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 ‘강(强)재인’으로 변신했다
  • 김지영 기자·양정대│한국일보 기자 (.)
  • 승인 2015.12.24 18:49
  • 호수 1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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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탈당 후 강단 있는 모습…추가 탈당 막을지도 주목

“이젠 그야말로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야권 전체가 흔들리게 된 건 사실이지만, 문재인 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점도 분명하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이 12월13일 안철수 의원의 탈당 기자회견 직후 몇몇 기자들과 만나 한 얘기다. 안 의원이 끝내 탈당을 결행함으로써 새정치연합 내부는 물론 야권 지지층까지 큰 충격과 혼란에 휩싸이게 됐다.

안 의원 탈당 회견 다음 날인 12월14일 새정치연합 의원과 보좌진들은 ‘안철수 탈당 후폭풍’이 얼마나 거셀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한 원로급 의원의 보좌관은 향후 전망에 대해 “(원로급 의원인) 높은 분들도 아침에 예상했던 게 저녁에 바뀌는 상황인데 우리 같은 보좌관이 어떻게 (당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겠느냐”며 답답해했다.

문재인 대표의 ‘호위무사’로 불리는 최재성 총무본부장은 문희상·원혜영 의원 등 원로급 의원의 사무실을 분주히 돌아다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12월1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안철수 의원의 탈당에 대해 “제1야당 대표로서 송구스럽다”며 혁신과 인적 쇄신을 통한 공천 혁명 의지를 천명했다. ⓒ 연합뉴스

“리더십ㆍ정치력 부재” 비판 극복할 수 있을까

그런데 문 대표의 리더십과 정치력 부재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는 상황인데도 문 대표는 의외로 차분해 보였다. 문 대표에 대해선 그동안 “리더십이 부족하다”거나 “정치력이 없다”는 비판과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문 대표를 지지하는 측에서는 “과거와 같이 카리스마를 앞세우던 리더십과는 다르다”고 항변했고, “처음부터 ‘친노 딱지’를 붙여 운신의 폭을 좁혀놓지 않았느냐”며 비주류 진영을 탓해왔다.

새정치연합 내부 상황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문 대표 측의 항변과 해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문 대표가 지도부 회의나 당직자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 그의 리더십은 수평적·협력적이고, 이는 지금껏 봐온 야권 지도자들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분명 다르다. 당내 비노·비주류 진영의 상당수가 문 대표를 친노 진영의 수장 내지는 얼굴마담 정도로 여기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문 대표를 향한 비판적 시각은 새정치연합이 수권 야당의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지층의 불만과 우려의 반영이란 점도 분명한 사실이다. 문 대표와 가까운 한 수도권 의원은 “박근혜 정부의 독단과 독선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한다는 지지층의 불만이 당 대표에게 집중되고 있는데 이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당내 갈등→제1야당의 기능 약화→지지층의 이반’이 꼬리를 물면서 악순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 평론가의 말이다. “일상적으로 친노와 비노가 갈려 으르렁대다 보니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처럼 여론이 받쳐주는 문제에서도 당력을 총동원하는 대여(對與) 투쟁이 어렵다. 그렇다 보니 지지층은 계속 외면한다. 문 대표가 당권을 잡은 후 이런 악순환이 지겹도록 반복되고 있다고 말해도 결코 과하지 않다.”

새정치연합 주류 일각에서 안 의원 탈당으로 “야당다운 야당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안 의원이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과 조국 서울대 교수 등이 주축이 된 혁신위원회 활동에 제동을 걸면서 비주류의 수장 역할을 자처한 후 당 내홍이 위험수위로 치달았다고 보는 시각이다.

한 주류 측 의원은 안 의원 탈당에 대해 “정치적 존재감을 의식해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던 안 의원이 혁신위의 인적 쇄신안을 무력화시키려는 사람들이 내민 ‘악마의 손’을 잡은 게 결국 파국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비주류 내 강경론자들이 대권 주자인 안 의원을 등에 업고 혁신안 무력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당내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았지만, 이젠 안 의원이 빠진 만큼 적어도 당내 상황은 어느 정도 정리 단계에 들어설 수 있게 됐다고 보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이 12월13일 국회의사당 정론관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선언 기자회견을 가졌다. ⓒ 시사저널 박은숙

“어떤 핑계도 대지 말고 ‘문재인 정치’ 보여줘야”

