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용역회사까지 집행부 친인척과 측근이 장악”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6.01.28 18:50
  • 호수 1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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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YMCA 임원 비리 의혹 조사한 보고서 단독 입수

서울YMCA 사태가 일파만파로 치닫고 있다. 당초 30억원 투자 손실에서 시작된 의혹이 집행부의 배임이나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형세다.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112년 동안 우리나라 시민사회운동을 이끌어왔던 서울YMCA가 최대 위기에 빠진 것이다. 서울YMCA 측은 “비자금 조성이나 특혜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맞서고 있다. 문제를 지적한 일부 언론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까지 준비 중이다. 하지만 서울YMCA는 지난 2003년에도 임원들의 비자금 조성 사실이 드러나면서 집행부가 물갈이된 전력이 있다.

지난해 10월 말 심규성 감사가 조기흥 이사장과 안창원 회장 등 4명의 전·현직 임원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사건이 불거졌다. 고발장에 따르면, 서울YMCA의 자산을 관리하는 서울기독교청년유지재단은 2008년 30억원을 고위험 파생상품인 ELS(주가연계파생결합증권)에 투자했다가 전부 날렸다. 투기성 투자 이면에 수뇌부들의 개입 가능성이 있다고 심 감사는 지적했다.

112년 동안 우리나라 시민사회운동을 이끌어온 서울YMCA가 최근 불투명한 자금 집행과 집행부 다툼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심규성 감사는 “재단법인이 기본 자산을 고유 목적 사업 이외에 지출하려면 주무 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서울YMCA는 이사회 승인 없이 30억원의 자산을 ELS에 투자하면서 지자체인 서울시나 종로구청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며 “수뇌부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심 감사는 그 근거로 ‘일산수련원 토지보상금(1차분) 50억원 중 대출 상환금 8억1800만원을 제외한 42억200만원을 동양종금의 마이에셋 사모펀드에 예치한다’는 취지의 내부 기안용지를 공개했다. 해당 문서에는 안창호 회장과 조기흥 이사장의 서명이 있었지만, 비밀등급이 ‘급비밀’로 분류돼 있었다. 매년 열리는 정기총회 결산 서류에도 펀드 투자 사실은 언급되지 않았다. 심 감사의 주장대로라면 일종의 분식회계를 한 셈이 된다.

시사저널은 서울YMCA 임원 비리 의혹을 조사한 실태 보고서를 최근 입수했다. 가칭 ‘서울YMCA정화대책위원회’가 작성한 이 문건은 총 130쪽 분량으로, 서울YMCA의 난맥상이 상세하게 언급돼 있었다. 서울YMCA가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할 때 꼼꼼한 검증이 요구되고 있다. 서울YMCA는 2008년 일산 청소년수련원 부지 등을 매각하면서 350억원가량을 받았다. 이 돈으로 2009년 경기도 일산에 골프연습장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80여 억원을 날렸다. 2010년 9월 고양시가 골프장 사업을 직권 취소하면서 공사가 중단된 것이다. 서울YMCA는 고양시를 상대로 200억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다가 돌연 취하했다. 당시 일산 골프연습장을 건립한 곳은 D사로, 서울YMCA와 142억원에 공사 계약을 체결했다. 이사회에서 승인된 금액이 60억원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공사비 부풀리기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YMCA는 2013년 1월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의 J빌라 8채 중 4채를 산하 국제교류센터를 통해 매입했다. 매입가는 한 채(125.59㎡)당 2억8000만원씩 총 11억2000만원이었다. 건물 완공 이전에 잔금 납부까지 마쳤다. 당시 주변 시세는 2억원 미만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이 확보한 이 빌라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2014년 7월 501호(108.88㎡)의 소유주가 D사에서 박  아무개씨로 변경됐다. 거래가는 1억2740만원에 불과했다. 평수 차이를 감안해도, 서울YMCA가 D사로부터 매입한 금액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D사의 대표는 오 아무개씨로, 전직 서울YMCA 이사인 이 아무개씨의 처조카다. 오 대표의 둘째 아들은 현재 서울YMCA의 과장으로 근무 중이다. 특히 이 전 이사는 표용은 서울YMCA 명예이사장과도 각별한 사이로 알졌다. 때문에 서울YMCA와 D사의 계약 이면에 또 다른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일고 있다.

실제로 D사는 그동안 서울YMCA의 공사를 수주하면서 급성장해왔다. 2007년 종로본관 리모델링 공사와 2008년 종로본관 외벽 공사도 D사가 수주했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서울YMCA로부터 수주한 공사금액만 650억원대에 이른다. 서울YMCA는 최근 경기도 의정부에 서울YMCA 다락원 캠프장을 불법 증축하다가 지자체로부터 과징금 폭탄을 맞았다. 공사비 4억원과 철거비는 물론이고, 5000만원의 강제이행금까지 물어야 할 처지가 됐다. 이 공사 역시 D사에서 진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YMCA 집행부를 검찰에 고발한 심규성 감사가 1월20일 기자와 만나 고발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집행부, 명예이사장 측근·친인척으로 채워져

계속되는 서울YMCA 집행부의 불투명한 자금 집행으로 재정은 갈수록 악화됐다. 지난해 4월에는 112년 역사상 처음으로 직원들의 급여가 체불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서울YMCA는 일부 자산을 담보로 운영비를 대출받았다. 종로본관의 임대보증금 역시 30억원대에서 80억원대로 높아졌다. 최근에는 800억원 규모의 강남지회(강남YMCA)에 대한 신탁 개발 추진 사실이 드러나면서 내부 반발을 사고 있다.

