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은 ‘박근혜 선거’ 청와대 입김 거부할 수 없다”
  • 이승욱 기자·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5.12.17 18:22
  • 호수 1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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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공천 전쟁’, 승기 잡은 親朴 vs 밀리지 않으려는 非朴

지난 12월6일 한 장의 사진이 여의도 정치권에 회자됐다. 같은 날 오후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새누리당 지도부 인사들이 만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기념촬영한 사진이었다. 이 사진은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외부로 알려졌다. 당시 회동에는 원 원내대표를 비롯해 김무성 대표, 김정훈 정책위의장, 서청원·이인제·김을동·김태호·이정현 최고위원 등이 참석했다. ‘번개 회동’ 형식으로 이뤄진 이날 만남은 친박(親박근혜)계인 서 최고위원이 먼저 제안했고, 김 대표가 동의해 성사됐다는 후문이다.

그동안 주류와 비주류, 친박계와 비박(非박근혜)계로 갈려 얼굴을 붉히던 당 지도부였지만 이날만큼은 웃음이 만면한 채 기념촬영에 응했다. 사진을 두고 내홍을 겪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과 대조해 묘사한 언론 보도도 나왔다. 분당 사태까지 점쳐지는 야당과 비교하면, 여당은 마치 잔칫집 분위기라는 점을 상기시키려는 전략이 깔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10월5일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맨 오른쪽)이 국민안심공천제와 국민공천 여부로 심하게 다툰 후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하지만 사진을 본 당내 인사 일각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웃음 뒤에 감춰진 긴장감을 읽은 이들의 반응이었다. 수도권의 비박계로 분류되는 당내 한 인사는 “다들 겉으로는 웃고 있는 표정이지만 머릿속이 복잡했을 것”이라면서 “이날 회동은 결국 앞으로 시작될 총선 룰 전쟁을 앞두고 신사협정을 맺는 자리 정도였다고 보면 된다. 겉으로는 당내 화합을 강조하지만, 결국은 치열한 수(手) 싸움을 벌여야 하는 이들이 상견례 먼저 해보자는 의미에서 마련한 자리 아니었겠느냐”라고 말했다.

‘공천 전쟁’ 불쏘시개 된 결선투표제

‘번개 회동’이 있은 다음 날인 7일 오전 김무성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공천 룰과 관련한 최고위원회 합의 사항을 발표했다. 내년 4·13 총선을 앞두고 구성될 공천특별위원회 위원장에 3선 중진인 황진하 사무총장을 임명하는 한편, 공천 경선에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황진하 위원장’ 카드는 김무성 대표가, 결선투표제 도입은 서청원 최고위원 등 친박계가 그동안 요구해온 안이다. 김 대표와 서 최고위원 사이에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 식으로 타협안을 도출해 발표한 것이다. 친박은 결선투표제를 관철했고, 김 대표 측은 공천특별위원회 발족으로 총선 체제 정비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효과를 본 셈이다.

12월6일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번개회동’한 새누리당 최고위원들. ⓒ 원유철 원내대표 페이스북

그러나 전날 화기애애했던 회동과 달리 당내 분위기는 다시 험악한 상황으로 바뀌었다. 결선투표제를 완강히 거부했던 비박계의 반발이 표면화됐기 때문이다. 김 대표의 공천 룰 합의 발표 이틀 후인 9일 열린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비박계 이재오 의원이 작심한 듯 비판을 쏟아냈다. 이 의원은 “결선투표제는 본선 경쟁력을 현저히 약화시킨다”면서 “공천 때만 되면 특정인을 배제하기 위해서 제도를 새로 만들고 이렇게 하면 되겠느냐”고 당 지도부를 향해 따졌다. 이 의원의 비판에 친박계 이인제 최고위원이 맞받아치면서 설전이 빚어졌다. 이 최고위원은 “결선투표 없이 (경선을) 하면 기득권자가 거의 다 된다”면서 “결선투표를 통해서만 우리 당의 공천이 공정해지고 국민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비공개 회의에서 분위기는 더욱 험악했다. 친박계이자 당 대변인을 맡고 있는 이장우 의원은 이재오 의원을 향해 “대통령과 당이 시급한 민생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힘을 모아야 할 때 공개적으로 분란을 일으키는 건 부적절하다”고 공격했다. 이장우 의원은 18대 총선에서 친이계가 주도했던 ‘친박계 공천 학살’ 이야기까지 꺼내면서 “이명박 정권 때 2인자였던 분이…”라고 말했고, 비박계 인사는 “당신이 탈레반(이슬람원리주의 무장단체)이냐”고 공격하면서 당내 기강 해이를 문제 삼았다고 전해졌다.

