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시리즈의 ‘포스’가 되살아났다
  • 허남웅 | 영화 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5.12.23 18:22
  • 호수 1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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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J. 에이브럼스의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를 즐기는 방법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포스’가 깨어났다. J. J. 에이브럼스가 연출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이하 <깨어난 포스>) 얘기다. <깨어난 포스>는 <보이지 않는 위험>(1999), <클론의 습격>(2002), <시스의 복수>(2005), <새로운 희망>(1977), <제국의 역습>(1980), <제다이의 귀환>(1983)에 이은 ‘스타워즈’ 시리즈의 일곱 번째 작품이다. 그런데 개봉 순서는 왜 에피소드 4, 5, 6이 먼저냐고?

에피소드 4~6은 다스베이더가 수장으로 있는 제국군과 이에 맞서 루크 스카이워커(마크해밀), 레아 공주(캐리 피셔), 한 솔로(해리슨 포드)가 주축이 된 저항군 간의 전쟁이 중심에 놓인다. 주요 배경이 우주와 타투인 행성으로 불리는 사막인 탓에 에피소드 4~6은 컴퓨터그래픽(CG) 없이 수작업으로도 우주 활극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에피소드 1~3은 루크 스카이워커의 아버지 아나킨 스카이워커(제이크 로이드/헤이든 크리스텐슨)가 어떻게 다스베이더가 되었는지 그 과정을 쫓는 일종의 에피소드 4~6의 프리퀄이라 할 만하다. 사람이 직접 탈을 써서 연기할 수 있는 R2D2와 C3PO와 같은 드로이드 캐릭터가 등장했던 에피소드 4~6과 다르게, 프리퀄에는 오직 CG만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CG 캐릭터 자자 빙크스가 등장한다.

에이브럼스의 ‘스타워즈 회생 프로젝트’

또 은하계를 지배하는 공화국, 후에 아나킨 스카이워커와 사랑에 빠지는 아미달라 여왕(나탈리 포트먼)이 통치하는 나부 행성 등 볼거리가 화려한 공간들을 창조해야 하다 보니 ‘스타워즈’ 프리퀄은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지 않고서는 제작될 수 없는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조지루카스는 에피소드 4~6을 먼저 제작한 후 <제다이의 귀환> 이후 16년 만에 <보이지 않는 위험>을 연출한 것이다.

조지 루카스의 노력과 달리 ‘스타워즈’ 팬들은 프리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필름 없이 최초의 디지털 영화로 개봉한 프리퀄은 우주와 지상과 수중을 넘나드는 배경의 스케일과 각종 디지털 캐릭터 등 특수효과의 대향연으로 관객의 눈을 현혹한다. 그것이 경이로움보다 피곤함으로 다가오는 건 특수효과의 남발로 에피소드 4~6의 기억을 간직한 관객의 향수를 배반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에피소드 4~6의 제다이 마스터 ‘요다’는 손 인형으로 제작해 이 캐릭터가 지닌 이상적인 스승으로서의 덕목과 함께 사랑스러움을 관객에게 제공했다. 프리퀄의 요다는 100% CG로 완성된 탓에 손 인형보다 움직임은 자연스럽지만, 디지털 질감 때문인지 정이 가지 않는 캐릭터로 전락했다. 이는 조지 루카스의 패착이었다.

‘스타워즈’는 단순히 극장에서 보고 끝내는 단순 이벤트 영화가 아니다. 관객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캐릭터들의 피규어를 모으고 다스베이더, 스톰트루퍼 등의 가면과 복장을 제작해 입고 다니며 이를 활용해 ‘스타워즈’의 팬픽을 만들기도 한다. ‘스타워즈’가 영화를 넘어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된 데에는 팬들이 직접 손으로 일군 수작업의 문화가 바탕에 놓인다. 디지털로 완성한 공간과 캐릭터로는 팬들이 놀이로서 ‘스타워즈’를 즐기는 데 한계가 있다.

