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순직자보다 자살자가 더 많다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1.07 16:51
  • 호수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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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소방관 “힘들다” 유서 남기고 자살…5년간 순직 33명·자살 35명

‘힘들다. 이번이 세 번째 시도다. 이번엔 성공할 수 있을까.’

2015년 12월10일. 충북 영동소방서 소속 김 아무개 대원이 서울의 한 여관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월요일이었던 12월7일부터 무단으로 결근했던 그가 행방불명된 지 나흘 만의 일이었다. 사인(死因)은 자살이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가 담긴 수첩이 죽음의 원인을 추정할 유일한 단서였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가정 형편과 사회생활을 비관하는 말들이 가득했다. 유서 마지막 장에는 세 번째 자살 기도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생전에 김 대원은 우울증을 잃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에 대한 사후 조사 과정에서 영동소방서에 근무할 당시 스스로 정신적인 문제가 있음을 자각하고 병원의 신경정신과를 방문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런 그의 병력을 주변 동료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었다. 평소 그와 직장 내 야구동호회 활동을 하며 알고 지냈다는 한 동료 소방관은 “김 대원은 평소 잘 웃고 인사성도 밝았다”며 “그런 그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30대 초반의 그는 화재 진압 소방관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이제 겨우 2년을 넘겼을 뿐이었다.

ⓒ 일러스트 임성구

소방관 549명 “자살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소방관의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김승섭 고려대 교수(보건정책관리학부)가 2015년 3월부터 6개월 동안 진행한 ‘소방공무원 인권 상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한 소방관 7625명 중 7.2%인 549명이 지난 12개월 사이에 ‘자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가 수행하는 2014년 한국복지패널조사 결과 일반 근로자 집단에서 ‘한 번이라도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에 ‘있다’고 답한 가구원(신규)이 응답자의 1.82%임을 감안하면 4배에 이르는 높은 수치다.

자살의 유혹 앞에 흔들리는 소방관들의 문제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박남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015년 국정감사에서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소방관 자살 현황 및 순직자 현황’ 자료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0~14년) 순직한 소방관이 33명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방관은 35명이다. 같은 기간 동안 순직한 소방관보다 자살한 소방관이 두 명 더 많다. 자살 35건 중 과반인 19건(54%)이 우울증 등 신변 비관에 의한 것이었으며, 가정불화가 10건(29%)이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재난 및 사고의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현장을 수습하는 소방관이지만, 정작 스스로의 정신건강은 간과되고 있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유다.

2015년 6월27일 화재가 발생한 대전 대덕구 한 수건 판매업체에서 소방관이 진화 작업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한 달에 1~2명 동료 소방관 스스로 목숨 끊어”

박남춘 의원은 이 같은 통계를 두고 “소방관의 자살이 위험하고 불규칙적인 근무환경과 공무 과정에서의 외상후스트레스 등과 연관되어 있다고 추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현직 소방관은 “언론에 일일이 보도가 되지 않았을 뿐이지 한 달에도 한두 명의 동료 소방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자살의 원인이)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라고 딱 잘라 말할 순 없지만, 신체 사지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목숨을 끊을 이유가 뭐가 있겠느냐. 우리처럼 정신력이 강한 사람들이 또 없다. 그러나 반복되는 시각적 충격으로 인해 결국 정신력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소방관의 정신건강은 시민들의 안전과 직결돼 있다. 한 소방관은 “사고 현장에서 화재 진압이나 구조를 하는 소방관의 의지가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는 원동력이 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소방관들의 정신건강이 주요 문제로 대두되자 정부는 2012년 12월2일 ‘소방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 기본법’을 제정했다. 소방관에 대한 보건안전·복지 정책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해 소방관의 근무 여건 개선과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 수립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비판이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소방본부가 2012년 ‘소방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 기본법’을 제정하고 2015까지 투입한 예산은 39억원에 불과하다. 소방방재청(현 국가안전처 중앙소방본부)은 2014년 9월 ‘소방공무원 심신건강 관리 종합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예산이 투입된 사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소방관 심리평가 설문조사 및 연구 용역, 심신건강 상담, 진료·치료비 지원, 심신건강캠프 운영 등 일회성 보여주기식 처방에 머무르고 있다.

2015년부터 중앙소방본부는 소방관들의 복지를 위해 전국 소방관서에 심신안정실을 설치하고 있지만, 대부분 휴게실 공간을 리모델링해 공기청정기·안마기·혈압측정계·조명장치 등을 설치하는 데 그치고 있다. 좀 더 깊숙이, 또 꾸준히 소방관들의 정신건강을 살펴볼 수 있는 전문 상담사나 소방관 전문 병원 등은 전무하다. 국회에서 2013년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소방관을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소방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지만, 관련 법률안은 예산 문제로 인해 소관 상임위 법안소위에서 더 이상의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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