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농사
  • 김태일 |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 승인 2015.12.10 17:48
  • 호수 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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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은 한 해에 농사를 두 번 짓는다. 한 번은 자신의 땅 위에서, 한 번은 아스팔트 위에서. 농민들은 봄·여름에는 논밭에서 일을 하고. 가을 추수를 마친 후에는 농업·농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길거리로 나온다. 농민들이 이렇게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집단행동에 나서는 것을 ‘아스팔트 농사’라고 말한다.

농민들에게 아스팔트 농사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농민들은 본성적으로 유순하고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낮은 계급성을 가진 농민들을 가리켜 ‘자루 속에 든 감자’라고 했다. 농민들이 단결할 줄 모른다는 뜻이다. 이런 농민들이 아스팔트 위로 나오게 된 것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다. 197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함평 고구마 사건을 알고 있을 것이다. 농협이 고구마 수매 약속을 지키지 않아 피해를 보게 되자 길거리에 고구마를 쌓아두고 항의한 사건이었다. 집회라고 해봐야 가톨릭교회에서 기도회를 연 것이 고작이었지만, 이 사건은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박정희 대통령의 ‘강제 농정’에 대한 농민들의 저항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아스팔트 농사’는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1980년대에는 농산물 수입 개방 탓에 고통받던 농민들이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호소하는 집단행동을 계속했고, 이 과정에서 ‘아스팔트 농사’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가톨릭농민회, 기독교농민회에 이어 농민들 자신의 힘으로 만든 결사체가 등장하기도 했다.

보수적이며 단결하지 못하는 ‘자루 속에 든 감자’라고 놀림을 받던 농민들이 아스팔트 위로 나섰다는 것은 그들의 처지가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농민들이 아스팔트 위로 나선 것이 아니라 아스팔트 위로 내몰린 것이다. 뭔가 절실한 이유가 있지 않고는 저 ‘겁 많은’ 농민들이 아스팔트 위로 나설 리가 없다.

이번에 전국 방방곡곡에서 올라와 서울광장에 모인 많은 농민도 그랬을 것이다. 뭔가 절박한 이야기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농민들이 왜 아스팔트 위에 서 있는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물대포에 풀썩 쓰러진 저 나이 든 농민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알려고 해야 한다. 그것을 알려고 하지는 않고 불법 폭력, 테러리스트, 복면 타령이나 하고 있다.

사경을 헤매고 있는 농민이 말하고자 했던 바는 간단하다. 쌀값이 너무 떨어졌으니 정부가 대책을 세워달라는 것이다. 쌀농사는 농민들만의 일이 아니니 당연히 정부가 나서야 한다. 쌀농사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안보, 환경 보전, 균형 발전이라는 가치와도 맞닿아 있으며, 우리의 문화, 정체성의 일부이기도 하다. 집회장을 찾은 칠십 노인은 이런 얘기를 하려고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경찰은 그를 넘어뜨려 피를 흘리게 하고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게 하고 있다.

누구도 아스팔트 농사를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논농사, 밭농사가 그렇듯 아스팔트 농사도 하늘의 뜻으로 짓는 것이다. 아스팔트 위에 선 농민들을 두려워해야 한다. 농민은 ‘자루 속에 든 감자’이지만 가끔씩은 역사의 주인이 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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