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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팝콘 브레인’의 시대가 왔다

새해 대중문화 전망…스낵컬처 트렌드와 B급 문화 더욱 확산될 듯

하재근 | 대중문화 평론가 ㅣ . | 승인 2015.12.31(Thu) 18:34:56 | 13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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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기를 많이 활용하다 뇌가 점점 둔감해지는 현상을 ‘팝콘 브레인(popcorn brain)’ 현상이라고 한다. 팝콘이 터지듯이 자극적으로 터지는 이슈에만 반응하는 두뇌가 됐다는 뜻인데, 미국 워싱턴 대학의 데이비드 레비 교수가 이름 붙였다. 이런 분석이 나올 정도로 요즘은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정보에만 반응하는 시대다.

이른바 ‘디지털 네이티브’, 즉 모태 디지털 세대이며 말로 하는 대화보다 스마트폰을 통한 문자메시지를 더 편하게 여기는 세대가 지금 대중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들이 모두 팝콘 브레인은 아니겠지만,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한 순간적인 자극에 길들여지다 보니 호흡이 길고 내용이 깊은 콘텐츠를 지루해하는 게 사실이다. 대신에 강렬한 자극이나 웃음을 주는 유희에는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또, 요즘 세대는 단순히 방송국의 콘텐츠를 즐기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적극적으로 콘텐츠의 창작과 유통에 개입한다. 인터넷 발달을 통해 가능해진 일이다. 처음엔 게시판에 간단한 게시글을 올리는 정도의 수준이었으나, 이젠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자유자재로 만들고, 방송까지 직접 하는 데 이르렀다. 개입하고, 발언하고, 창작하는 그들, 바로 ‘행동하는 팝콘 브레인’이 2015년에 이어 2016년에도 대중문화의 지형도를 바꿔나갈 것이다.

‘짤방’으로 세상 모든 것 패러디 유희 즐겨

EXID 역주행 사태에 이어 터진 <백세인생> 역주행 사태가 이런 분위기를 말해준다. EXID 역주행은 걸그룹의 섹시한 안무를 동영상으로 제작해 인터넷에 공유하는 네티즌에 의해 발생했다. <백세인생>은 ‘짤방’을 활용해 패러디 유희를 즐기는 네티즌에 의해 떴다. 짤방은 ‘짤림 방지’의 준말로 인터넷 초기 디시인사이드 게시판에서 이미지가 첨부되지 않으면 게시글이 삭제됐기 때문에 잘리지 않기 위해 아무 이미지나 올렸던 것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젠 이미지 전체를 포괄해 짤방이라고 하는데, 네티즌은 짤방을 활용해 세상의 모든 것을 패러디하는 유희를 즐겨왔다. 그것이 김보성의 ‘으리’ 사태를 만들더니 이제 <백세인생>의 이애란을 데뷔 25년 만에 스타로 만들었다.

네티즌이 <백세인생>을 선택한 데는 아무 이유가 없다. 그저 ‘~라고 전해라’라는 화법이 재미있다고 느꼈을 뿐이다. 재미있으면 그만인 것이고, 그 이상의 의미를 따지는 건 ‘꼰대’의 짓이다. 심형탁이 <무한도전>에서 ‘뚜찌빠찌뽀찌’ 춤을 췄을 때 동료 연예인들은 질색했다. 과거 같으면 방송 자체도 안 됐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프로그램 콘셉트가 ‘뇌순남’(바보) 코드였기 때문에 이 말도 안 되는 뇌순남이라는 의미로 ‘뚜찌빠찌뽀찌’가 전파를 탔다. 그런데 네티즌이 ‘뚜찌빠찌뽀찌’ 춤에 열광했다. 어쨌든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심형탁은 뇌순남 캐릭터로 금융권 광고를 찍기에 이르렀다.

