동해왔다는 한 신도는 “종단 내에 다양한 정치적 의견들이 있어왔지만, 이렇게 조직화돼 행동으로 옮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우리 신도들의 스펙트럼은 워낙 다양하다. (한 위원장을 끌어내려고 했던 신도회 사람들은) 말하자면 있는 집 분들이다. (시주를 많이) 내는 분들이다.”

조계사 종무실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11월30일 한 위원장과 몸싸움까지 벌인 것으로 알려진 10여 명의 조계사 신도회 회원들은 고액 시주자들이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아무래도 사찰 경제가 (어렵다 보니) 고액 시주자들의 의견에 힘이 실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교단이 고액 헌납자의 눈치를 보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점점 더 그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한 종교학자는 “종교계의 ‘자본 눈치 보기’는 비단 불교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신도회’ 등 교단 내 계층 논리에 따른 집단화가 이뤄지는 것 자체가 이런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계사에서 만난 한 신도는 “요즘 절·교회 할 것 없이 돈 많이 내는 신도 눈치를 본다. 신도들 사이에서 ‘얼마를 스폰(시주)하느냐’를 두고 계급화하는 일부 신도들도 있다”면서도 “교단으로서는 살림 운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12월1일 서울 조계사 관음전에서 창문 틈으로 모습을 드러내 손을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돈 많이 내는 신도들 눈치 본다”

일부 신도들이 벌인 사상 초유의 월권행위를 두고 그 배경에 대한 추측이 무성하다. 보이지 않는 경제논리가 작용한 것이라는 추측 외에도 공권력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민주노총은 12월1일 “(한 위원장에 대한) 폭력 사태에 경찰이 개입된 정황이 있다”며 조계사에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이영주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물의를 일으킨 신도들은 한 위원장과의 승강이 과정에서) 경찰과 전화를 하며 실시간으로 경찰에게 상황을 중계했다”고 주장했다. 한 조계사 신도는 “신도회 일원들이 경찰·국정원 등 공권력의 개입이 의심될 정도로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마치 뭔가 주문에 맞춰 움직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이세용 조계사 종무실장은 “관련 신도회 회원들이 조계사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 돌발적으로 행동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종무실장은 “(그들의) 섣부른 행동에 대해 내부적으로도 지탄하는 목소리가 높아 자숙 중이다”고 밝혔다.

서울시 한복판에 자리 잡은 조계사를 찾아든 ‘몰래 온 손님’은 한 위원장이 처음이 아니다. 2002년 조계사에 발전노조원들이 숨어들자 경찰은 체포조를 투입해 이들을 검거했다. 당시 공권력 투입이 금기시되는 종교시설에 경찰이 들어왔다는 이유로 경찰은 승려와 신도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샀다. 결국 당시 종로경찰서장이 경질되고 서울경찰청장이 사과를 하며 사태가 진정됐다. 이후 조계사에 경찰이 투입된 적은 없다.

2008년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간부 등이 조계사에 몸을 맡겼다. 2013년 12월에는 철도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수배된 박태만 당시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이 은신했다.

지난 2008년 조계사에서 114일간 피신한 채 농성한 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과거에도 우리를 두고 조계사 내부에서 설왕설래가 있었다”며 “하지만 당시 조계사 총무원장이던 지관 스님이 우리를 보호해주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내부 상황은 깔끔하게 정리됐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결국 모든 것은 조계사의 수장인 총무원장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 총무원 쪽에서 모호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계사 내부에서 “담 쌓자” 목소리도 나와

조계사 내부의 목소리는 어떨까. 당시와 지금 조계사의 공기는 사뭇 다르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한 조계사 고위 관계자는 “요즘 조계사 사람들이 담장 쌓고 문 걸어 잠그자고 한다”며 “왜 우리가 피해를 봐야 하느냐고들 하는데, 솔직히 나도 (한 위원장이) 더 이상 우릴 힘들게 하지 말고 빨리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의 체류가 장기화하면서 조계사는 여러모로 부담을 느끼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조계사 측은 한시적으로 한 위원장의 신변 보호를 받아들였지만, 민주노총 관계자 및 외부 인사들이 한 위원장과 접촉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그만큼 부담스럽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세용 종무실장은 “(한 위원장이 나가기로 약속한) 6일에 서로 좋은 모양새로 일이 잘 마무리되길 바란다”며 “그때까지 조계사 측은 불편을 감내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상균 위원장은 조계사 관음전 3층의 6.6㎡(약 2평) 남짓한 작은 독방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템플스테이에 사용되는 공간이다. 조계사 측 요청에 따라 한 위원장을 제외한 이영주 사무총장 등 나머지 민주노총 관계자들은 조계사 경내에서 나온 상태이며, 제한적으로 관음전을 출입하고 있다.

 

명동성당에서 조계사까지 
‘피신처’ 변천사

 

조계사는 경찰의 추적을 피할 수 있는 ‘마지막 은신처’로 여겨지고 있다. 서울 광화문 사거리와 청와대에서 겨우 1~2㎞ 떨어져 있다는 지리적 이점과 더불어 입구가 한정돼 있거나 폐쇄적인 장소가 아닌, 드나듦이 자유로운 열린 공간이라는 공간적 특성 때문이다.

조계사가 주요 시국 사건에 연루된 ‘도망자’들의 피신처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부터였다. 1980년대 공안 탄압을 피해 도망친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주로 머무르던 곳은 종로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와 명동성당이었다. 2000년대 들어 신도들의 불편함을 이유로 이들 종교집단에서 노동계 인사들의 보호 활동에 선을 긋기 시작하면서 피신처의  역할을 조계사가 이어받게 됐다.

조성택 고려대 교수(철학과)는 “공권력 행사가 쉽지 않은 도심 속 주요 종교시설물은 그간 일종의 ‘소도(蘇塗)’ 역할을 해왔다”며 “고통받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이 종교 본연의 역할로 정치적 판단에 앞서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소도는 삼한시대 천신(天神)에게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지역으로, 죄인이 이곳으로 도피하면 잡지 않는 관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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