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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 하나에 1500만원, 꽁지돈으로 10억원

마카오 정킷방의 실체

조해수 기자 ㅣ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6.01.28(Thu) 18:52:27 | 13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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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킷방. 어디서 한 번쯤 들어봄 직하지만 여전히 익숙지 않은 단어다. 정킷(Junket)의 사전적 의미는 공무원들이 공금으로 유람 삼아 다니는 시찰, 즉 관비 유람 여행이다. 여기서 영화산업으로 의미가 확장돼 영화사가 기자나 평론가를 초청해 영화를 시사하고 감독·배우 인터뷰 등 영화 관련 취재를 진행하는 마케팅 행사를 뜻하기도 한다. 카지노업계로 넘어가면 정킷은 이른바 거액의 ‘도박 여행’을 뜻하는 말이 된다. 여기에 프라이빗한 공간을 뜻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단어인 ‘방’이 붙게 되면 좀 더 은밀한 의미가 담긴다. 정킷방은 도박업자가 카지노의 일부를 빌려서 손님을 유치한 후 수익을 내는 사설 도박장을 말한다. 임대료를 내거나 약정된 비율에 따라 카지노 측과 수익을 나누는 방식으로 운영되며 보통 1년 단위로 계약이 이뤄지는데 임대료 명목으로 카지노 측에 지불해야 하는 돈만 연간 수백억 원대에 이른다.

수익을 내기 위해 거액의 도박자금을 끌어들여야 하는 도박업체 측과 남들 눈에 띄지 않고 ‘큰 판’을 즐기고 싶어 하는 도박꾼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정킷방은 자연스럽게 VIP 전용 도박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화려한 카지노의 불빛 아래에는 일반인들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또 다른 ‘그들만의 세상’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유통되는 돈은 상상을 초월한다. 실제로 상습 해외 원정 도박 혐의로 기소된 10여 명의 기업인이 정킷방에서 탕진한 돈은 500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어떻게 도박의 늪에 빠지게 된 것일까. 실제 수년 동안 상습적으로 정킷방을 드나들었던 도박꾼들을 통해 은밀하게 운영되는 그들만의 세상을 들여다봤다.

ⓒ 시사저널 임준선

중소기업 대표인 A씨. 전국에 30여 개의 직영점과 가맹점을 둔 A씨는 최근 대기업의 투자를 받아 중국 등지에 해외 영업점을 개설하기도 했다. 투자 유치를 위해 대기업 직원에게 수시로 접대를 해야 하는 사업 특성상 강남 일대의 유흥업소를 제집 드나들 듯 드나들었다. 이 유흥업소에서 마카오 정킷방을 소개받았다. A씨는 평소 강원랜드나 경마장을 자주 드나들었는데 최근 사업이 번창하면서 언론에 회사가 소개되는 등 관심이 집중되자 이미지 관리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정킷방의 경우 신변 보호가 확실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됐다.

강남 등지에 큰 외식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B씨는 강원랜드 등 국내 카지노에서 정킷방을 소개받았다. 카지노에서 큰 규모로 베팅을 하고 사채를 한 번도 쓰지 않을 정도로 현금이 두둑한 것을 보고 이른바 브로커들이 접근해왔다. 국내 카지노와 달리 베팅액에 제한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국내의 불법 도박장에도 베팅액 제한이 없지만 마카오 정킷방의 경우 자금 동원력에서 국내와 차원이 다르다는 이야기 역시 솔깃했다.

정킷방을 알선하는 브로커들은 도박판은 물론 술과 향응이 있는 사적 모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동남아 골프 여행을 가면 자연스럽게 정킷방 브로커들이 따라붙는다. 시드머니(최초 시작하는 금액) 자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일반인의 경우 손사래를 치지만 여윳돈이 많은 기업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은 쉽게 도박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A씨와 B씨 역시 사업 특성상 현금 여유가 충분했다.