팝콘 브레인 현상은 스낵컬처 트렌드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대하소설 대신에 짤막하고 자극적인 웹소설이 인기를 끌고, 수십여 권 분량의 대본소 시절 만화책을 기껏해야 10~20컷 정도의 웹툰이 대체한다. 이젠 교양도 <지식채널>처럼 짧아지고, 강의도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처럼 짧아진다. 뉴스도 심층 분석 기사보다 몇 개의 이미지로 축약한 카드뉴스 형태로 바뀐다.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도 문자 중심에서 이미지 중심으로 바뀐다. 팝콘 브레인으로 인한 변화가 전 방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팝콘 브레인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강렬하고 재미있는 자극은 바로 ‘B급 문화’다. <백세인생> ‘으리’ ‘뚜찌빠찌뽀찌’ 등 B급 문화의 강세는 2016년에 더욱 뚜렷하게 이어질 것이다. 음식·아이·섹시 등 원초적인 자극도 각광받을 것이다. 행동하는 팝콘 브레인들의 무기인 인터넷 방송을 활용하려는 기존 미디어나 기업들의 노력이 본격화될 것이다.

공유·자랑질·인증샷 문화가 번성할 전망

세상은 팝콘 브레인이 마냥 유희를 즐기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동안에도 경기 침체를 겪었지만 2016년에는 경제적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양극화로 인한 분노도 커질 것이다. 과거 젊은이들은 사회에 대한 분노를 사회과학 학습과 변혁을 위한 투쟁으로 풀었지만, 팝콘 브레인은 그냥 눈앞에 보이는 대상을 향해 화를 낸다. 지난여름에 영화 <베테랑> 1000만 관객 사태를 만들고 최근 <내부자들>의 깜짝 흥행을 이끌어낸 바로 그 에너지다. 2016년엔 심화된 경기 침체로 인해 분노와 불안이 더욱 커질 것이고, 대중문화산업계는 당연히 그 분노를 콘텐츠로 표현할 것이다. 행동하는 팝콘 브레인들은 정의를 저버리는 존재를 그냥 두지 않기 때문에, ‘금수저 연예인’ 논란처럼 일단 찍히면 공공의 적으로 매도되는 현상이 심화될 것이다. 불안은 팝콘 브레인들의 약자에 대한 집단 공격, 혐오 정서의 강화를 초래하기도 한다. 여성 혐오와 ‘일베(일간 베스트)’ 문화가 대중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 더 크게 나타날 것이다.

경기 침체와 불안 속에서 사람들은 위안을 찾는다. <응답하라 1988>, 1990년대 가요 열풍 같은 복고 트렌드나 <삼시세끼> 같은 힐링 콘텐츠가 인기다. 불안해진 팝콘 브레인은 애국주의나 민족주의로 빠지기도 한다. <국제시장> <연평해전> <암살> 등의 흥행은 이런 흐름 속에서 나타났다. 2016년에도 이어질 트렌드다.

고령화·꽃중년 현상 등에 따라 기성세대의 감성도 대중문화에 더욱 크게 반영될 것이다. 기성세대의 문화적 영향력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흥행을 만들었고, 복고 열풍과 함께 TV 콘텐츠의 기성세대 맞춤화 현상을 불러왔다. 기성세대의 문화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기성세대 정서에 기대는 종합편성 채널의 영향력도 점점 커져간다. 종편의 영향력으로 인해 연예인 사생활 논란이 대형 이슈로 대두되는 일들이 반복될 것이다.

저성장·고실업 등 ‘뉴노멀’ 시대를 맞이한 팝콘 브레인은 성취에 대한 욕망이나 희망 자체를 잃어버리고 있다. 젊은이들이 ‘달관 세대’로 변해가는 것이다. 이들은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에 만족하면서 재미있는 경험이나 취향을 인터넷을 통해 공유, ‘자랑질’하는 것에 열중한다. 2016년엔 ‘뚜찌빠찌뽀찌’의 심형탁처럼 ‘개취’(개인의 취향)를 즐기면서 자족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고, 그런 소수 취향을 ‘저격’하는 콘텐츠가 많아질 것이다.

튀는 행동을 인터넷에 인증하면서 현실 세상에서의 좌절감을 보상받기도 한다. 2016년엔 더욱 공유·자랑질·인증샷 문화가 번성할 전망이다. 과도한 자랑질로 현실의 삶이 피폐해지거나, 인증에 심취하다가 자기 자신이 위태로워지거나 심지어 범죄까지 저지르는 사람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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