서울YMCA 측은 “필요한 절차를 모두 거친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YMCA의 한 관계자는 “건설업체 선정은 철저하게 입찰을 통해 진행된다. 홍은동 빌라 역시 협의를 통해 입지가 좋은 호수를 미리 선점했기 때문에 완공 이전에 잔금을 납부한 것”이라며 “일각에서 제기되는 특혜 논란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근거 없이 허위 기사를 게재한 일부 언론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에 따른 고소를 준비 중이다. 법무법인과 계약을 마친 상태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2008년 이사회 승인 없이 30억원을 투자한 이유에 대해서는 한사코 답변을 꺼렸다. 그는 “이미 경찰 조사에서 충분히 소명한 상태다. 적당한 때가 되면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의혹에 대해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만 말했다.

서울YMCA 집행부가 표용은 명예이사장의 친인척이나 측근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현재 서울YMCA의 이사장은 조기흥 평택대 총장이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다. 하지만 실세는 표 명예이사장이라는 게 기자가 만난 서울YMCA 인사들의 공통된 얘기다. 표 명예이사장은 1985년부터 2003년까지 18년간 이사장을 역임했다. 안창원 현 회장 역시 표 명예이사장의 처조카다. 안 회장은 2008년 기획행정국장 재임 당시 동양종금의 고위험 투자 상품에 30억원을 투자했다가 11억원을 날린 장본인이다.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다시 KB국민은행의 고위험 선물옵션에 투자했다가 원금을 완전히 탕진했다. 현재 통장 잔액은 18만983원이 전부다.

서울YMCA의 이사로 있는 이 아무개씨는 표 명예이사장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이 이사의 경우 사위와 조카까지 현재 서울YMCA에 근무 중이다. 표 명예이사장의 조카인 고 아무개씨는 서울YMCA 본부장으로 재직하다 퇴직했다. 심지어 서울YMCA의 청소 용역을 하는 M사 역시 표 명예이사장의 처조카인 안 아무개씨가 대표를 맡고 있었다. M사의 감사는 표 명예이사장의 측근이자 서울YMCA 이사인 이 아무개 이사였다. 서울YMCA의 자금 문제가 불거진 것도 결국 집행부의 폐쇄적인 구조와 투명하지 못한 자금 운영 탓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YMCA의 산증인으로 통하는 고(故) 전택부 서울YMCA 명예총무도 2003년 비슷한 지적을 했다. 그는 1938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 해산된 서울YMCA를 1958년 다시 일으켜 세운 주역이다. 전 명예총무는 2003년 발간한 저서 <Y새끼다리들이여>에서 표용은 명예이사장을 서울YMCA를 파국으로 이끈 핵심 인물로 지목했다. 그는 “1인 집권 체제가 장기간 이어지는 동안 서울YMCA에서는 당연히 지켜져야 할 도가 무너졌다”며 “표 명예이사장의 지인들이 요직에 앉았고, 권한이 집중되면서 예산 집행은 ‘깜깜이’로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공교롭게도 서울YMCA는 2003년 2월 수억 원 규모의 비자금 조성 사실이 드러나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표 명예이사장은 비자금 조성 배경으로 지목되면서 검찰에 고발까지 당했다. 서울YMCA의 도덕성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안팎에서 터져 나왔다. 표 명예이사장은 일선에서 물러나고, 후임으로 조기흥 이사장이 취임했다. 2004년에는 표 명예이사장의 처조카인 안창원씨가 기획국장으로 임명됐다. 안씨는 2009년 회장으로 승진했고, 최근 배임 혐의로 조 이사장과 함께 검찰에 고소된 상태다. 12년 전의 상황이 그대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YMCA 재정위원장을 지낸 한 인사는 “재단의 파행 운영을 막기 위해 2008년 국세청에 제보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관할 세무서가 전혀 추징을 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다른 세무서에서 D사에 대해 수억 원을 추징했다”고 지적했다.

서울YMCA “악의적 기사, 법적 대응 준비”

시사저널은 그동안 의혹의 중심에 있는 조기흥 이사장과 안창원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1월22일 현재까지 답변이 없는 상태다. 기자는 어렵게 표용은 명예이사장과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친인척이 맡고 있는 용역은 예전부터 해오던 관행이 그대로 이어져온 것”이라며 “금액도 얼마 되지 않는데 문제 삼는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03년에도 비자금 배경으로 지목되면서 검찰 고발까지 당했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주변에서는 무고 혐의로 고소하라고 부추겼지만 참았다. 개혁을 주장하는 세력이 오히려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서울YMCA를 흔드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YMCA도 지난해 12월 이사회를 통해 안 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한 심 감사를 회원에서 제명했다. ‘서울YMCA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취지에서였다. ‘새로운 YMCA를 세워가고자 행동하는 간사 일동’은 곧바로 성명서를 내고 ‘보복성 인사’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심 감사도 회원 제명 결의를 취소해달라는 취지의 가처분신청서를 12월 말 법원에 제출한 상태다. 이르면 올 1월 말에 가처분신청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주목된다. 지난해 10월 말 고발장을 접수한 검찰은 그동안 종로경찰서를 통해 수사를 지휘해왔다. 현재는 조사를 대부분 마쳤고, 어떻게 처리할지를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어떤 결론을 내리느냐에 따라 서울YMCA 사태의 향방 또한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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