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한 푼 안 내고 10억 상속할 수 있다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5.12.10 17:27
  • 호수 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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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고액 자산가 상속에 유리해지는 세법…10억 이상 상속자 19%가 세금 면제

탄생과 함께 부(富)를 물려받는 사람이 있다. 김복동씨가 그렇다. 유통기업을 운영하는 김씨의 아버지는 외아들인 그가 태어나자마자 2000만원을 줬다. 그리고 11세 때 2000만원, 21세 때 다시 5000만원을 김씨의 통장에 넣어줬다. 이후에도 김씨는 10년에 한 번씩 아버지에게 5000만원씩을 받았다. 이렇게 61세까지 김씨는 아버지에게 총 2억9000만원을 받았다.

그동안 김씨 아버지 사업은 번창했다. 유통기업은 매출 2000억원대의 회사로 성장했다. 김씨는 40대 때부터 아버지의 기업에 입사해 일을 도왔다. 시간이 흘러 김씨 아버지가 사망했다. 김씨 아버지는 유산으로 운영하던 기업의 경영권을 차지할 수 있는 500억원대 주식을 아들에게 물려줬다. 5000만원짜리 승용차와 2억원의 금융 자산도 함께였다.

더불어 김씨는 아버지가 살던 10억원짜리 서울 근교 고급 빌라도 물려받았다. 자기 소유의 집 없이 기업 임원 사택(社宅)에 살던 김씨는 주민등록상에는 부모님과 계속 같이 사는 것으로 돼 있었다. 이제 김씨는 500억원대 기업 주식과 총 4억9000만원이 든 통장, 5000만원대 자동차, 10억원대 집의 ‘주인’이 됐다. 이 과정에서 그가 낸 세금은 ‘0’원이었다.

ⓒ 일러스트 김세중

정부 “상속세 줄이겠다” 입장 견지

김씨의 사례는 12월2일 국회를 통과한 2015년 세법 개정안을 포함해 현행 세법상 가능한 자녀 상속·증여 방법을 가상으로 구성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유사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만큼 고액 자산가들이 상속을 받는 과정에서 세금을 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원석 정의당 의원실이 국세통계연보를 통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상속세 결정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 5년간 상속된 146만 건 중 2만7000여 건에만 상속세가 부과됐다. 이는 세금을 낸 상속자 비율이 전체의 1.9%에 그친다는 얘기다. 상속 재산이 10억원이 넘는 고액 자산가들도 마찬가지다. 10억원 이상 상속 사례에서 19.1%가 세금을 면제받았다.

‘상속자’들이 이렇게 세금을  내지 않는 까닭은 해마다 세법이 그들을 위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런 추세는 계속됐다. 올해 10년 이상 동거한 자녀가 적은 세금을 내고 주택을 물려받을 수 있게 됐다. 2014년에는 가업 상속 공제 폭이 커졌고, 자녀 증여세 공제 범위도 확대됐다. 더구나 정부는 아예 “상속세를 줄이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법 개정 행태는 조세 정의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김유찬 홍익대 세무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세법을 완전한 누더기로 만들고 있다”면서 “선거를 앞두고 지지 계층인 고액 자산가들에게 유리한 증여·상속세 법안이 계속 통과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 김경율 회계사도 “상속세는 그동안 과세되지 않았던 음성적인 거래를 일괄적으로 마지막에 검사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면서 “국세청이 상속세를 걷을 때 사망자의 죽기 전 10년 계좌 거래까지 들여다본다. 자산가들은 이것을 제일 두려워한다. 정부가 상속세를 줄인다고 하는데 자산의 대물림을 막기 위해 꼭 있어야 할 법”이라고 말했다.

■ ‘효도장려법’, 자산가에게만 이득

일명 ‘효도장려법’은 부의 대물림을 심화하는 법으로 지목된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 법은 부모와 10년 이상 함께 산 무주택 자녀가 집을 물려받을 때 내야 하는 상속세를 큰 폭으로 깎아주는 법안이다. 정부는 이를 무주택 자녀가 부모를 봉양한 비용과 부담 등을 고려하고, 효도를 장려하기 위해 신설한 법안이라 설명한다.

하지만 뜯어보면 이로 인해 이득을 보는 이는 자산가다. 혜택을 보는 이는 5억원 이상의 상속 재산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현행 세법에서 이미 자녀는 5억원까지는 주택 상속세를 전혀 내지 않는다. 이 때문에 ‘효도장려법’은 5억원에 추가로 다시 혜택을 얹어주는 법이다. 가령 자산가가 10억원의 집을 상속하려 하는데, 법 요건을 충족한 자녀라면 상속세를 안 내도 된다.

결국 ‘효도장려법’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은 극소수다. 박원석 의원실 조사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재산을 상속받은 사람(28만2232명) 중 5억원 이상 상속자는 3.5%(9725명)에 그쳤다. 다시 말해 ‘효도장려법’은 상위 3.5%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법인 셈이다.

