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검, 거세진 저유가 파고…배럴당 10달러 전망도
  • 하장청 기자 (jcha@sisapress.com)
  • 승인 2016.01.13 17:56
  • 호수 1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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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 30달러 붕괴, 12년 만에 최저
지난 12일 경기도 부천의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리터당 1245원, 경유를 1005원에 판매하고 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30달러선 이하로 내려가며 국내 주유소 휘발유 평균 가격이 7년 만에 리터당 1300원대에 진입한 데 이어 1200원대로 판매하는 주유소도 늘어나고 있다. / 사진=뉴스1

끝도 없이 추락하는 국제유가가 국내 경제에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기업 생산원가 하락, 소비 촉진에 따른 내수 경기 활성화 기대감이 엿보이고 있지만 신흥국들의 경기 침체 가속화로 세계 경제가 어두운 터널에 갇힐 것이란 부정적 전망 때문이다.

국제유가가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배럴당 30달러가 무너지며 연초부터 세계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중국 경기 둔화, 중동 정정 불안, 달러 강세 등 악재가 겹치며 국내 경제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 국제유가 30달러선 붕괴…12년 만에 최저

국제유가 30달러선이 붕괴되며 세계 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국제유가가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면서 전세계적으로 디플레이션(저성장)이 도래하고 산유국들의 재정난도 심각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는 전일대비 97센트(3.09%) 하락한 배럴당 30.44달러에 마감했다. 장중 배럴당 29.93달러까지 떨어지며 12년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런던석유거래소(ICE)의 북해산브렌트유(Brent)도 69센트(2.19%) 떨어진 배럴당 30.86달러에 마감했다. WTI는 연초부터 7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며 지난해 말보다 17.8% 떨어졌다.

이 같은 국제유가 하락은 중동과 미국 등 산유국들의 치킨게임(출혈 경쟁)에 따른 공급 과잉 우려가 근본적 원인이다. 지난달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 실패 이후 유가가 연이어 역사적 저점 수준을 경신하고 있지만 글로벌 공급 과잉 현상이 장기화되며 추세적인 반등을 기대하기도 여의치 않다.

달러 강세도 유가 하락을 부추기고 있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미국 금리인상으로 촉발된 강(强)달러가 달러 표시 자산 원자재 가격 하락폭을 키우고 있다.

최대 석유 소비국인 중국의 경기 침체로 원유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부정적 시각도 높다. 중국은 지난해 전세계 원유소비량의 12%를 차지했지만 연초부터 불거진 경기 둔화 우려에 따라 원유 수요 감소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제유가 하락세로 자원 신흥국들의 재정건전성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재정수입의 대부분을 원유 수출에 의존하고 있지만 국제유가가 20달러 선으로 내려가며 재정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13일 사우디아라비아의 CDS(신용부도스왑)프리미엄은 195bp(1bp=0.01%)로 전일대비 5.6bp 상승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1년 전 CDS프리미엄은 80bp를 밑돌기도 했지만 유가 하락 여파로 급등세를 보였다.

◇ 저(低)유가, 국내 경제 영향은?...수출전선 비상

저유가가 장기화되며 국내 경제 향방도 안개속에 가려졌다.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상황에서 비용 부담이 줄며 기업 생산원가 하락과 실질 소비 증가로 이어질 수 있지만 대외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경제의 부작용도 배제할 수 없다.

통상적으로 저유가는 국내 경제에 호재로 인식돼 왔다. 원료비 절감에 따라 제조업 생산 비용이 줄고 물가상승 압력이 낮아지는 효과가 유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성장 구조가 이어지며 저유가는 국내 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변모하게 됐다.

한국의 신흥국 수출 비중은 58%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신흥국 경기 둔화폭이 예상보다 빠르게 전개되며 조선, 건설 등 주력 수출 부문의 수주 감소가 지속될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총수출은 5272억달러로 전년대비 7.9% 감소했다. 이 가운데 석유제품 수출은 전년대비 36.6% 급감했고 석유화학제품 수출도 21.4% 줄었다.

국내 조선업도 수익성 악화에 휘청이고 있다. 선박과 해양플랜트 신규 수주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불황으로 기존 발주 취소도 잇따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이 지난해 5조원대 영업 손실을 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1조5000억원 수준의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유재훈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국제유가 하락으로 해양자원개발 투자가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등 수요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어 저유가 국면 속에서 업황 회복은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건설업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건설 수주액은 461억달러로 전년대비 30.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해 중동지역 수주 규모는 165억달러로 전년에 비해 절반 가량 급감했다. 저유가로 중동 산유국들이 재정난을 겪으며 발주 물량을 축소하거나 연기한 영향이다.

김선미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건설사가 주력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카타르 등에서의 올해 수주액은 지난해보다 60% 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 국제유가 바닥은?…배럴당 10달러 선까지 내려갈 수도

2014년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기도 했지만 불과 1년 6개월 만에 30달러선 붕괴를 맞게 됐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올해 WTI 평균 전망치를 기존 50.89달러에서 38.54달러로 낮췄고, Brent는 기존 55.78달러에서 40.15달러로 내렸다.

이런 가운데 바클레이즈,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씨티그룹, JP모건, 스탠다드차타드 등 세계 투자은행(IB)에서도 앞다퉈 유가 전망을 하향 조정하고 있다.

바클레이즈는 올해 WTI와 Brent 가격을 각각 60달러와 56달러에서, 37달러로 크게 낮췄다. 모건스탠리는 달러 가치가 5% 오를 경우 유가는 10~25% 하락할 것이라며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예상했다.

골드만삭스와 씨티그룹은 유가가 일시적으로 20달러선으로 떨어질 것으로 판단했다. JP모건과 스탠다드차타드에서는 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달러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탠다드차타드는 원유 가격을 균형점으로 되돌릴만한 펀더멘털(기초여건)이 없는 상황에서 다른 자산 가격 변동에 의한 움직임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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