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쇼의 주인공은 역시 ‘초록빛 자동차’
  • 디트로이트=박성의 시사비즈 기자 (sincerity@sisabiz.com)
  • 승인 2016.01.20 09:55
  • 호수 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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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친환경차’ 대거 선보여…한국 브랜드 크게 주목 못 받아
❶ 2016 디트로이트 모터쇼가 열린 코보센터에 전시된 도요타 수소차 '미라이' ❷ 아우디 수소차 콘셉트카 ‘h-트론’ ❸ BMW PHEV 스포츠카 ‘i8’ ❹ 도요타 미래형 연료전지 콘셉트카 ‘FCV 플러스’ ❺ 충전 중인 아우디 PHEV A3 스포트백 e-트론 © 시사비즈 박성의

“환영한다. 당신이 밟는 모든 거리에 헨리 포드(Henry Ford)의 흔적이 남아 있다.” 미국 현지 시각으로 1월10일, 눈발이 휘날린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공항. 디트로이트에서만 43년을 산 우버(Uber) 택시 기사 제임스 팩스턴이 모터쇼를 취재하러왔다는 기자에게 미소를 머금고 건넨 첫마디였다. 팩스턴은 “매년 1월이면 세계 각국에서 모터쇼를 보러 왔다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며 “장담컨대 당신은 자동차 역사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폭스바겐 사태 후 친환경차 부상 트렌드

디트로이트에서는 1907년부터 매년 1월 ‘북미 국제 오토쇼(NAIAS, 이하 디트로이트 모터쇼)’가 열린다. 햇수로만 109년째다. 대회는 디트로이트 자동차딜러협회(DADA)가 주관한다.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제네바 모터쇼, 파리 모터쇼, 도쿄 모터쇼와 함께 세계 5대 모터쇼로 꼽힌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이 중 디트로이트 모터쇼를 ‘넘버 원’으로 치지만, 올해만큼은 위상이 예전만 못하리라는 전망이 나왔다. 모터쇼보다 앞서 열린 2016년 국제 소비자가전박람회(CES)에 제너럴모터스(GM)와 현대차 등이 양산형 전기차와 IT(정보통신) 융합 기술을 먼저 공개한 탓이다. CES가 찬물을 끼얹었지만, 디트로이트 모터쇼도 이름값은 했다. 올해 BMW와 벤츠, GM과 포드 등 40여개 완성차업체가 신차 40종 이상을 비롯해 총 700여 종의 차량을 내놓았다. 내로라하는 자동차회사가 장·단기 먹거리를 공개하는 자리인 만큼 세계 자동차업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1월11일 모터쇼 당일, 행사가 열린 코보 센터(Cobo center)는 오전 6시부터 세계 각국 기자단으로 붐볐다. 같은 시각 1층 자동차 전시관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자동차회사 직원들은 부스에 먼지 한 톨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신차 공개에 사용할 영상은 끊임없는 리허설을 거쳤다.

모터쇼 흥행은 이틀간 열리는 언론 컨퍼런스(press conference)가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동차업체들은 48시간 동안 세계 각국에서 모인 자동차 기자단 앞에서 저마다의 신무기를 선보인다. 이 기간 주목받지 못하면 행사가 진행되는 2주 내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한다. 반대로 이틀 안에 업계 관심을 끌어모으면 회사 위상이 올라간다. 컨퍼런스는 혼다 시빅이 ‘2016년 북미 올해의 차’로 선정되는 것을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첫 번째 주자는 미국 크라이슬러였다. 기자 1000여 명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크라이슬러가 준비한 비기(祕器)가 베일을 벗었다. 등장한 차량은 대형 세단이나 고급 스포츠카도 아닌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미니밴 퍼시피카였다. 가솔린차에서 강점을 보였던 크라이슬러가 그린카(green car·친환경차) 열풍에 동참한 것이다.

결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반전은 없었다. 주인공은 예고대로 친환경차였다. ‘초록빛 자동차’의 부상은 지난해 9월 불거진 폭스바겐(폴크스바겐) 스캔들이 시발점이었다. 자동차 기술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폭스바겐이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고의적으로 조작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클린 디젤(오염물질이 적게 배출되는 디젤) 신화는 그렇게 무너졌다. 이에 매해 디젤 차량을 주력으로 내세웠던 각국 완성차 브랜드들이 수소·전기차 카드를 빼들었다.

변화는 개최국인 미국의 자동차 대표 3사에서부터 읽힌다. 크라이슬러가 세계 최초로 공개한 PHEV 미니밴 퍼시피카는 2시간 충전 시 순수 전기 모드로 48㎞를 달릴 수 있다. GM은 양산형 전기차 볼트(Volt) EV를 공개했다. 볼트 EV는 GM 친환경차 라인업의 핵심으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10월 LG전자가 볼트 EV 배터리 시스템과 인포테인먼트 분야 공동 연구 업체로 결정되며 업계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현재까지 개발된 볼트 EV 배터리 성능으로는 한 번 충전으로 200마일(약 321㎞) 이상 주행할 수 있다.

