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파리 목숨 사(私)노비에 불과하다”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press.com)
  • 승인 2016.01.14 17:07
  • 호수 1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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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의 보좌진과 기업 상대 ‘갑질’ 천태만상
ⓒ 일러스트 정찬동

국회의원의 ‘갑질’이 도를 넘어섰다. 국정감사나 예산안 처리 시점이면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던 행위가 선거를 앞두고 민낯을 드러내는 양상이다.

취재 과정에서 접한 국회의원의 갑질은 생각보다 뿌리가 깊었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국회의원이 자신의 보좌진에게 행하는 갑질은 언론 보도에 나온 것보다 더 많았고, 은밀하고도 오랜 시간 이뤄져왔다. 보좌진이 국회의원 업무의 ‘파트너’라기보다는 ‘하인’쯤으로 취급받는 일이 많았다.

문제는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해도 마땅히 하소연하기가 힘들다는 데 있다. 국회의원 보좌진의 계약은 전적으로 해당 의원의 마음에 달려 있다. 법률적 근거가 미약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약칭 더민주)은 각각 보좌진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보좌진협의회를 두고 있지만 노조와 같은 힘을 갖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또 협의회를 통해 공론화하더라도 부당한 처사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감보다는 일자리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더 크다. 불합리한 일을 주변에 알릴 경우 구설에 휘말려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시사저널은 국회의원의 갑질을 유형별로 분류했다. 대표적으로 의원이 사적으로 보좌진을 부리는 ‘노비형’과 급여를 돌려받는 ‘갈취형’, 기업에 대놓고 후원을 요구하는 ‘뻔뻔형’, 보좌진 교체를 자주 하는 ‘물갈이형’ 등으로 나눴다.

유형1 보좌진은 사노비(?)

야당 L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자신의 신세를 ‘노비’에 비유했다. 그는 “노비 중에서도 ‘사노비’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라며 “채용 형태상 의원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더민주의 한 재선 의원 수행비서인 김 아무개씨(38)는 주말에도 쉬지 못한다. 의원이 가족 행사에 김씨를 불러 운전을 시키기 때문이다. 심지어 의원의 자녀를 태우고 운전한 적도 있다. 김씨는 “주말에 쉰 지가 얼마나 되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18대 국회에서 야당 초선 의원실에 근무했던 여성 보좌진인 이 아무개 비서관은 의원의 딸이 공부할 문제집을 사오라는 지시를 받고 여의도에 있는 서점에서 문제집을 사다 줬다. 하지만 의원은 문제집 구입비용을 주지도 않았다. 게다가 비서관에게 딸의 과외까지 지시했다. 이씨는 결국 업무 시간 이후 의원 딸의 과외선생까지 하게 됐다.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실 여비서는 한밤중에 의원에게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의원은 “내 오피스텔에 물 2병만 사오라”고 지시했다. 밤이 깊은 시각이라 여비서는 자신의 지인과 함께 의원의 오피스텔로 향했다. 그는 “불안한 마음에 지인과 동행했다. 고작 물 2병을 시킨다는 게 이상하고 어이가 없었다”고 전했다.

유형2 “돈을 뱉어라” 임금 갈취형

2015년 말부터 파문이 가장 크게 일었던 유형이다. 보좌진이 받는 월급의 일부를 돌려받는 방식인데, 보좌진의 폭로를 통해 언론에 알려지면서 큰 파장이 일었다. 해당 의원들은 “사실과 다르다”거나 “오해가 있었다”며 서둘러 진화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대동 새누리당 의원의 전직 비서관이었던 박 아무개씨는 2015년 12월4일 박 의원이 월 120만원씩 내놓으라고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박씨는 “박 의원으로부터 ‘여기에 돈 벌러 왔느냐’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밝혔다.

파문이 일자 당사자인 박대동 의원은 같은 달 7일 울산시의회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것이 부덕 때문이며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퇴직 후 2년 가까이 지나고 총선 경선과 공천을 앞둔 시점에 왜 이렇게 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월급 착취’는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2012년 6월 더민주 이목희 의원실에서 근무했던 전직 비서관은 “이 의원 측에서 원래 6급으로 들어왔어야 하는데 5급으로 받아줄 테니 월급 차액을 반환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해 10월까지 5개월간 현금으로 100만원씩 총 500만원을 반환했다.

문제가 커지자 이 의원 측은 해명자료를 내고 “나이와 경력에 비해 보수가 많은 편이니 월급 일부를 운전기사·인턴 등을 돕는 데 쓰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며 “받은 돈은 개인적 정치자금이 아닌 직원 보수 지원에만 썼다”고 설명했다.

김상민 새누리당 의원은 ‘열정 페이’ 논란에 휩싸였다. 김 의원실에 근무했던 전직 비서는 “2014년 9월  채용 당시 김 의원이 ‘5급 비서관으로 채용하겠다’고 했고, ‘행정적으로 9급 비서로 등록하는 대신 급여 차액(월 200만원쯤)을 보전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차액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 의원은 “열심히 일하면 5급 비서관이 될 수 있다고 했던 것이었다. 채용을 약속한 것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유형3 기업 불러다 후원 요구하는 뻔뻔형

정치인들이 기업인을 대상으로 꼼수 후원금을 받거나 후원을 요구하는 것은 ‘갑질’의 전형적인 형태다. 정부나 기업 관계자들은 “국회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국정감사 때만 되면 피감기관과 기업에 대한 ‘갑질’이 하늘을 찌를 기세로 심해진다”고 입을 모았다.