마카오 대형 카지노에는 VIP 고객 전용인 ‘정킷방’이 존재한다. ⓒ 연합뉴스

A씨가 정킷방에 관심을 보이자 며칠 후 연락이 왔다. 마카오까지의 항공편과 현지 교통편, 숙박시설 이용은 정킷방 측에서 모두 부담할 테니 한번 놀러오라는 것이다. 마카오의 경우 카지노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정킷방이 존재하는데, 국내 조폭들의 진출이 늘어나면서 ‘돈줄’인 VIP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브로커들의 물밑 경쟁도 치열하다고 한다. 사실 VIP에게 항공료나 숙박료는 푼돈에 불과하기 때문에 금전적인 서비스보다 깔끔한 일처리로 완벽한 신변 보호를 할 수 있느냐가 고객 유치의 관건이 되고 있다.

극진한 대접을 받는 듯한 기분에 A씨는 3박 4일 일정으로 부담 없이 도박 여행에 나섰다. 특히 마카오의 경우 홍콩을 경유하기 때문에 출입국 기록만으로는 도박과 전혀 무관해 보인다는 것이 A씨에게는 큰 매력이었다. 마카오에 도착해 정킷방 측에서 제공한 최고급 차량을 타고 호텔로 이동한 A씨는 호텔에서 가장 좋은 스위트룸을 제공받았다. A씨의 방에서 정킷방으로는 일반인들의 이용이 제한돼 있는 엘리베이터가 직통으로 연결돼 있었다. 호텔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A씨가 마카오에 왔다는 사실조차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철저하게 신변 보호가 이뤄지고 있었다. A씨는 “신변 노출을 꺼리는 사람들이 정킷방을 이용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러나 한눈에 봐도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을 꽤 많이 목격했다. 프로스포츠의 유명 감독인 C씨나 유명 운동선수인 D씨는 자주 볼 수 있었다”면서 “재벌 일가나 정치인 등 거물급들을 위한 VVIP룸도 존재한다. 이들에 비해서는 우리 같은 중소기업인들은 피라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B씨는 일반 카지노를 거쳐 정킷방으로 올라갔다. 일반 카지노를 지나 한쪽에 위치한 엘리베이터 앞에 서면 건장한 경비원들을 마주치게 된다. 경비원들은 예약 명단을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여권을 가져가 복사를 한다. 5~7층이 정킷방으로 이뤄져 있었는데 방마다 사용하는 칩이 달랐다. 이 칩은 일반 카지노에서 교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로지 그 방에서만 사용된다. 방의 규모는 테이블 6~7개 정도가 들어갈 정도인 100평 남짓이었다. 정킷방에 들어가면 창문도 시계도 없어서 시간 개념을 상실한다. 환호나 탄식으로 누가 돈을 땄는지 잃었는지를 가늠하는 것이 전부다.

정킷방에서는 대부분 ‘바카라’라는 도박을 한다. 받은 카드의 숫자를 합했을 때 9 이하에서 높은 쪽이 이기는 게임으로, 승패가 스피드 있게 결정 나기 때문에 그만큼 중독성도 강하다. B씨가 들어간 방은 10만 홍콩달러(한화로 약 1500만원)를 기본 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당연히 베팅액에 제한은 없었다. B씨는 “2~3시간이면 1억원이 순식간에 날아갔다”고 회상했다.

A씨는 한화 2000만원 정도의 현금을 준비해 갔다. 돈은 금방 사라지고 이때부터 정킷방을 이용해 돈을 조달받을 수 있는데 사용되는 방법은 일명 ‘환치기’다. 현지에서 고객들에게 홍콩달러로 판돈을 빌려주고 정킷방의 국내 계좌를 통해 한화로 돈을 받는 시스템이다. 물론 정식 환율보다 높은 수수료를 뗀다. A씨는 “정킷방에서 돈을 빌리면 한국 계좌를 불러준다. 그곳으로 돈을 넣어주면 된다. 이런 방식으로 돈을 얼마든지 당겨 쓸 수 있다”면서 “계좌번호는 돈을 빌려 쓸 때마다 달랐다. 수십 개의 통장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차명계좌를 통하거나 현금으로 마련해둔 비자금을 나눠서 보냈다”고 말했다.