월트디즈니가 ‘스타워즈’ 시리즈의 루카스 필름을 인수한 배경에는 관객들이 그들 자신만의 개성으로 영화를 간직하고 누리고 재창조하며 지속하고 있는 ‘스타워즈’ 특유의 문화가 있다. 문제는 에피소드 4~6의 향수를 되살리면서 현대의 관객에게도 호감을 살 수 있는 ‘스타워즈’ 리부트의 적임자가 누구냐는 것이었다.

J. J. 에이브럼스는 죽어가는 시리즈를 되살리는 데 특기를 가진 감독이다. 오우삼이 망쳐놓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3편에 감독으로 합류해 5편까지 이어지는 롱런의 기틀을 잡았다. 한물간 시리즈로 평가받던 ‘스타트렉’도 에이브럼스가 <스타트렉: 더 비기닝>(2009)과 <스타트렉 다크니스>(2013)를 연달아 성공시키면서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에 이르렀다.

비결이 있다. 에이브럼스는 시리즈가 사랑받는 요소를 극대화하면서 동시에 시리즈에 문외한인 관객이 영화를 즐기는 데 문제가 없도록 조율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가 <깨어난 포스>의 연출자로 선임된 결정적인 이유다. 에이브럼스는 <깨어난 포스>를 연출하면서 CG로 범벅된 프리퀄의 우를 범하지 않는 가운데 수작업을 우선한 특수효과에 많은 공을 들이면서 에피소드 4~6의 이야기 전개 방식을 그대로 따른다.

백인 남성 일색 영화에 등장한 여성과 흑인

<제국의 역습>에서 제국군 다스베이더와 저항군 루크 스카이워커 간의 부자 관계가 밝혀지며 예상치 못한 놀라움을 전해준 것처럼, <깨어난 포스>에서도 전혀 생각지 못한 지점에서 가족 간의 비밀이 노출된다. 이 관계는 결국 에피소드 4~6을 뿌리 삼아 <깨어난 포스>에서 새로운 가지를 뻗어나가는 식이다. 퍼스트 오더를 통솔하는 카일로 렌(아담 드라이브)의 경우, 그가 쓴 검은 헬멧이 정체성을 드러내듯 다스베이더의 악의 기운을 물려받은 캐릭터다.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레이(데이지 리들리)는 드로이드와 함께하는 행보나 복장, 무엇보다 자신은 미처 깨닫지 못한 ‘포스’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루크 스카이워커의 여성 버전을 연상시킨다.

‘포스(Force)’는 일종의 에너지로 ‘스타워즈’에서는 제다이로 불리는 기사에게 내재한 힘을 의미한다. 제다이의 기사들은 이 포스를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수련을 쌓는다. <깨어난 포스>에서 그 역할을 여성인 레이가 맡았다는 건 백인 남성 일색이던 이 시리즈의 현대성을 반영한 진화한 설정이라 할 만하다. 레이와 동행하는 핀을 흑인 배우로 캐스팅한 배경 역시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자기 안의 포스를 깨닫기 위해서는 ‘각성’이 필요하다. 그 자신을 옥죄는 모든 한계를 극복할 때 포스는 비로소 진가를 발휘한다. <깨어난 포스>가 딱 그렇다. J. J. 에이브럼스는 우주를 배경으로 밀레니엄 팔콘, 엑스윙, 타이파이터 등 우주선이 날아다니며 활극을 펼치고 인간인듯 인간 아닌 캐릭터들이 주요하게 등장해도 이미지 자체는 사실적으로 보이기를 원했다.

프리퀄의 실패 지점에서 ‘각성’한 에이브럼스는 실제 크기의 우주선 모형을 만들어 띄우는 등의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다. “전 세계적인 기대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CG를 통해 표현된 부분마저도 최대한 사실적으로 살려내 현실감을 높였다”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그런 노력에 걸맞게 <깨어난 포스>는 ‘새로운 전설의 시작’이라는 홍보 문구가 어색하지 않은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프리퀄에서 희미해졌던 포스가 드디어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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