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위주 교육, 졸업 로봇만 양산”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1.12 16:50
  • 호수 1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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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탠퍼드 대학 기업지배구조센터 비벡 와드하 교수, 한국 대학 교육에 쓴소리…“인문학 축소하면 패배의 길만 남을 것”
비벡 와드하 교수가 2012년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열린 ‘아이디어 이코노미’ 컨퍼런스에서 연설하고 있다. © Wadhwa.com

2015년 교육부는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대학 구조조정 지원 사업을 발표했다. 일명 프라임 사업으로 사회 수요에 맞춰 인재를 양성하자는 취지로 정원 조정 및 학과 개편을 하는 게 주요 골자다. 프라임 사업에 선정된 대학들에는 매년 2000억원, 3년간 6000억원을 지원한다.

총 2012억원이 지원되는 교육부의 프라임 사업을 잡기 위해 지역 주요 대학들은 사업의 기본 자료인 ‘2014~24년 대학 전공별 중·장기 인력 수급 전망’에 따라 입학 정원 조정, 단과대학별 학과 개편 등에 나서고 있다. 이 가운데 인하대 등 일부 대학에서는 철학과·프랑스어학과 등 어문계열의 정원을 줄이거나 폐지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안을 내놓고 있어 “취업 경쟁력에 따라 대학 구조를 개편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반발을 사고 있다. 대학사회 여론이 분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미국의 저명한 경영구조학자이자 IT(정보기술) 애널리스트인 비벡 와드하(Vivek Wadhwa·스탠퍼드 대학 기업지배구조센터) 교수와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와드하 교수는 인터뷰에서 “과거에 비해 실용 학문이 중요해진 것은 사실이다. 이와 관련된 학문이 사회 발전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가 됐지만 인문학의 중요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와드하 교수는 평소 강의와 기고문 등을 통해 미국 산업의 인적 혁신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는 “안타깝게도 미국에도 인문학에 반해 STEM(과학·기술·공학·수학)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를 예로 들어 설명을 했다. 세계적인 IT회사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는 애플의 성장 원동력은 바로 미술·음악·사회과학에 있다는 것이다. 와드하 교수는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과 디자인에 집중해 세계적인 IT회사를 키워냈다”며 “그 결과 빌 게이츠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우리 시대 위대한 기업가로 손꼽히게 됐다”고 말했다.

“과거 STEM 교육은 대학 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래에는 인문학과 과학의 조합이 이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성공한 CEO들 배경에 인문학 있어”

와드하 교수는 컴퓨터 언어와 클라이언트-서버 컴퓨팅을 개발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이다. 1997년에 렐라티비티 테크놀로지( Relativity Technologies)를 창업하고 코볼이라는 컴퓨터 언어를 개발했다. 2004년 회사를 떠난 후 본격적인 후학 양성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미국 듀크·스탠퍼드·싱귤러리티 대학 등에서 기업가정신과 공공정책 등에 대해 강의를 했으며, 하버드 대학 법대 연구교수, UC버클리의 정보대학 초빙교수 등을 거치며 왕성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와드하 교수는 IT업계에서 성공적인 리더가 되기 위해 반드시 관련 학문을 전공으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IT가 돈이 되는 시대라고 꼭 IT 관련 학과를 전공하는 학생들만을 집중적으로 육성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었다. 이 같은 주장은 그가 2008년 미국 듀크·하버드 대학과 함께 진행했던 한 연구 결과에 의해 뒷받침된다. 와드하 교수는 이 연구에서 엔지니어링업계 502개 회사에 종사하는 미국 출신 652명의 리더들의 수학(修學) 배경을 조사했다. 그 결과 학사 이상의 학위 소지자들의 37%가 공학과 컴퓨터 관련 기술 학위 소지자였으며 겨우 2%가 수학 전공자였다. 과반수인 61%가 문리학·회계·보건·디자인 계열 등 다양한 학문을 전공했다. 그는 “학위를 취득하는 것은 한 창업자가 설립한 회사의 세일즈와 고용에 큰 차이를 가져오지만 어떤 분야의 학위인가는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라며 “성공한 CEO들에게서 발견되는 더 중요한 공통점은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열망과 역경에 도전하고 성공하려는 자신감이었다”고 지적했다.

“성공한 CEO들의 배경을 보면 많은 사람이 인문학 기반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향해 가는 미래의 세상이 공학자와 과학자만큼 예술가·철학자·심리학자·음악가 등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유의할 만한 사실이다.”

“한국 축소되는 인문학 위상 우려”

“기술 분야에서 앞서나가고 싶다면 지금 당장 기술 관련직을 그만두고 인문학 학위를 받으라.”
2011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한 컨퍼런스에서 스타트업 아드바크(Aardvark)의 공동 창업자 데이먼 호로비츠가 연설자로 나서 이렇게 말했다. 아드바크는 2010년 약 550억원(5000만 달러)에 구글에 매각됐다. 호로비츠는 이 회사를 매각한 후 구글의 ‘사내 철학자’이자 엔지니어링 디렉터로 전격 채용됐다. 당시 그의 말은 화제를 일으키며 세계 IT산업 종사자들에게 큰 파장을 던졌다. 이 같은 생각은 호로비츠만의 것은 아니었다. 같은 해 글로벌 IT 공룡 기업인 구글은 신규 채용 인력 6000명 중 5000여 명을 인문학 전공자로 충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구글의 부사장이었던 머리사 메이어는 “구글은 다양한 분야에서 똑똑한 인재를 찾고 있지만 인문학 전공자가 특히 잘 어울린다”며 “사용자 환경(UI)을 개발하는 데는 기술 못지않게 사람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게 필수적이라 인류학자와 심리학자가 가장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내고는 한다”고 말했다.

와드하 교수 역시 구글의 이런 기조와 맥을 같이한다. 그는 평소 기술산업 분야에서 인문학의 중요성을 느끼는 사람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며 말을 이었다.

“나는 인문학 전공자야말로 최고의 프로젝트 매니저, 최고의 프로덕트 매니저, 그리고 궁극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기술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술자들과 엔지니어들은 기술적 특성들에만 집중해 작은 것에 사로잡히곤 한다. 대다수 일반인은 신경도 쓰지 않는 것들이다. 반대로 인문학 전공자들은 간단하게 사람에게 집중한다. 그리고 사람이 기술과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에 주목한다.”

그는 오늘날 한국 교육과정에서 점차 축소되는 인문학의 위상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우려를 나타냈다. 취업 위주의 실용 학문만을 육성하는 기조는 결국 “사실과 숫자를 단순히 기억하는 데 그치는 졸업 로봇만 양산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만약 한국이 인문학이 가진 중요성을 간과하고 인문학을 축소한다면 오직 패배의 길만이 남을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혁신을 가져오고 소비자가 원하는 뛰어난 상품을 생산할 능력을 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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