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언론사’ 위한 몸부림
  • 최진순│한국경제신문 기자·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
  • 승인 2015.12.17 18:44
  • 호수 1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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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우 前 카카오 대표 영입한 중앙일보, ‘디지털 퍼스트’ 실험…조선·한겨레 등도 디지털 전략 박차

11월 중순 이석우 전 카카오 공동대표(49)의 중앙일보 이직 소식이 전해지자 신문·방송은 물론 포털 사이트 관계자들까지 술렁거렸다. 뉴미디어업계의 리더가 전통 매체로 옮긴 배경이나 역할을 놓고 엇갈린 의견이 쏟아졌다.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 사법 당국의 차가운 시선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냐는 설왕설래도 나왔다. 그러나 강도 높은 디지털 혁신을 위해 외부 전문가를 영입한 중앙일보의 선택에 후한 평가가 잇따랐다. 12월1일부터 중앙일보에 디지털 전략·제작담당 겸 JOINS 공동대표로 출근한 이 전 대표는 일단 거대 뉴스룸과 융화를 하기에 중량감도 있고, 미디어 생태계의 최근 흐름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2015년 한 해는 국내 언론사들의 디지털 집중과 선택이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졌다. 사진은 한 일간지의 편집국 내부. ⓒ 시사저널 포토

“종이신문과 디지털 둘 다 놓칠 수…” 우려도

이 전 대표는 1992년부터 2년간 중앙일보 기자를 지낸 이후 2011년 카카오 부사장으로 영입되기 전까지는 미국 로스쿨을 마치고 법조인으로 활동하며 미디어업계와는 다른 길을 걸었지만, 다음과 합병한 이후 카카오 공동대표가 되면서 모바일 플랫폼 경쟁에 나섰던 인물이다. 신임 이석우 디지털 전략·제작담당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12월 초 정기인사에서 승진한 홍정도 중앙미디어네트워크·중앙일보·JTBC 공동대표 사장과 함께 디지털 부문에서 호흡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9월 중앙일보 창간 50주년 기념식에 맞춰 발표한 ‘혁신보고서(New Direction in Media)’는 기본적인 혁신 밑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판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로 불리는 이 문서는 중앙일보 내부 구성원들에게만 단계적으로 공유돼 전체 내용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다만 홍정도 사장이 기념식에서 밝힌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언론사’ 관련 언급에서 어느 정도 그 윤곽은 파악할 수 있다. 홍 사장은 “뉴스는 끊임없는 흐름인데 기존 언론사는 자기가 설정한 기준-데드라인에 맞춰 흐름을 통제하고 있다. 그런데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플랫폼이 등장해 이 정보의 흐름을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중앙일보의 향후 전략이 모두 포함됐다고 본다. 바로 ‘디지털 퍼스트’와 ‘소통 강화’다. 신문 지면 제작 중심의 뉴스 생산 과정을 디지털 플랫폼에 놓고 재설계하겠다는 의지로 읽히기 때문이다. 또 그동안 활성화하지 않았던 SNS를 통해 젊은 이용자들과 소통하고 이를 디지털 서비스에 녹여낼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일보 경영진의 의중이 실린 혁신 보고서를 이석우 디지털 전략·제작담당이 어떻게 현장에 적용해갈 것인지가 관전 포인트인 셈이다. 중앙일보의 한 기자는 “12월 초 단행된 중앙일보 인사는 편집국 밑에 뉴스룸과 디지털 전략·제작, 그리고 시사 매거진 제작, 신문 제작, SUNDAY(주말판) 제작 등 각 부문을 병렬로 둔 것으로, 뉴스룸은 모든 부문의 뉴스가 모이는 곳”이라고 밝혔다.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기자들이 매체 구분 없이 뉴스룸에 기사를 송고하면 각 제작 담당자는 매체 성격에 맡게 콘텐츠 차별화를 맡는다. 

이런 구도에 호응하는 인적·조직적 편제의 향방은 이르면 연내 이뤄질 후속 인사에서 드러날 예정이다. 그러나 모든 뉴스를 디지털에 초점을 두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전향적인 ‘디지털 퍼스트’ 흐름이 안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에도 하루 평균 50여 건의 디지털 뉴스가 생산되는 상황에서 뉴스 생산 프로세스 자체를 디지털 중심으로 이동하는 것이 특별한 성과를 내기 어려울 수 있어서다.

신문업계 1위인 조선일보도 ‘이석우 영입’ 직후엔 그 배경을 파악하느라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이내 덤덤한 평가로 바뀌었다. 조선일보의 한 기자는 “절대적으로 종이신문 기반 매출이 많은 국내에서 언론사의 디지털 퍼스트는 이상적으로 설계는 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제대로 구현하기 어렵다. 오히려 종이매체 기자가 감당해낼 수 있는 콘텐츠의 수준만 하향 평준화될 것”이라며 냉소했다. 편집국 각 데스크와 기자들의 준비가 미흡한 상황에서 급격한 방향 선회는 종이신문과 디지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일이 되리라는 얘기다. 또 만약 디지털을 잘 모르는 종이신문 기자 출신이 디지털을 관장한다면 뉴스룸의 위계 문화에서 이석우 디지털 전략·제작담당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앙일보의 콘텐츠 비즈니스 및 유통 전략 등 디지털 매체 환경 전반에 대한 일에 한정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한국형 디지털 뉴스룸 등장에 내심 기대