가장 대표적인 유형은 공무원이나 기업 총수에 대한 증인 채택을 무기로 삼는 경우다. 한 기업 대관(對官)팀 관계자는 “증인 출석 대상자 목록에서 빼주는 대신 의원의 지역구 민원을 해결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최근에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에 있는 행사를 후원해달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를 거절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고 털어놨다.

노영민 더민주 의원은 지난해 12월1일 자신의 의원회관 사무실에 카드결제 단말기를 설치해두고 산업통상자원위 산하 기관에 자신의 시집(詩集)을 판매한 사실이 알려져 물의를 빚었다. 노 의원 측은 강매가 아닌 정상적인 판매이며 자발적인 구매라고 주장하지만 출판기념회 개최 사실을 통보받거나 책 구매를 요청받은 피감기관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 의원 측은 사무실에 카드결제 단말기를 설치한 것을 두고 “국회의원들 사이에선 이런 방법이 새로운 게 아니라 관행과도 같은 것”이라고 밝혀 구설에 또 휘말렸다.

기업의 연말 사회공헌 사업을 노린 ‘갑질’도 있다. 한 국회 관계자는 “여야를 막론하고 가장 은밀하고도 깊게 퍼진 행위”라고 말했다. 우선 연말 후원행사를 열거나 기부에 나선 기업 관계자들을 부른 후 “우리 지역에서 행사를 개최하라”고 권유하는 방법이다. 제안을 받은 기업은 의원과의 ‘관계’를 고려해 해당 의원의 지역구에서 행사를 열거나 의원 관계 단체에 기부를 하게 된다. 기업 대관팀 관계자는 “의원과 회사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점은 있지만, 여러 의원에게서 동시다발적으로 요구를 받으면 우선순위를 정하느라 애를 먹는다”고 전했다.

최근 ‘갑질’ 논란을 일으킨 국회의원들. 왼쪽부터 박대동 새누리당, 이목희 더민주, 김상민 새누리당, 노영민 더민주 의원. ⓒ 시사저널 이종현·시사저널 포토

유형4 툭하면 “나가” 일삼는 모욕형

의원과 보좌진의 계약 관계가 불안정하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유형이다. 사소한 일에도 해고를 일삼거나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폭언을 퍼붓거나 모욕을 주는 방식이만연해 있다.

새누리당의 한 초선 의원은 2014년 6월 인턴 직원의 잘못 때문에 의원실과 보좌진 운영을 재고한다면서 보좌진 전원에게 해고 통보를 했다가 철회했다. 또 다른 새누리당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18대 국회에서 툭하면 ‘전원 해고’를 내뱉는 의원 때문에 19대에 다른 의원실로 자리를 옮겼다. 더민주의 한 중진 의원은 몇 달 간격으로 보좌진을 물갈이해 더민주 소속 의원실 보좌진 사이에 회자되기도 했다.

한때 여야 보좌진 사이에서 ‘피해야 할 의원 명단’이 나돌기도 했다. 지금도 당장 피해야 할 의원들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나 있다. 새누리당에서는 K 의원과 M 의원, H 의원이, 더민주에서는 C 의원, N 의원, L 의원, J 의원, P 의원 등의 ‘악명’이 퍼져 있다. 야당 관계자는 “보좌진 채용 공고가 나더라도 해당 의원실은 되도록 피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고 말했다.

“‘갑질’ 막으려면 의식 개선 반드시 필요”
 

박대동 의원이 2015년 12월7일 ‘비서관 월급 상납 강요’ 관련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연합뉴스

국회의원의 갑질을 막기 위한 여러 방안이 제시됐지만 현재까지 뾰족한 해결책이 나오지는 못했다.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이 가진 특수성과 임기제라는 점 등이 걸림돌로 꼽히지만 무엇보다도 의원 개인의 ‘의식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보좌진에 대한 의원의 횡포가 일어나는 원인으로 보좌진의 불안정한 신분이 있다. 보좌진은 별정직 공무원으로 대우받지만 임면이 전적으로 의원의 뜻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이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18대 국회에서 면직된 보좌진은 모두 5692명에 달한다. 의원 1명당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6급과 7급, 9급 비서 각 1명씩이라는 점에서 의원 1명이 4년 동안 평균 2.7명의 보좌진을 면직시킨 셈이다.

하지만 이는 평균치일 뿐, 의원실마다 분위기가 달라 의원실별 편차가 매우 큰 편이다. 4년 동안 한 번도 바꾸지 않은 의원이 있는가 하면, 수시로 교체하는 의원도 많다. 17대 국회 당시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은 4년 동안 16명의 보좌관을 교체했으며, 18대에 들어서면서 보좌진 6명을 전원 교체하기도 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면직예고제 도입을 요구하기도 했다. 김관영 더민주 의원은 지난해 12월1일 국회의원이 보좌진을 면직할 때 사전에 통지하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현재 이 법안은 발이 묶인 채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법안이 만능은 아니다. 여야 보좌진은 한목소리로 ‘의식 개선’을 외친다. 한 야당 의원실 보좌관은 “보좌진의 고용이 안정된다면 좋겠지만, 능력이 떨어지는 보좌관을 마냥 고용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 아닌가. 또 최근에는 보좌진의 전문성이 강화되면서 장기 근속자가 늘어나고 있기도 하다. 고용 안정성뿐만 아니라 보좌진을 함부로 부리는 문제까지 모두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원들의 의식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제도나 법률적인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언론이나 여러 다른 경로를 통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이를 통해 조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할 듯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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