김 대표가 “구체적인 룰은 공천특위에서 만들어야 한다”면서도 결선투표제 도입을 공식화한 것을 두고서는 비박 진영 내부에서조차 반발 기류가 나왔다. 김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김성태 의원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결선투표제가 당헌·당규에도 없고 불필요한 이합집산을 일으킨다”면서 “본선 경쟁력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결선투표제 도입에 따른 공천 갈등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수밖에 없고, 자신이 도입을 추진했던 오픈프라이머리(완전 개방형 경선제) 제도 도입을 친박계의 반발로 접어야 했던 김 대표로서도 지도력에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결선투표제 도입으로 여당 내부에서 내년 4·13 총선을 앞두고 벌어질 계파 간 ‘공천 전쟁’은 사실상 친박계가 승기를 잡은 형국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새누리당이 20대 총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공천 룰 전쟁’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한 친박계 핵심 의원이 기자들과 만나 한 얘기다. 그는 친박계가 결선투표제 도입이나 적극적인 전략공천 등을 조직적으로 주장하는 이유를 묻자 ‘박근혜 선거’라는 한마디로 요약했다. “어차피 내년 총선도 ‘박근혜 선거’로 치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당이 총선 체제를 갖추는 과정에서 청와대 의중을 상당 부분 반영하는 건 오히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 아니냐.”

새누리당 안팎에선 내년 총선을 ‘박근혜 마케팅’으로 치르게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박근혜 정부 후반기의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집권 여당에 힘을 실어달라는 전략으로 임하게 될 것이란 얘기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박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이런 분위기는 우리 정치권에서 다소 생경하다. 어떤 식으로든 현직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해도 집권 후반기에 접어든 대통령을 총선에서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중간중간 반등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대통령의 지지도가 하락세에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내년 총선 후 1년 반이 지나면 대선이 있다. 정치권의 속성상 ‘미래 권력’을 중심으로 한 이합집산은 그야말로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여야 모두에서 유력 대권 주자들을 축으로 세력 재편이 이뤄지고, 이 과정이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의 출발일 것이라는 예상은 차고 넘친다.

12월6일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번개회동’한 새누리당 최고위원들. ⓒ 원유철 원내대표 페이스북

“與 총선 전략은 ‘박근혜 마케팅’”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 석 자를 내걸고 총선을 치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박 대통령의 당 장악력이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여권 내 차기 대권 주자들의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간 박 대통령을 향해 공개적으로 수차례 쓴소리를 해왔던 수도권 출신의 한 비박계 의원의 말이다.

“솔직히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이나 정책 기조 등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년 총선에서 야당과 맞붙어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박근혜 마케팅뿐인 것도 현실이다. 지금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40%대 중·후반을 오간다. 그런데 수개월째 차기 대선 후보 1위에 올라 있는 김무성 대표의 지지율은 겨우 20%에 턱걸이하는 수준이다. 결국 40%대 초반인 당 지지율은 박 대통령 지지율에 딸려가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수도권에선 박근혜 마케팅이 역효과를 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를 넘어설 대안도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제 새누리당 내 공천 룰 전쟁은 이미 결과는 나와 있고 모양새를 어떻게 갖추느냐의 문제가 됐다. 큰 방향과 밑그림은 청와대·친박계의 구상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다만 그 과정에서 김 대표를 비롯한 비박계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게 될 것이란 얘기다.