도박 자금이 이런 식으로 유통되기 때문에 도박업체나 도박자의 혐의를 입증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국 정킷방의 계좌를 확인해야 하는데 당연히 대포통장이 사용되고 있다. 통장 수도 수백 개에 이른다. A씨는 “단골 고객이 되면 돈을 전혀 준비해 갈 필요가 없다. 담보도 없이 현지 정킷방에서 10억원 이상을 끌어 쓴 적도 있다. 평균적으로 따져보면 하루에 1억~2억원 정도를 쓰고 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VIP 고객 전용인 ‘정킷방’의 경우 일반인들의 이용이 제한된 엘리베이터를 통해 출입한다. ⓒ 연합뉴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킷방의 규모가 커지면서 환치기를 통해 대규모 자금의 돈세탁까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환전 브로커에게 현금을 건네고 해외 환전상이 이를 달러나 홍콩달러로 바꿔 마카오 등 현지로 보내면 자금 추적이 사실상 힘들어진다. A씨는 “수표 역시 마찬가지다. 수표는 이서자(裏書者)를 추적해 자금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데 중간에 외국인의 이서가 끼어버리면 더 이상 추적이 불가능하다”면서 “이런 돈이 카지노로 흘러들어가게 되면 도박자금으로 사용될 수 있고, 다른 해외 계좌에 들어갈 수도 있고, 심지어 투자 형식으로 국내에 들어올 수도 있다. 정킷방에서 하룻밤 새 100억원의 현금을 마련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정킷방을 이용하는 VIP 고객이라 할지라도 돈을 제때 상환하지 못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정킷방을 운영하는 국내 조폭들이 도박 빚을 수금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실제로 이번 검찰의 해외 원정 도박 수사 역시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씨의 양아들로 알려진 김 아무개씨의 휴대폰에서 도박 빚을 독촉하는 문자가 발견된 것이 실마리가 됐다.

담보 없이 돈을 빌릴 때는 선이자 10%를 떼게 되는데 이를 일명 ‘꽁지돈’이라고 한다. 심지어 공항에 주차해둔 주차증을 담보로 맡기는 경우도 있다. B씨는 “국내에서도 자금 융통이 어렵고 현지에서도 꽁지돈을 많이 쓴 경우 인천국제공항에 장기 주차해둔 차를 담보로 잡히기도 한다. 주차증에 나와 있는 차종을 보고 시가의 5분의 1에서 10분의 1 정도를 빌려주는 것이다”면서 “이 정도까지 이르면 다시는 VIP 전용인 정킷방에 들어올 수 없다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A씨는 현재 검경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정킷방 출입을 끊었다. 그러나 수사가 마무리되면 언제든 다시 정킷방을 찾을 것이라고 그는 밝혔다. B씨는 마카오를 벗어나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로 눈길을 돌린 경우다. B씨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정킷방을 찾았고 갈 때마다 2억~3억씩을 쓰곤 한다. 내가 1년에 현금으로만 벌어들이는 돈이 100억원이 넘는다. 남들은 거액 도박이라고 하지만 정킷방에서 쓰는 돈은 나에게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다”면서 “외환관리법 위반을 운운하기 전에 우리나라도 도박을 합법화하면 해외로 돈이 빠져나가는 일도 없지 않겠느냐”고 항변했다. 세계 경제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지만 카지노의 불빛은 올해도 더욱 반짝일 것으로 보인다.

 

 

도박에 빠진 대한민국 

정킷방이 세간에 알려진 것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검경의 해외 원정 도박 수사 때문이다. 2015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불거진 야구선수들의 원정 도박 파문이 대표적이다. 이 중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임창용(전 삼성 라이온즈 소속) 선수는 지난 1월14일 단순 도박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최고형인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윤성환·안지만(이상 삼성 라이온즈) 선수는 여전히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그 밖에도 화장품업체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대표<사진>는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중견 해운업체의 문 아무개씨, 폐기물업체 대표 임 아무개씨 등 12명의 기업인이 기소됐다. 이들은 2012년부터 정킷방을 드나들면서 모두 500억원에 이르는 돈을 탕진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또 해외에 정킷방을 운영한 광주송정리파 행동대장 이 아무개씨 등 11명과 원정 도박을 알선한 브로커 3명도 재판에 넘겼다. 광주송정리파·충장오비파·방배동파·청주파라다이스파·학동파·영산포파·영등포파 등 국내의 내로라하는 조직들이 해외 원정 도박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해외 카지노에 손님을 끌어들인 후 수수료를 받는 방식에 그쳤으나,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직접 정킷방을 운영하는 단계로까지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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