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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의 선봉 이제는 ‘외화벌이’ 선봉으로

북한 ‘만수대창작사’, 캄보디아에 ‘앙코르 파노라마 박물관’ 열어

정준모 |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ㅣ . | 승인 2015.12.31(Thu) 18:00:16 | 13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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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12일에 예정됐던 김정은 친솔(親率) 모란봉악단의 베이징 공연이 취소되면서 북한의 문화예술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그런데 이에 앞서 12월4일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유적으로 유명한 씨엠립에 북한이 전액 투자해 건설하고 운영할 것으로 알려진 ‘앙코르 파노라마 박물관(Angkor Panorama Museum)’이 문을 연 사실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이 사업은 북한의 만수대창작사가 주도한 사업으로 알려졌다. 건립에서 운영까지 만수대창작사 해외사업단이 맡은 이 박물관은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3㎞ 떨어진 지역의 약 4만㎡ 땅에 지어진 건물이다. 북한이 해외에서 벌인 건설 사업 중 가장 규모가 크다. 북한은 앞으로 10년간 이 박물관을 운영해 투자금을 회수하고 이후 캄보디아 정부에 무상 기증하는, 우리 식으로 하면 기부 채납 방식으로 건립했다.

개관식에서 북한의 주캄보디아 대사는 “박물관은 김일성 주석과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 간의 특별 관계에서부터 이어진 양자 간 우호협력 관계의 상징”이라 말했지만 실은 외화벌이가 목적이다. 약 5년에 걸친 박물관의 총공사비로 약 120억원이 들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260여 억원이 들었을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추정이다. 그래서 그런지 입장료가 매우 비싸다고 한다. 외국인의 경우 입장료가 15달러(약 1만7000원)이고, 현지인들은 8달러(약 9400원)를 내야 하는데, 박물관 기본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파노라마관과 3D영화관에서는 별도로 입장료를 받는다고 한다. 여기에 별도의 전시관을 만들어 만수대창작사에 소속된 화가들의 유화를 파는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미술과는 동떨어진 캄보디아인들의 삶이나 자연환경을 소재로 한 기념품류의 그림들을 판다. 가격은 400(47만원)~1000달러(118만원) 정도다.

2013년 5월13일 만수대창작사를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업적을 다룬 영상작품 창작 사업을 직접 지도하고 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약 4000명의 예술가가 종사하는 ‘공장’

북한의 사실주의 회화 역량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세계 최고일 것이다. 그들의 리얼리즘은 세밀한 사실주의를 뜻하기 때문이다. 파노라마 형태의 벽화가 주종을 이루는 앙코르와트와 캄보디아 왕조의 역사와 유적을 소개하는 박물관을 만드는 데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그래서 유적이나 유물이 중심이 되는 박물관이 아닌 그림으로 과정을 보여주는 박물관을 건립했다.

이런 역량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6년 뒤인 1959년 11월에 세워진 만수대창작사에서 나온다. 만수대창작사는 북한 최고의 예술가들이 집단창작을 하는 창작촌, 아니 ‘공장’이다. 평상시 약 1000명의 작가를 포함해 약 4000명이 종사하는 이곳은 13개 집단으로 나뉜다. 조선화 창작단을 선두로 목판, 도안, 유화, 수예, 조선보석화 창작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북한의 미술은 부르주아의 삶과 의식을 반영하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을 비판하는 비판적 리얼리즘에서 출발해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승리와 노동계급의 주체를 전망하고 또 선전·선동하는,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집단창작이라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며 분업과 공동 제작이 근간을 이룬다. 특히 거대한 조각이나 선전·선동을 위한 대형 작품들을 제작한 경험이 풍부하다. 현재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회주의 미술을 신봉하고 제작하는 나라의 그림과 미술품이라는 희소성, 그리고 그리 높지 않은 가격에 호기심까지 겹쳐 많은 사람이 작품을 구입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북한은 본격적으로 미술품을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가장 흔한 방법은 이미 2009년부터 베이징 798거리에 자리 잡고 있는 만수대창작사 베이징지사를 통한 판매다. 정치색이 배제된 풍경화와 동물화 등 회화 외에도 포스터, 우표 등을 판매하는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중동과 동남아 등지에도 상당수의 북한 예술가가 파견돼 노동자로서 미술가들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아프리카의 독재자들은 자신의 우상화를 위해 기꺼이 북한 만수대창작사의 경험 많은 작가들을 활용했다. 만수대 해외사업단은 지금까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소련식 사회주의적 동상을 제작해주는 거래를 펼쳤다.

독일 박물관조차 인정하는 재현 능력

우상화와 신격화를 위한 대형 동상 건립은 신생 독립국 수장인 아프리카 독재자들의 취향과 기호에 맞아 많은 일들을 수주할 수 있었다. 1959년에 설립된 만수대창작사는 그간 천리마 동상, 노동당의 창립 기념탑, 전국에 산재한 김일성과 김정일 동상, 만수대 언덕의 대형 기념물 등으로 실력을 쌓아왔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1970년 만수대창작사 해외사업단을 발족했는데, 알제리를 비롯해 보츠와나, 캄보디아, 차드, 콩고, 이집트, 에티오피아, 독일, 말레이시아, 모잠비크, 마다가스카르, 세네갈, 시리아, 토고, 짐바브웨 같은 국가가 고객이 되었다. 만수대창작사는 이들 나라에서 기념물, 박물관, 경기장과 궁전 등을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복원해 재현하는 일로 수백만 달러의 사업을 수주했다.

200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동화분수를 재현해 복원한 것도 만수대창작사의 몫이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사라진 분수를 복원하기 위해 적당한 곳을 물색하던 프랑크푸르트 수공예미술관 측은 만수대창작사의 월등한 재현 능력을 발견하고 시 당국자를 설득해 사진으로만 남았던 분수의 조각상을 아주 작은 20만 유로의 비용만을 지출해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만수대창작사의 비용 대비 실력을 알린 사건이자 서방 국가에서 그들이 수행한 유일한 용역이다.

이들이 아프리카에서 수주한 대표적인 대형 조각상 프로젝트는 2010년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 완성한 아프리카 르네상스 기념물일 것이다. 49m의 높이를 자랑하는 이 기념 조각은 자유의 여신상이나 리우의 예수상보다도 높다. 280억원을 받고 제작했는데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띠며 반(半)누드의 아프리카 가족을 묘사하고 있다. 대부분이 무슬림인 나라에서 여성이 가슴을 드러낸 것에 대한 반대도 거셌지만 결국 완공되었다. 

아프리카 남부 보츠와나에 있는 도시 가보로네(Gaborone)의 관광 필수 코스로 자리한 ‘3족장의 상’,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수주한 6000만 달러 규모의 동상, 짐바브웨의 동상 등 이들의 외화벌이는 계속 진행 중이다. 예술은 혁명에 봉사하고 인민을 교화해야 한다는 김일성의 유훈은 이제 돈벌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라는 명령으로 대체됐다. 마치 북한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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