문 대표는 최근 안 의원의 탈당을 전후해 이전과는 분명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문 대표와 안 의원이 각각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연대’와 ‘혁신 전당대회 개최’를 상대에게 요구하며 치킨게임을 벌이는 과정이었고, 이에 대해 많은 비판과 비난이 쏟아진 것을 감안하더라도 ‘정치인 문재인’에게 단호함과 결기가 있음을 보여준 것은 정치적 소득이다.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문 대표가 ‘과거처럼 계파 나눠 먹기 공천을 할 수는 없다’며 사실상 봉합에 가까운 각종 중재안을 거부함으로써 결국 안 의원도 탈당 외엔 다른 길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앞으로 문 대표는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판단을 하든 ‘겨우 이렇게 하려고 안철수를 쫓아낸 거냐’는 비난을 항상 의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실 문 대표는 최근 들어 이전과는 다르게 소신 있고 강단 있는 모습을 몇 차례 보였다. 당무감사를 거부한 황주홍·유성엽 의원은 물론 자녀 로스쿨 문제로 도마에 오른 신기남 의원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감사를 지시했다. 특히 비주류가 문제 삼아온 총선 공천과 관련해 측근들의 불출마 선언을 다시 한 번 끌어냈고, 한명숙 전 총리의 당적 정리 등을 통해 친노 수장의 이미지를 걷어내기 위한 노력에도 적극 나섰다.

12월16일 문 대표가 ‘공천 혁명’을 선언한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그간 당 대표와 주요 계파 수장들의 나눠 먹기 대상이나 마찬가지였던 비례대표를 포함해 모든 공천을 상향식으로 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안 의원 탈당 이후 첫 공식 회의석상에서 주류든 비주류든 가릴 것 없이 당심(黨心)과 민심에 따라 ‘공천 물갈이’를 단행할 것임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문 대표는 이 자리에서 “혁신을 공천권 다툼과 당내 권력투쟁으로 전락시키려는 시도들은 결코 성공 못할 것”이라며 “당내 투쟁을 야기하면서 혁신을 무력화하고 당을 흔들어서 결과적으로 정권 교체를 방해하는 세력에게는 이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문 대표 측 관계자는 기자들과의 간담회를 자청해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평가위)의 ‘현역 하위 20% 물갈이’ 작업은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실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부터는 혁신 작업의 속도를 계속 높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안 의원과 함께 동반 탈당할 가능성이 점쳐졌던 의원들의 이탈 행렬은 주춤한 상태다. 비주류 의원들은 대부분 “좀 더 지켜보자”며 관망하는 형국이다. 한때 탈당설이 나돌던 충청권의 한 의원은 “내가 탈당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 의원이 ‘탈당파’에서 ‘관망파’로 돌아선 것은 안 의원 탈당 이후 여론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데다, 일각에서 문 대표의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문 대표로서는 당 장악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라고 할 수도 있다.

당내 ‘전략통’으로 꼽히는 한 의원은 “문 대표로서는 그야말로 당 대표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잡은 상황일 수도 있는 만큼, 문 대표 스스로 말해왔듯 지금부터는 그 어떤 핑계도 대지 말고 온전히 자신의 정치력을 보여줘야 한다”면서 “‘정치인 문재인’의 미래는 문 대표가 훨씬 복잡해진 총선 구도를 어떻게 잡아나가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12월17일 국회 정론관에서 황주홍·문병호·유성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왼쪽부터)이 탈당을 선언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향후 공천 파동과 총선 성적표 최대 관건

그런데 안 의원을 필두로 한 탈당 사태는 휴화산 상태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탈당을 예고했던 문병호·유성엽·황주홍 의원은 12월17일 예정대로 당을 떠났다. 여기에 1월 중순쯤 평가위의 ‘하위 20% 물갈이’ 대상자 윤곽이 드러날 경우 해당자들의 무더기 탈당 가능성도 크다. ‘하위 20%’에 해당하는 지역구 및 비례대표 의원은 20~25명. 적지 않은 숫자다.

그런데 안 의원은 향후 공천 탈락자와는 함께 가지 않을 공산이 크다. 따라서 물갈이 대상 의원들은 당의 공식 발표가 나오기 전에 자진해서 탈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 ‘공천 탈락’이 아닌 ‘자의적인 정치적 결단’에 따른 탈당이라는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 그래야 ‘안철수 신당’ 등에서 부활할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류에 속하는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탈당 사태’와 관련해 “향후 비주류인 김한길계를 주목해야 한다”면서 “김 의원이 혹시라도 공천 탈락 대상자가 될 경우 김한길계 의원 10여 명이 우르르 탈당할 수도 있다. 문 대표가 더 이상 흔들리지 않기 위해선 김 의원에 대한 전략적인 공천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문 대표가 탈당 사태를 막으며 집안 단속을 철저히 할 수 있을지도 문 대표 리더십을 가늠할 수 있는 또 다른 포인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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