“전기차가 꿈이 아닌 현실이란 걸 보여줬다”

1월11일 볼트 EV를 타고 컨퍼런스 무대에 등장한 메리 바라 GM 회장은 “볼트는 전기차가 꿈(dream)이 아닌 현실(real)이라는 걸 보여줬다”며 “GM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GM은 올 연말부터 미국 미시간주 오리온 공장에서 볼트 EV를 양산할 계획이다.

픽업트럭 강자 포드도 PHEV 준중형 세단 퓨전 에너지의 부분 변경(페이스리프트) 모델을 내놓았다. 포드는 2020년까지 친환경차 개발에 45억 달러(약 5조4600억원)를 추가 투자할 계획이다. 향후 13종의 신형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을 개발해, 전 차종의 13%에 불과한 전기차 비중을 2020년에 40%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포드는 이를 위해 북미를 넘어 유럽과 아시아 지역으로도 전기차 연구와 개발 프로그램을 확장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업체들이 잇따라 신형 친환경차를 발표한 가운데, 독일 대표 3사도 그린카 대열에 동참했다. 미국 업체들이 친환경차의 실용성과 성능을 내세웠다면, 독일산 친환경차는 특유의 화려한 디자인을 자랑했다. 다양한 색상과 유려한 차체는 친환경차 디자인은 고루하다는 편견을 잊게 만들었다.

BMW가 내세운 건 친환경차 브랜드 i시리즈다. BMW는 전기차 i3와 PHEV 스포츠카 i8을 부스 전면에 내세웠다. ‘BMW i’의 첫 양산 모델인 i3는 배기가스 배출량이 0에 수렴한다. 출시 후 미국 시장에서 판매된 전기차 8대 중 1대가 i3였다. 성능만큼 주목받은 건 독특한 디자인이다. 둥근 차체에 범퍼 양쪽 끝에 자리한 동그란 안개등이 귀여운 인상을 준다. 범퍼 위쪽 BMW 상징인 키드니 그릴이 없다면 이 차가 BMW 태생임을 알기 어려울 정도다.

i3가 작은 차체로 주목받았다면 i8은 화려한 외양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i8은 BMW 최초의 PHEV 모델로, 윙도어 형식의 매끈한 디자인이 이목을 끈다. 모터쇼 기간 중 럭셔리 매거진 롭리포트(Robb Report)가 발간 40주년을 맞아 선정한 럭셔리카 12종에 포함되기도 했다. BMW 트윈파워 터보 기술이 적용된 3기통 가솔린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가 탑재돼 최고 출력 231마력(ps), 최대 토크 32.7kg·m의 힘을 낸다.

 

매년 1월 북미 오토쇼가 열리는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코보센터. © 시사비즈 박성의


日 도요타 부스, 외신기자들로 문전성시

폭스바겐그룹 계열 아우디는 수소연료전지차 아우디 h-트론 콘셉트카를 선보였다. h-트론은 완전 충전에 4분이 소요되며 1회 충전으로 600㎞까지 달릴 수 있다. 수소차로 배출가스가 없다. 다만 h-트론은 콘셉트카로 양산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아우디는 향후 자율주행 기술 등을 탑재해 생산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이 밖에 붉은 색상의 PHEV A3 스포트백 e-트론이 전시돼 수많은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이 차는 완충 시 기름으로 940㎞, 전기차 모드로는 50㎞까지 주행할 수 있다. 아우디는 컨퍼런스에서 2018년부터 전 차종을 하이브리드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벤츠는 PHEV 동력계를 갖춘 GLC 350e4매틱을 전시했다. 211마력 가솔린 엔진과 116마력 전기모터를 결합했다. 100㎞/h까지 가속 시간은 5.9초, 최고 시속은 235㎞다. 이 밖에 177마력의 힘을 내는 전기차 B250e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다만 벤츠의 경우에는 친환경차보다 올해 3월 출시될 예정인 신형 E클래스가 더 주목을 받았다. 아시아 국가로 모터쇼 최대 참가 업체를가진 일본은 독일차와는 다른 매력을 선보였다. 대표는 도요타다. 포르쉐 옆에 차린 초대형 부스는 연일 몰리는 외신기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주인공은 수소차 미라이였다. 미라이는 한 번 충전으로 약 502㎞를 주행할 수 있으며 완전 충전까지 3∼5분이 걸린다. 이 밖에 도요타는 미래형 연료전지 콘셉트카 FCV 플러스 등을 전시해‘수소차 리더’ 입지를 굳혔다.

친환경차 대전에서 아쉽게도 한국은 뒤로 밀렸다. 현대차는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를 전면에 내세웠으며, 기아차에서는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 콘셉트카 텔루라이드가 주목받았다. 텔루라이드는 3.5L 가솔린 엔진과 130마력의 전기모터를 탑재한 PHEV 모델이지만 성능보다는 디자인에 관심이 쏠렸다. 현대차가 전시한 쏘나타 하이브리드 역시 제네시스에 밀려 주목 대상은 아니었다. 이 밖에 기아차가 차세대 친환경 전용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 니로 티저 이미지를 공개했지만 이목을 크게 끌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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