더구나 주소지만 부모와 같게 해놓고 사실상 별거하더라도 법적 기준을 충족할 수 있다. 실제로 함께 살지 않아도 국세청이 이를 일일이 잡아낼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편법 상속에 대한 우려도 크다. 박원석 의원은 “연말정산 파동 이후 공평 과세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더욱 높아지고 있는데 부의 무상 이전에 대한 정상 과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가업상속공제, 부의 상속 부추기는 법

‘가업상속공제’제도도 부의 세습을 부채질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 제도는 가업(家業)으로 정부가 인정한 기업을 자녀에게 물려줄 때 상속세를 걷지 않겠다는 것이 골자다. 정부가 밝히는 원래 법 취지는 ‘중소기업의 활발한 가업 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상속세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면제해주는 상속세의 한도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이 법으로 기업이 공제받을 수 있는 한도는 1억원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부터 공제 한도는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2008년에 30억원으로 뛰더니 2009년 최대 100억원이 됐다. 2012년에는 최대 300억원까지 공제 한도가 상승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에는 가업 상속으로 최대 500억원까지 상속세를 내지 않도록 바뀌었다.

적용 대상 기업도 늘어났다. 이제 중소기업이 아닌 중견기업도 이 제도의 혜택을 볼 수 있다. 2011년 매출 1500억원 미만의 기업에만 적용되던 상속 혜택이 2014년부터는 3000억원 미만 기업에도 적용되도록 바뀌었다. 이는 대다수 기업이 이 제도의 요건만 맞추면 자녀에게 상속세를 내지 않고 기업을 물려줄 수 있다는 의미다. ‘매출액 3000억원 미만’이라는 조건에 해당하는 회사는 한국 전체 회사 중 99.78%다.

게다가 본 취지와 다르게 제도가 자산가의 상속 창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미 그런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 한 상속 전문 세무사는 “가업 상속 기업 요건이 까다롭게 보이더라도 상속을 위해 맞추려고 하면 큰 문제가 안 될 수 있다”면서 “가업상속공제에 20년 동안 기업을 운영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어도 거액의 재산이 있는 입장에서는 이미 40대나 50대부터 상속을 생각한다. 이를 활용해 상속세를 내지 않으려고 긴 계획을 짜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은 이런 상황에서 2014년과 올해 가업상속공제 한도를 또 높이자고 제안했다.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은 가업상속공제 적용 대상 기업 기준을 매출액 30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확대하고, 공제 한도도 1000억원까지 올리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야당 의원들의 거센 반발에 막혀 통과가 무산됐다. 박영선 의원은 “가업 승계 세제는, 기업은 자식이 반드시 세습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상징성이 강한 대표적인 나쁜 제도”라고 밝혔다.

강석훈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 위원장이 11월26일 국회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자녀에 일반증여·창업증여도 쉬워져 논란

세무업계는 최근 의뢰인에게 “자녀가 어릴수록 증여를 서두르라”는 조언을 많이 한다. 10년마다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증여 한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2014년부터 성년 자녀에게 10년마다 5000만원씩을 세금 없이 줄 수 있게 됐다. 이는 기존 3000만원에서 늘어난 수치다. 미성년 자녀에게도 기존 1500만원에서 2000만원까지 세금 없이 증여할 수 있게 바뀌었다.

김경율 회계사는 “10년마다 자녀에게 5000만원을 증여하도록 한 것은 업계에서 많이 쓰이는 방법”이라면서 “자식에게 재산 증여를 서두르라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수저계급론이 현실화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부모가 자녀의 창업 자금을 대주면 세제 혜택을 주는 부분에도 논란이 많다. 이번 세법 개정안에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창업 자금 중 최대 50억원까지 과세를 미뤄주도록 했다. 단, 신규 직원 5명을 고용하는 조건이다.

전문가들은 고용을 늘린다는 취지의 이 법안이 실효성이 없고 오히려 부의 이전이 쉬워질 것이라 말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낸 ‘2015년 주요 세법 개정안 평가 의견서’는 이 법안을 두고 “창업 자금 지원 세제 혜택은 고용 확대를 빌미로 오히려 부의 대물림을 심화한다”면서 “갈수록 상속 자산 비중이 커져가는 상황에서 이런 상속 자산에 대한 세제 지원 혜택은 청년들에게 좌절감과 박탈감만 안길 것”이라고 비판했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팀장도 “창업 관련이라 하더라도 부의 세습에 대한 세제 지원 혜택은 형평성에 위배된다”라고 지적했다. 김유찬 교수도 이에 대해 “세습자본주의를 더 강화시키는 개정안이며 우리 사회의 아킬레스건인 형평성 문제를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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