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건너 있어도 우리 문화재는 ‘한국’것이다
  • 정준모 | 前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미술비평 (.)
  • 승인 2015.12.10 17:44
  • 호수 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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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유출 문화재, 국내 환수만이 정답일까 해외 박물관의 ‘한국관’ 지원 등 모색해야

11월29일 밤 홍콩에서 열린 서울옥션 제17회 홍콩 경매에서 18억원 상당의 가격에 조선시대 ‘달 항아리’가 한국인에게 낙찰되었다. 사람들은 마치 자기 일인 양 환호했다. 일본으로 반출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듯 문화재 환수에 적극적이다. 2012년 10월 일본에서 ‘금동여래입상’과 ‘관음보살좌상’을 훔쳐 들여온 도둑들마저 마치 의로운 일을 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이탈리아 출신 빈센트 페루자는 1911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훔쳐 달아났다. 그리고 발각되어 재판을 받으면서 “이탈리아 사람인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가 고국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해 훔쳤다”고 주장했고, 그는 영웅이 되어 고작 6개월의 형을 받았다. 우리나라건 이탈리아건 어느 나라든지 해외에 유출된 자국의 문화재를 환수하는 데 열광하고, 때로는 비합법적인 방법까지도 용인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인다.

11월29일 열린 서울옥션 제17회 홍콩 경매에서는 조선시대의 달 항아리가 약 18억원에 한국인에게 낙찰됐다. ⓒ 연합뉴스

하지만 내놓지 않으려는 이른바 ‘약탈국’의 경우는 입장이 다르다. 그리스와 이집트가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유물 반환을 요구할 때마다 “당신 나라 유물은 맞지만 인류의 것이기도 하다. 만약 이 유물들이 당신들 나라에 있었다면 지금처럼 온전하게 보관될 수 있었을까”라는 논지로 대응했다. 문화재 환수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반환을 요구할 때 확실하게 약탈 또는 불법 반출된 것임을 증명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증빙할 자료를 찾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해외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 16만342점

그런 점에서 경매는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문화재 환수 방법이다. 중국의 경우에도 국영 ‘폴리옥션’이 나서서 자국의 해외 유출 문화재를 사들인다. 하지만 경매를 통해 자국의 문화재를 회수해 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재외 문화재가 경매에 나와야 한다. 나왔다 하더라도 돈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더 좋은 방법은 재외 문화재를 보유한 소장가들이 기증하는 방법이다. 몇 년 전 유명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 소장했던, 원명원(圓明園·중국 베이징에 있는 청나라 때의 황실 정원)에 있던 12지신상 중 쥐와 토끼의 두상(頭像)이 경매에 나왔다. 중국은 경매를 제2의 약탈이라며 반발했고, 그 경매를 담당했던 크리스티의 회장 프랑수아 피노가 직접 사들여 중국에 기증하면서 일단락됐다. 기증을 통해 문화재가 귀국할 수 있었던 예는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있다. 한국 기와를 모은 이우치 컬렉션이나 고려 장신구가 주를 이루는 하치우마 다다스(八馬理)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문화재 환수에 대한 우리의 남다른 열정에도 불구하고 나라 살림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2012년에야 합법적인 환수와 재외 문화재 활용 및 현황 파악을 위해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이 설립됐다. 이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2015년 10월 현재, 국외에 소재한 우리 문화재는 총 20개국에 걸쳐 16만342점에 이른다. 그중에는 약탈당한 유물도 있고 공식 또는 비공식 절차를 통해 거래된 것도 있다. 일본에만 42%에 달하는 6만7708점이 있고, 미국에 4만2000여 점, 독일에 1만여 점이 있다. 나머지가 17개국에 흩어져 있다.

그런데 과연 환수만이 우리 문화재를 지키고 가꾸는 방법일까 하는 점에는 이견이 있다. 문화재 환수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역적’으로 몰릴 수도 있는 것이 우리 사회 분위기다. 이를 내놓고 이야기하기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환수를 주장하는 측은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는 논지를 편다. 국내로 반입할 수 있다면 응당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불법으로 약탈해 갔을망정 우리는 합법적으로 되찾아야 한다는 데 있다. 그동안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지금까지 환수한 문화재는 6%에 불과한 9700여 점에 그치고 있다.

특히 일제 강점의 역사와 어수선했던 해방 공간, 그리고 한국전쟁 때 많은 문화재가 반출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피해자이고 그래서 문화재 환수 의지가 더 강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대안으로 환수 외에는 길이 없는 것일까. 그런 점에서 재외 문화재를 수장하고 있는 외국의 박물관·미술관들이 ‘한국관’이나 ‘한국실’을 설치할 수 있도록 지원해 오히려 재외 문화재가 더 빛나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사실 많은 사람이 외국 주요 박물관의 한국관을 보면서 중국관·일본관과 비교하며 분통을 터뜨리지만, 실은 자국의 지원으로 거개가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해외에 반출된 유물들이 전시품의 대종을 이룬다는 점에서 우리 뜻이 부족해 빚어진 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가 외면했던 옛 가구들 수집한 이방인

한국의 문화재를 외국인이나 외국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한국의 문화유산이다. 마치 다른 누군가가 피카소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해도 작품은 영원히 피카소의 것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번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미국 미네소타 주 와이즈만 미술관(Weiseman Art Museum)의 한국 고가구 컬렉션을 조사해 발간한 보고서를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이곳에 소장된 190점의 한국 고가구는 1967년부터 11년간 풀브라이트재단 교육위원장으로 서울에 근무했던 에드워드 레이놀즈 라이트(Edward Reynolds Wright Jr, 1931~88년)가 수집한 가구들인데, 그가 미국으로 귀국하면서 가지고 간 것들이다. 한국 가구에 반했던 그는 미국과 일본에 거주하면서도 꾸준히 가구 수집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고, <한국의 가구: 우아함과 전통>(1984년)이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우리가 잘살아보자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발버둥칠 때 조용하게 우리의 문화재를 모아 간직하고 이를 미술관에 기증해 영원한 삶을 부여한 인물이다.

우리에게 ‘찬밥’ 신세였던 조선 후기 세간들을 모아놓은 라이프치히 그라시 민속박물관은 3000여 점의 한국 컬렉션을 갖고 있다. 이곳 소장품은 19세기 말 한국에 왔던 고종의 정치 고문이었던 묄렌도르프(1848~1901년)와 상인 쟁어의 기증품이 대부분이다. 이렇듯 우리 문화재를 평가하고 가치를 부여해준 외국인들의 뜻도 매우 중요하다.

올해 초 귀환한 <덕종어보>의 경우, 이를 소장한 시애틀미술관의 학예직들은 정작 이 유물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박사 과정을 밟으며 유급 인턴으로 들어간 최보경씨란 한국 학생에게 연구하도록 지시했고, 이를 범상치 않게 여긴 최씨가 한국의 관련 기관에 사진과 자료들을 보내 문의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 그 후 기증자와 미술관의 이해와 협력으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처럼 연구 인력을 한국 문화재를 소장한 해외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파견해 자발적으로 연구하고 전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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