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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김정은 동지우리는 당신밖에 모른다”

베이징 공연 불발된 모란봉악단 레퍼토리 들여다보니

이영종│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5.12.22(Tue) 17:35:07 | 13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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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봉악단이 12월11일 베이징 모처를 방문한 이후 숙소인 베이징 민쭈(民族)호텔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통치수단으로서의 음악예술을 강조한다. “음악이 때로는 수천이나 수만 총포를 대신했고, 수백·수천만 톤의 식량을 대신했다”고 말한 적도 있다. ‘영화광’이던 아버지 김정일의 선전·선동술과 만수대예술단 무용수였던 생모 고영희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바탕이 된 듯하다. 그런 김정은이 집권 첫 해인 2012년 7월 출범시킨 게 모란봉악단이다. 이른바 ‘음악정치’의 대표 아이콘이다. 창단 후 3년여 동안 모란봉악단은 인기절정을 달렸다. 가창력에 세련된 미모까지 갖춘 스타급 가수들의 공연은 폭발적인 인기를 불러모았다. 대형 스크린에 레이저 조명까지 쏘는 화려한 무대는 북한 주민들이 과거엔 꿈도 꾸지 못했던 것이다. ‘평양판 걸그룹’이라 불릴 만했다. 로동신문에는 “보고 또 보고 싶은 매력적인 공연…자기의 뚜렷한 얼굴을 가진 멋쟁이 악단”이란 찬사가 실렸다. 무엇보다 김정은이 직접 챙기는 ‘친솔(親率) 악단’이란 점은 든든한 배경이 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지난 12월12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릴 예정이던 방중 공연이 시작 3시간을 남기고 전격 취소된 것이다. 사흘 전 현지에 도착해 리허설을 한 악단이나 공연 무대를 준비하던 중국 측 모두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냉랭해진 북·중관계를 녹여줄 전령으로 간주되던 모란봉악단은 양국 간 소통의 한계를 드러낸 아이콘으로 남았다.

모란봉악단, 2012년 출범한 김정은 ‘친솔 악단’

공연이 불발되자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베이징과 평양 쪽에서는 즉각적인 반응을 내놓지 못했다. 국제전화 감청과 현지의 인적 정보망인 휴민트(humint)를 통해 한·미 정보 당국이 내린 결론은 ‘공연내용을 둘러싼 불협화음’이라고 한다. 이런 판단은 국가정보원의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도 확인된다. 이에 따르면, 모란봉악단 공연 전 북·중 양측은 상세한 레퍼토리 정보를 주고받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모란봉악단 리허설을 지켜본 중국 당국이 지나치게 김정은을 찬양·선전하는 공연 내용에 문제를 제기했다. 북한이 수정을 거부하며 버티자 중국은 관람자의 격을 국무위원(장관급) 수준에서 부부장급으로 낮췄다는 것이다. 결국 북측은 반발했고, 공연취소와 철수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김정은 찬양 내용에 중국 지도부가 제동을 걸었다는 점이다. 조선중앙TV로 최근 방영된 모란봉악단의 평양공연 장면을 꼼꼼히 짚어보면 짐작이 가는 대목이 드러난다. 1시간30분 안팎의 공연은 김일성·김정일을 ‘수령’으로 치켜세우며 찬양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이어 김정은 우상화 레퍼토리인 <그이 없인 못살아>와 <우리는 당신밖에 모른다> 등의 노래가 이어진다. “우리가 바라는 꿈과 이상 모두 다 꽃피워주실 분. 위대한 김정은 동지 우리는 당신밖에 모른다”는 절절한 가사에 몸부림에 가까운 가수들의 호소가 등장한다.

중·후반부에 가면 특이한 레퍼토리가 구성된다. ‘세계 명곡 묶음’이란 코너를 통해 분위기를 확 바꿔버리는 것이다. 모차르트 교향곡 모음을 시작으로 <가극 극장의 유령>이란 북한식 제목을 단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주제곡 선율이 울려 퍼지고 곧이어 <오솔레미오> <백조의 호수>, 팝음악 등이 이어진다.

다시 김정은 찬양 가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면서 공연이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 무대 배경화면엔 김정은의 공개 활동 관련 영상이 크게 펼쳐진다. 이에 맞춰 모든 관객이 일어나 끝없이 박수를 치며 무대는 막을 내린다. 음악을 통한 찬양과 숭배, 그리고 이를 통해 김정은 체제 결속을 겨냥하고 있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구성이다.

그런데 중국 측이 문제 삼은 건 김정은 찬양 가요가 아니라고 한다. 공연의 배경화면으로 등장하는 영상이 핵심이었다. 여기에는 북한이 2012년 12월 장거리 로켓 ‘은하 3호’를 시험 발사할 당시 김정은이 통제센터를 찾아 발사 명령을 내리는 장면이 담겼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못마땅해하며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에 찬성했던 중국으로서는 베이징 시내에서 버젓이 이런 공연이 펼쳐지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는 얘기다.

‘은하3호’ 발사 장면으로 북·중 갈등 빚은 듯

김정은 집권과 함께 등장한 모란봉악단은 개혁·개방의 시금석으로 주목받았다. 스위스 유학파로 젊은 나이에 절대 권력을 거머쥔 새 지도자는 뭔가 다를 것이란 기대였다. 창단 공연 때 미국 자본주의 상징인 미키마우스 캐릭터 인형이 등장하자 관심은 증폭됐다. 일본 브랜드인 롤랜드(Roland)의 디지털피아노와 드럼, 코르그(KORG)의 신시사이저, 야마하(YAMAHA)의 피아노도 마찬가지였다. 어깨를 다 드러낸 여가수들이 짧은 치마를 입은 채 무대에 선 장면은 북한 주민들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번 베이징 공연 불발 사태로 한계를 드러냈다. 김정은과 북한 노동당 간부들은 모란봉악단 방식의 찬양과 선전·선동이 바깥세상에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걸 절감했을 것이다. 혈맹 관계라고 여겨온 중국조차 받아들이지 못할 수준의 개인숭배로는 국제사회에서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김정은의 리더십도 일정 부분 손상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모란봉악단 중국 방문 과정에서 김정은과의 염문설이 불거졌던 현송월을 노출시킨 건 북측의 패착으로 보인다. 은하수관현악단 가수 시절 <준마처녀>란 노래로 유명한 그녀는 한때 김정은의 연인이란 설이 나돌았다. 2013년 가을에 모란봉악단 단원 관련 성추문설이 제기됐을 때는 숙청당했다는 일부 보도까지 나왔다. 하지만 지난해 5월 평양에서 열린 ‘예술인대회’에 모란봉악단 단장 자격으로 연설하면서 논란은 사실상 끝났다. 최고 지도자의 여자라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철저히 감추는 게 북한 체제의 특성이란 점에서다. 북한이 왜 세간의 관심에서 잊혀져가던 현송월을 베이징 공연단에 포함시켜 논란을 자초했는지는 의문이다.

공연 레퍼토리조차 절충할 수 없는 북·중 관계의 냉각 상태는 상당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베이징 공연을 계기로 북·중 양측의 해빙을 위한 전령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던 모란봉악단은 불협화음과 분란의 불씨가 됐다. 사태가 이렇게 된 건 김정은식 공포정치로 인한 북한 고위층의 경직된 태도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중국 측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평양에선 누구도 김정은에게 ‘공연 내용 일부 수정’ 필요성을 제기하지 못했을 것이란 측면에서다. 일각에서는 김기남 선전·선동 담당 비서 등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뒤따를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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