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 앞에서는 ‘난쟁이’ 하급자 앞에서는 ‘거인’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6.01.20 09:37
  • 호수 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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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중 前 총경이 말하는 ‘경찰의 민낯’…“경찰 수뇌부 대통령 관심사항 역할 하려 안달”
장신중 전 총경은 최근 이라는 책을 출간하고, 경찰 조직의 구태를 강력히 비판했다. © 장신중 제공

“경찰은 동맥경화에 걸려 마비돼 있다. 조직 내부의 소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사결정은 주먹구구이고 인사관리는 원칙이 없으며 정치적 외압에 의해 행정 처리는 불투명하다. 경찰 수뇌부는 대외적으로 비굴하며 굴욕적이고, 대내적으로는 권위적이고 무능하다.”

31년간 경찰 조직에 몸담으며 ‘경찰의 꽃’이라는 총경까지 지냈던 전직 경찰관이 밝힌 경찰의 ‘민얼굴’은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 상태였다. 그는 “경찰 조직은 열악한 근무환경에서부터 자학적 관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이었다. 경찰관들은 경찰을 모래알 조직, 따로국밥, 살모사 조직이라고 부른다”면서 “퇴직하면 경찰서 쪽으로 소변도 보지 않겠다는 말까지 공공연히 한다. 자신이 평생 몸담은 직장을 이토록 혐오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경찰의 가장 큰 적은 경찰이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경찰 재직 중에도 경찰의 구태를 드러내고 바로잡는 데 거침이 없었던 장신중 전 총경은 퇴직 후에도 쓴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경찰 재직 당시가 ‘제복 입은 시민’이었다면 지금은 ‘제복 벗은 시민’일 뿐이다. 경찰 조직을 개혁하는 데 남은 생을 기꺼이 바칠 것”이라며 경찰 조직에 대해 변하지 않는 애정을 드러냈다.

권력 바라기’ 경찰 수뇌부, 보신주의에 급급

장 전 총경은 최근 <경찰의 민낯>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을 ‘투쟁의 기록’이자 ‘향후의 투쟁을 예고하는 선전포고문’이라고 정의한 장 전 총경은 경찰 조직에 대한비판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전·현직 경찰총장과 고위직들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경찰의 구조적 문제를 조목조목 짚었다. 책의 내용이 너무 리얼하다 보니 출판사에서 수차례에 걸쳐 수정을 요구해오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결국 제도와 관련된 부분은 실명 처리하고 에피소드 성격이 짙은 내용은 익명으로 처리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우여곡절 끝에 출간된 책이지만 반향은 놀라웠다. 출간 하루 만에 1쇄가 모두 매진됐고, 보름 만에 5쇄에 들어갔다. 대형서점의 사회·정치 분야에서 줄곧 1위를 달리기도 했다. ‘민중의 지팡이’ ‘정의의 수호자’ 등 현란한 포장 뒤에 숨겨져 있던 경찰의 민낯을 본 독자들의 충격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다.

장 전 총경은 “이 책의 제목을 정확히 말하자면 ‘경찰 수뇌부의 민낯’이다”고 강조했다. 경찰 수뇌부는 하급자를 ‘노예’처럼 대하면서 정부나 검찰, 언론 등 타 기관에는 ‘머슴’ 노릇을 자처하고 있다는 것이다. 온갖 기관들이 ‘협조 요청’이라는 이름으로 현장 경찰관들에게 직무 부담을 떠넘기고 있지만, 경찰청은 언제나 ‘예스맨(Yes Man)’에 그치고 있다. 현장 경찰관들은 격무에 지쳐가고 결국 모든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장 전 총경은 “경찰 수뇌부는 권력자의 눈치만 보고있다.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는 사안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하고 싶어 안달을 한다. 그것이 경찰의 업무인지 아닌지도 고려하지 않는다. 이런 일이 지금도 수없이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터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사태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메르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은 바닥을 찍었다. 박근혜 정부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몸이 단 쪽은 역시나 경찰이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지난해 6월5일 “보건 당국이나 경찰의 격리 조치에 대해 불응할 경우 경찰 강제력을 행사하는 등 적극 대응하라”고 일선 경찰서에 긴급 지시를 내렸다. 감염병 대처는 의료 및 보건 전문 기관의 일이다. 경찰은 감염병 예방과 확산 방지에 대한 지식이나 인력, 장비가 없을 수밖에 없다. 또한 경찰이 감염병 환자를 격리하고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없다.

장 전 총경은 “감염병 대처는 경찰과 같은 비전문 기관이 앞장서 할 일이 아니다. 경찰청은 오히려 외부에 노출되는 현장 경찰관들이 메르스에 감염되거나 이로 인한 2차 확산이 없도록 조치하는 데 신경을 썼어야 한다”면서 “그러나 경찰청은 개정된 감염병예방법 60조에 경찰이 감염병 조치에 적극적인 활동을 해야 하는 조항을 넣음으로써 경찰관을 아무런 대책 없이 감염병 위험에 내몰았다. 이 조항을 청와대 눈치 보기의 산물인 ‘강신명 조항’이라고 부르고자 한다”고 밝혔다.