한 친박계 재선 의원은 “공천 룰의 큰 가닥은 이미 잡혔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선투표제 도입 문제가 의외로 쉽게 합의된 것만 봐도 그렇다. 문제는 앞으로의 상황 관리다. 새정치연합과 달리 파열음이 크게 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새누리당에선 최근 공천특별기구 위원장 선임 문제를 비롯해 결선투표제 도입 여부, 여론조사 반영 비율, 사실상의 전략공천과 다름없는 우선공천 실시 지역 선정 문제 등이 한꺼번에 불거지고 있다.

일단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양측이 사활을 걸고 대립하는 듯하다. 비박계는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대구·경북(TK) 물갈이를 기정사실화하는 등 당의 공천 과정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고, 친박계는 19대 국회에 대한 국민적 비판과 박근혜 정부의 남은 임기를 감안할 때 대대적인 물갈이가 불가피하다고 맞서고 있다.

하지만 한 발짝만 떨어져서 보면 ‘청와대·친박계 vs 비박계’의 싸움은 이미 결론이 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2월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비박계가 강력 반발해온 결선투표제 도입이 별다른 논란 없이 합의된 게 단적인 예다. 김 대표와 가까운 한 비박계 의원조차 “합의해줄 수밖에 없었던 게 지금 우리 당의 현실”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결선투표 도입 여부는 그동안 당내 계파 갈등의 핵심 고리였다. 1차 경선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을 때 상위 1, 2위만을 대상으로 한 번 더 경선을 실시할 경우 박 대통령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영남권에선 전직 각료와 청와대 참모 등 ‘진박’(진실한 친박)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 대표 측은 “특별기구 위원장에 김 대표가 황진하 사무총장 카드를 관철시키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하지만 황 사무총장의 경우 애초 친박계 인사이고 당무 장악력이 크지 않아 특별기구 논의를 주도할 가능성은 작다. 게다가 특별기구 자체가 계파 대리인들로 꾸려졌다. 친박계가 양보의 모양새를 갖췄다는 시각이 지배적인 이유다.

물론 결선투표가 시행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의원총회에서 확정돼야 한다는 주장이나 당헌·당규에 근거가 없다는 비판은 ‘정치적 합의’가 가능해 보인다. 관례적으로 공천 세부 규칙은 공천심사위원회가 다듬은 다음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왔기 때문이다. 이번엔 공천 특별기구가 그 역할을 하게 된다.

친박계, 일정 부분 상황 관리할 듯

문제는 결선투표 대상을 정하는 기준이다. 친박계 김재원 의원은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당연히 1, 2위를 대상으로 투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비박계 인사들은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더라도 득표율 차이가 박빙일 경우로 한정해야 한다”고 맞선다. 친박계는 영남권 물갈이를, 비박계는 현역 의원 기득권을 각각 의식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이 문제는 김 대표가 연일 “전략공천은 절대 없다”고 강조하면서 해법 마련이 쉽지 않아 보인다. 청와대·친박계가 전략공천을 공공연히 주장하는 상황에서 김 대표 측이 전략공천과 제한 없는 결선투표 중 택일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김 대표 측에서조차 ‘전략적 실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전략공천과 결선투표는 별개의 문제인 데다 시간이 가면 친박계 의원들도 무조건적인 결선투표를 반대하게 될 것이고 청와대도 대놓고 전략공천을 요구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김 대표가 지금 시점에서 왜 전략공천 불가를 강조하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실제로 친박계는 결선투표를 100% 여론조사로 치르자는 제안을 통해 김 대표와 비박계를 설득ㆍ압박할 방침이다. 오픈프라이머리가 무산된 이후 김 대표가 줄곧 주장해온 게 바로 100% 여론조사였기 때문이다. ‘전략통’으로 꼽히는 한 친박계 핵심 의원은 “현재 50%인 1차 투표 여론조사 비율을 일부 높이는 것까지 포함해 김 대표에겐 명분을 주고 우리는 실리를 챙길 수 있는 타협점”이라며 “전체적으로 너무 큰 파열음이 나지 않도록 일정한 수준에서 상황을 관리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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