그러나 신문업계에서는 지금까지 정체 상태에 놓인 한국형 디지털 뉴스룸의 등장을 내심 기대하는 분위기다. 중앙일보가 ‘한 지붕 아래(one roof)’ 매체 간 칸막이를 없앤 명실상부한 융합 뉴스룸(convergence newsroom)을 통해 평이한 뉴스 생산 위주의 신문사를 넘어 전문적인 지식정보종합기업으로 진화하는 계기를 마련할지 일단은 지켜보자는 것이다.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 홍정도 사장 등 경영진의 든든한 지지를 업고 있는 이석우 디지털 전략·제작담당이 진용을 갖춰 뉴미디어업계에서 경험한 것을 이식하고 카카오와 협력한다면 혁신 성과도 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긍정론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홍 회장은 신년사 등을 통해 복잡성이 증대되는 한국 사회에서 유연성·균형성·다양성 등 미디어의 사회적 책임과 모바일 플랫폼, 글로벌 시장 등을 향한 새로운 도전 의지를 줄곧 내비쳐왔다. 홍 사장도 미래지향적인 IT(정보기술) 투자와 비(非)기자직 전문 인력의 영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반기에 이뤄진 이용자 친화적인 웹사이트 및 모바일 서비스 개편은 중앙일보 혁신의 순도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석우 전 카카오 공동대표의 중앙일보 이직을 정점으로 2015년은 국내 언론사들의 디지털 집중과 선택이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졌다. 중앙일보 혁신 보고서에 비해 1년여 빠른 시점인 지난해 말 디지털 강화를 위해 편집국에 국내 최대 규모의 ‘디지털뉴스본부’ 체제를 가동한 조선일보가 대표적이다. ‘프리미엄 조선’의 본격 유료화를 놓고 올해 초까지 갈팡질팡했지만, 결국 디지털 콘텐츠 강화를 위한 조직을 꾸리며 미래형 뉴스룸에 대비했다. 젊은 세대와의 접점 강화를 위해 모바일 콘텐츠 타입인 카드뉴스를 비롯해 연성 뉴스 생산을 확대하는 모양새다.

한겨레는 그 어떤 언론사보다 ‘디지털 퍼스트’에 초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 10월 ‘3.0 혁신 보고서’를 내놓은 이후 2단계 융합 편집국 구현에 진입한 한겨레는 인력을 재배치하고 에디터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에디터는 온라인에 유통하는 뉴스의 기획과 생산을 맡았다. 디지털 편집회의도 신설하고 멀티미디어 생산에 적합한 최신 콘텐츠 관리 시스템(CMS) 도입을 추진했다.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인 경향신문과 한국일보는 소셜 네트워크 계정 운영으로 브랜드 경쟁력을 키웠다. 한국일보는 조잡한 광고를 게재하지 않는 뉴스 사이트를 운영하는 한편으로 다양한 디지털 뉴스 실험을 곁들였다. 꾸준한 소통에 나선 경향신문도 SNS에서 ‘이름값’을 했다.

“실패하더라도 성공 위한 과정으로 품어야”

무엇보다 일부 언론사에서 시범적으로만 추진됐던 데이터 저널리즘이 중앙 일간지는 물론 크고 작은 언론사에서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올해 추진된 국내 주요 언론사의 디지털 혁신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편집국의 디지털 기능 강화다. 인력을 재배치하거나 확충했다. 둘째는 모바일과 SNS 기반 서비스 확대다. 개발자·디자이너 등 비기자 직군이지만 전문가의 채용을 늘렸다. 셋째는 주 이용자층인 18~34세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팟캐스트·영상 등 멀티미디어 실험을 장려했다.

중앙일보 혁신 보고서는 이러한 흐름에서 등장한 꼭짓점이었다. 더 강한 디지털 혁신으로 이행할 것인가 아니면 형식적인 흉내 내기에 그칠 것인가의 기로에서 만난 이정표였다. 문제는 디지털 뉴스 생태계가 여전히 안갯속이라는 점이다. 투자를 하자니 불확실하고, 하지 않자니 불안한, 그래서 엉거주춤한 상태에는 큰 변화가 없다. 전통 매체의 디지털 혁신을 강도 높게 주문해온 강정수 디지털사회연구소장은 “그럼에도 향후 뉴스룸의 권력은 디지털에 있음을 명백히 보여줘야 할 시기다.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내부의 종이신문 권력을 간소화, 즉 축소·교체할 때 혁신이 성공한다. 그렇지 않다면 내부에서 업무 갈등만 야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부에서 영입한 최고디지털관리책임자(CDO·Chief Digital Officer) 1인에 의존하는 톱다운(top down) 방식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내부에 디지털문화 형성을 위한 동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가령 디지털 부문 예산을 증액하고 디지털이 종이신문 업무를 일정하게 잠식·지배하는 프로세스를 설계하는 일이다. 또 혁신의 목표를 내부 역량과 시장 경쟁 질서에 맞춰 제대로 설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뉴스룸 내 ‘꼰대 기자’들의 기득권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전통 매체 디지털 전환의 최대 장애물로 꼽힌다. 네트워크의 집단지성과 협력하는 창의적인 접근을 외면·회피하는 것이다. 디지털 전문 인력을 뉴스룸의 변두리에 배치해 주요 의사결정 과정과는 거리가 멀게 했다.

미디어 전문가 조영신 박사는 “중앙일보의 행보는 모바일 주 이용자층인 젊은 세대에 방점이 찍힌 프로젝트다. 물론 내부 문화나 관행을 뜯어고치는 대수술이 아니어서 한계에 직면할 수는 있다. 다만 실패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실패하더라도 단념할 것이 아니라 성공하기 위한 과정으로 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통 매체 디지털 혁신은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적·지속적 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제언이다. 페이스북 페이지 ‘좋아요’ 수나 트래픽에 일희일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듯이, 변수 많은 경쟁 환경에서 저널리즘 혁신이 안착하길 응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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