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헬조선에 신음하는 이 시대의 흙수저들
  • 원태영 기자 (won@sisabiz.com)
  • 승인 2015.12.24 16:17
  • 호수 1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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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실업률과 함께 등장한 ‘헬조선’, ‘흙수저’, ‘금수저’ 등의 신조어들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첨단 전자제품도 레고 블록 다루듯이 만지고, 타이핑도 분당 삼백타는 우습고 평균신장도 크지.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다 놀고 있는 거야? 왜 모두 실업자인 거야?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 김영하의 소설 ‘퀴즈쇼’(2007)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2007년 당시 청년 취업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8년이 지난 2015년 취업현실은 어떨까. 올해 6월 청년(15~29세) 실업률은 10.2%로 6월 기준으로 1999년(11.3%) 이후 16년 만에 가장 높았다. 실제 상황은 이보다 더 나쁘다는 걸 보여주는 조사 결과도 많다. 통계청 자료의 경우, 조사 대상이 아르바이트만 해도 취업자로 분류한다.

여기에 공무원 등을 준비하는 ‘고시족’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자를 포함하면 청년 실업자는 116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 체감실업률은 23%로 공식 통계로 잡힌 10%보다 2배 이상 높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서점가에는 김난도 교수 저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일명 힐링 도서가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지속된 경기불황과 취업난으로 청년들은 점차 희망을 잃어가고 냉소적으로 변했다. 모 방송인은 TV프로그램에서 “아프면 환자지, 뭐가 청춘이냐?”는 말로 비꼬기도 했다.

최근에는 헬조선, 흙수저, 금수저 같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지옥 같은 대한민국을 뜻하는 헬조선은 청년들이 느끼는 분노와 좌절이 얼마나 깊은지를 나타내고 있다. 게다가 금수저·흙수저라는 신계급론까지 등장했다. 금수저는 부유한 부모 아래 자라 경쟁 사회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사람이나 계층을 풍자하는 단어로 흙수저의 반댓말이다. 

정부는 강도높은 노동개혁을 통해 청년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청년들이 들어가고 싶어하는 직장인 대기업 상당수는 이미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최근에는 20대 신입사원에게 희망퇴직을 요구한 두산인프라코어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성탄절이 이제 하루가 남았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성탄절 분위기를 느끼기 쉽지 않다. 오가는 청년들 얼굴에 깊은 시름이 보인다. 언어는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올해는 헬조선, 수저론, N포세대 등 각종 우울한 신조어가 세태를 표현했다. 내년엔 희망찬 신조어가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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