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손’ 다 빠져나가 성과는 물음표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6.01.14 16:57
  • 호수 1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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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방산 비리 척결’ 1년 평가…의지 확고했지만 한계도 명확해

박근혜 정부의 방산 비리 수사가 제2 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역대급 규모로 출범한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은 1년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서울중앙지검 산하 방위사업비리수사부로 상설화됐고, 감사원은 방산비리특별감시단의 시한을 올해 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지난해에 이어 방산 비리를 척결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성과를 돌이켜보면 그 한계 역시 명확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수조 원대의 방위사업을 주무르는 거물급 브로커들과 군·정부 실세들의 커넥션을 밝혀내지 못한 것은 가장 아쉬운 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 1월6일 방위사업수사부를 신설하고 박찬호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 부장검사를 초대 부장검사로 임명했다. 1년여 간 합수단을 이끌었던 김기동 단장은 제2의 중수부로 평가받는 부패범죄특별수사단 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수사부는 부장검사 아래로 평검사 8명과 수사관 16명, 군에서 영관급 군 검찰관 1명과 위관급 군 검찰관 3명 등 13명이 파견돼 40명 안팎으로 구성될 전망이다. 검사 18명과 군검찰관 8명을 포함해 117명으로 구성됐던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에 비해서는 훨씬 줄어든 규모다.

2015년 3월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이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 사업(EWTS) 비리 의혹이 제기된 무기중개업체 일광공영 본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 연합뉴스

검찰 내 방위사업수사부 신설

이 밖에 방위사업청 방위사업감독관에는 포스코 수사를 담당하기도 했던 조상준 서울중앙지검 2부장이 파견됐다. 또한 방위사업청장 직속으로 방위사업감독관 조직이 신설될 예정인데, 법률·회계·감찰 등을 담당하는 전문가 70여 명이 주요 무기 사업 전반을 사전에 검증할 계획이다. 합수단과 함께 방산 비리 수사의 한 축이었던 감사원은 올해에도 감시단을 운영하며 검찰과 긴밀하게 수사 공조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방산 비리를 막기 위한 법적 절차도 만들어졌다. 방위사업청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한 공무원의 방산기업 재취업 제한 기간은 3년에서 5년으로 늘어났다. 이를 위반한 업체는 방위사업 입찰에서 제한을 받게 되며 방산 비리와 연루된 방산업체는 최대 2년간 정부와 계약을 체결할 수 없게 됐다. 또한 방위사업법 개정안을 통해 군수품 무역대리업을 정의하는 규정을 신설했으며 해당 업체의 대표와 임원은 청렴서약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대통령령이나 국방부 훈령으로 정했던 시험평가 방식은 법으로 규정했다.

박근혜 정부는 방산 비리를 이적행위로 규정하며 발본색원 의지를 수차례 표명해왔다. 실제로 성과도 따라왔다. 합수단은 방산 비리와 관련해 최윤희 전 합동참모본부 의장, 정옥근·황기철 전 해군 참모총장 등 장성급 11명, 영관급 30명을 비롯한 42명의 전·현직 군 인사를 기소했다. 정홍용 전 국방과학연구소장, 김양 전 국가보훈처장 등 전·현직 공무원들까지 합하면 모두 74명이 기소됐다.

그러나 방산 비리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무기 브로커들은 이 와중에도 유유히 법망을 피해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 정의승 유비엠텍 회장, 함태헌 셀렉트론코리아 대표 등이 바로 그들이다. 한 방산업체 관계자는 “정부나 군, 국회 등 방산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람 중 이들에게 접대를 받지 않은 사람은 단언컨대 한 명도 없을 것이다”면서 “군 인사를 이들이 주무르고 있다는 얘기도 공공연하게 나온다. 무기 브로커들을 적발하지 못하면 방산 비리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산비리 합동수사단 단장인 김기동 검사장이 2015년 7월15일 방산 비리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와일드캣 비리 몸통 함태헌 대표 결국 놓치나

대형 무기 브로커 중 가장 먼저 수사선상에 올랐던 정의승 회장은 차세대 잠수함 도입 사업과 관련해 1000억원 상당의 중개 수수료를 받아 군 고위층에 금품 로비를 벌였다는 혐의를 받았지만, 지난해 7월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무기 브로커를 상대로 한 검찰의 수사가 첫걸음부터 꼬여버린 것이다.

함태헌 대표의 경우 합수단의 방산 비리 수사 중 가장 규모가 큰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 도입 사업의 핵심 인물이다. 함 대표의 무기중개업체 S사는 작전요구성능(ROC)에 크게 미달하는 것으로 드러난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을 해군이 도입하도록 로비 활동을 펼쳤는데, 당시 해군참모총장으로는 최윤희 전 의장이 재직하고 있었다. 이때 함 대표가 로비를 위해 최 전 의장의 아들에게 2000만원을 건넸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이보다 앞서 함 대표는 정홍용 전 소장 측에 1억4000여 만원을 건넨 혐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함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은 두 건 모두 기각됐다. 와일드캣 도입 비리 사건으로 김양 전 보훈처장도 기소된 상태이기 때문에 함 대표의 영장 기각은 앞으로 방산 비리 수사에 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총 사업 규모 1조4000억원에 이르는 와일드캣 사업은 방산 비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와일드캣은 레이더와 항속 시간 등 해상작전헬기의 핵심 장비가 ROC에 현격히 미달한 상태였고, 이를 방사청도 인지하고 있었다 <2015년 7월19일 ‘[단독] 1조4000억 해상헬기 부실 방사청도 알았다’ 기사 참조>. 이런 상황에서 방사청은 이르면 오는 2월에 와일드캣 헬기 4대를 도입하고 연말까지 4대를 추가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함 대표에 대한 연이은 영장 기각으로 와일드캣 도입 비리의 뿌리가 밝혀지지 않을 경우, 한반도 안보의 최전선에 있다고 평가받는 해상작전헬기 도입 사업이 또다시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함 대표는 재산 대부분을 해외로 빼돌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면서 “그러나 함 대표가 미국 시민권자인 탓에 수사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큰손’으로 불리는 대형 브로커 중 구속 기소된 인물은 이규태 회장이 유일하다. 1심이 진행 중인 현재 이 회장은 민병훈 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등으로 구성된 23명의 호화 변호인단을 꾸렸다. 민 변호사는 통영함 비리로 기소된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의 1심 변호를 맡아 무죄를 받아내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방위사업수사부가 신설됐지만 합수단이 시작한 사건을 승계하는 선에서 그칠 것이다. 현재 상황을 고려해보면 공소를 유지하는 것만도 힘에 부칠 것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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