경찰 수뇌부의 ‘권력 바라기’ 행태는 자연히 성과주의와 이에 따른 보여주기식 행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거리에서 각종 구호가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춤을 추고 있는 경찰관들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박근혜 정부가 지상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4대악(성폭력·가정폭력·학교폭력·불량식품) 근절’과 관련한 캠페인이다.

 

© 장신중 제공
성과주의와 이에 따른 보여주기식 행정이 횡행하면서 일회성 이벤트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 장신중 제공


“경찰공제회, 고위직들 놀이터로 전락”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4월 광화문광장에서는 경찰대학 소속의 경찰악대가 4대악 근절 홍보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장 전 총경은 “공연 장소를 광화문으로 정한 것만 봐도 속셈은 빤한 것 아니겠는가. 대통령에게 ‘나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어요’라고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학업에 열중해야 할 경찰대 학생들이 왜 이런 이벤트에 동원돼야 하느냐”면서 “그러나 당시 이 이벤트를 주도했던 경찰대학장은 영전을 했다. 이를 목격한 많은 청장·서장이 지금도 청와대의 눈에 쏙 들어갈 이벤트를 기획하느라 여념이 없다”고 비판했다.

권력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경찰 수뇌부는 하급자 앞에서는 ‘거인’으로 변한다. 경무관 이상의 고위직에게는 비서 역할을 하는 직원이 있는데, 이 직원은 자신이 모시는 상사의 가정사를 비롯해 퇴근 후의 술자리와 귀가한 후 잠자리까지 모든 뒷바라지를 한다. 장 전 총경은 “현대판 몸종인 이들은 이른바 ‘따까리’로 불린다. 경찰 조직은 계급적 권위주의에 너무나 찌들어 있다”면서 “전 세계적으로 경찰관이 상급자에게 집단으로 경례를 바치며 충성을 맹세하는 민주주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며 경찰은 국민에게 봉사할 뿐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 고위직들이 퇴직 후에도 특혜를 누려왔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경찰공제회가 대표적인 예다. 경찰공제회는 10만명에 이르는 경찰관들의 노후 생활 안정을 위한 기금을 관리하는 곳으로, 운영하는 자금규모는 1조7000억원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역대 이사장은 모두 경찰 출신이고 금융 투자를 총괄하는 사업관리이사(CIO)역시 대부분 경찰 출신들이 꿰차면서 자금운용의 전문성이 결여돼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교직원공제회·군인공제회 등 다른 공제회가 투자 전문가들을 영입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실제로 경찰공제회는 지난해 새로운 CIO로 금융 투자 경력이 전혀 없는 현직 경찰서장을 내정했고 낙하산 논란 끝에 결국 낙마하면서 경찰공제회가 경찰 고위직 출신들의 ‘곳간’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장 전 총경은 “전체 경찰관의 노후 복지를 위해 운영돼야 할 경찰공제회가 고위직들의 놀이터로 전락하면서 자금 역시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경찰공제회가 지난 1989년부터 2005년까지 경무관 이상 계급의 경찰공무원들에게 퇴직 후 5년 동안 품위유지비 명목으로 월 50만원을 지급해온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기금의 대부분을 납부하고 있는 하위직들의 봉급을 고위직들의 ‘쌈짓돈’으로 지급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 공제회 측은 “고위직에게 지급한 돈은 공제회의 전신인 대한경무협회로부터 넘겨받은 기금에서 따로 지급된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2011년 정부 차원의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진 이후 경찰에서는 항의의 의미로 수갑을 반납하기도 했다. © 장신중 제공


장 전 총경은 재직 시절 수차례 검찰과 부딪혔다. 사건 내용은 각각 달랐지만 결국 수사권 독립과 관련된 문제였다. 장 전 총경은 검사 수사 지휘 거부와 관련해 3년8개월간의 지리한 법정 투쟁을 겪기도 했다. ‘장신중 경정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장 전 총경이 그동안 관행으로 여겨졌던 ‘의뢰입감’(검찰이 체포한 피의자를 경찰이 데려다 유치장에 입감하는 것)을 정면으로 거부하면서 법정 싸움으로 이어졌고, 결국 장 전 총경이 징역 4월에 선고유예를 받으면서 마무리된 사건이다. 장 전 총경은 “이 사건은 단순히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패배로 점철된 경찰의 모습 그것이다”면서 “지금도 우편으로 배송돼온 대법원 판결문을 뜯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다.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는 없지만 경찰 수사권이 독립되는 그날 뜯을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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