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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아의 음식인류학] 우리는 여전히 구석기 원시인처럼 먹는다

현대인과 원시인의 다를 바 없는 ‘한 끼’ 먹거리 찾아나서기

이진아 | 환경·생명 저술가 ㅣ . | 승인 2016.01.20(Wed) 21:55:19 | 13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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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를 조금 앞둔 시각, 서울 광화문·여의도·강남역 등 사무실이 몰려 있는 지역에서는 정장을 입은 남녀들이 이 건물 저 건물에서 쏟아져 나온다. 어떤 식당을 정해 확실하게 움직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오늘은 어디 가서 또 무얼 먹나?”

 

“현대인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맞는 먹거리를 찾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원시인과 다를 바 없다.” 스웨덴 룬트 대학 의학부 슈타판 린데베르히(Staffan Lindeberg)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원시인의 식생활을 연구해 현대인들도 기본적으로 원시인이 먹듯이 식습관을 지켜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팔레오 다이어트(paleo-diet)’, 혹은 ‘원시인 다이어트’라고 이름 붙여진 식이요법을 강조한다.

 

식생활 전문가의 입에서 나온 이런 주장은 대다수 현대인에게 선뜻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일 수 있다. 근현대 문명기에 접어든 후부터 자신들이 이전 시기 사람보다 여러모로 나은 인간이라는 자부심은 인간의 의식에, 심지어 잠재의식에도 기본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린데베르히 교수 의견에 대해 여기저기서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우리의 식생활이 원시시대와 같단 말인가”라고.

 

원시인은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 두 발로 걷는 영장류가 지상에 출현한 시기에 대해 최근 학계에서는 약 700만~800만년 전이라고 보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식량을 구하는 방법으로 원시시대를 구분해보면 ‘수렵·채취’ 시대가 먼저고 그다음 나타난 것이 ‘농업’ 시대다. 그런데 농업이 지구상에 나타난 것은 가장 빠른 지역이라 할지라도 1만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런 만큼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인간은 ‘수렵·채취’로 먹고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제일 중요한 지식은 주변 생태계에서 어떤 것이 먹을 수 있고, 어떤 것이 먹을 수 없는지 판단하는 일일 터다. 지식의 대부분은 부모나 가까운 웃어른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것을 그대로 물려받겠지만, 그런 지식이 미치지 못하는 상태에서 스스로 판단해야 할 때도 비일비재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원시인이 숲 속에서 길을 잃었다고 치자. 한참 헤매다 보니 배가 고프다. 주변을 둘러봐도 늘 먹던 열매 같은 것을 찾을 수 없다. 그럼 이 원시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 십중팔구 일단 보기에 먹음직해 보이는 걸 찾을 것이다. 초록 잎새 사이로 잘 익어서 빨갛게 빛나는 열매가 보인다. 하나를 따서 먼저 코로 냄새를 맡아볼 것이다. 달콤한 냄새가 난다면 그다음에는 입으로 조금만 베어 물어볼 것이다. 떫거나 아리거나 쓴맛 없이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나며 목구멍으로 잘 넘어간다. 그제야 원시인은 안심하고 그것과 똑같은 열매를 따서 배부를 때까지 먹을 것이다.

 

원시적으로 보이는 이 먹거리 테스트는 사실 생리학적인 기준으로 볼 때 상당히 합리적인 것이다. 20세기 말부터 생리학자들은 음식의 맛이 그 음식의 성질에 대한 지표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진화생물학자인 랜돌프 네스와 조지 윌리엄스는

<우리는 왜 병에 걸리는가>라는 명저(名著)에서 이 점을 설득력 있게 설파했다. 먹거리가 되는 동물과 식물은 자신을 먹으려는 동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독성을 만들며, 그것을 먹는 동물은 역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독성이 든 먹거리의 맛을 떫고 쓰고 느끼한 형태, 즉 혐오감을 주는 맛으로 느껴 식별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인간에게 필요한 자양분이 든 음식은 달콤하거나 고소하거나 하는 ‘좋은 맛’으로 인지된다는 것이다. 1995년 캐나다의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 오센코프 박사팀은 독성이 든 먹거리를 맛보았을 때 뇌의 하부에서 맛에 대한 혐오감이 조성되어 인간으로 하여금 그런 음식을 피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렇다면 주변 생태계에서 먹거리를 찾아 헤매는 원시인은 나름 상당히 고기능화된 식별 장치를 갖고 움직이는 셈이다.

 

현대인과 원시인, 99.999…% 같은 유전자


현대인은 어떨까? ‘우린 원시인과 달라’라고 나설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렇다면 당신은 오늘 점심을 어떻게 먹었는지 생각해보자. 점심시간에 배가 고파지자 사무실을 나서거나 혹은 어디서 또 무얼 먹어야 할지 망설이다 동료 중 누군가의 제안을 받았을지 모른다. 새로 문을 연 비빔밥집이 있는데 괜찮아 보이니 가보자고. 가서 먹어보니 야채는 씁쓰름하고 밥은 구수한 맛이 없다. 한마디로 음식 맛이 별로였다. 그러면 속으로 다짐한다. ‘다음부턴 여기 오지 말아야지.’ 또 다른 제안을 받고 근처의 허름하지만 맛있기로 소문난 국밥집에 갔을 수도 있다. 비교적 착한 가격에 구수한 고깃국, 그 안의 쫀득한 쌀밥을 맛있게 먹었다면 ‘괜찮은데? 종종 와야겠군’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좋아하는 식당에 자주 가는 이유를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든, 결국 근본을 들여다보면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우리의 ‘입맛’이며, 그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아 오늘도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앞서 언급했던 린데베르히 박사의 말에 공감이 가는 지점이다. 21세기의 우리나 몇 만 년 전, 몇 십만 년 전에 살았던 원시인이나 분명히 공통점이 있다.

 

사실 이건 하등 이상한 일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인간이 농사를 처음 짓기 시작한 때가 1만년 전이다. 현대와 같은 대량 생산의 식생활 구조가 확립된 게 불과 수십 년 전의 일이다. 결국 우리는 원시인과 99.999…% 같은 유전자 정보를 갖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생명을 유지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먹거리 선택의 원칙이 당연히 같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해지기도 한다. 안 그래도 먹거리의 안전성 문제로 이렇게 저렇게 말이 많은 세상인데 가장 단순하면서도 고기능인 식별 장치를 세포 안에 탑재하고 있다는 얘기가 되니까. 어릴 때 들었던 할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유달리 입이 까다로웠던 필자에게 가정 시간에 현대영양학을 배웠던 어머니는 골고루 먹으라고 늘 얘기하셨다. 하지만 어쩌다 우리 집을 찾으셨던 할머니는 그런 잔소리를 듣고 나오는 내게 살며시 얘기하곤 하셨다. “입에 맞는 걸 먹어야 오래 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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