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01.28 19:04
  • 호수 137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년희망펀드 1271억원 모금했지만 '창조적 사업’ 아이디어 부재

박근혜 대통령 제안으로 시작된 청년희망펀드. 박 대통령이 1호로 공익신탁에 참여한 후 정·재계 유력 인사는 물론 구두닦이까지 동참하면서 높은 열기를 보였다. 지난 1월19일까지 모금된 금액만 무려 1271억원. 처음 목표치가 200억원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목표치를 635% 초과 달성한 셈이다.

하지만 펀드 모금 넉 달 만에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재단에 펀드 운영을 맡긴 채 한 발짝 물러섰다. 기업은 펀드 모금에 참여했다는 홍보에만 앞장섰다. 청년희망재단의 사업계획은 정부의 기존 정책들을 이름만 바꿔 추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는 청년희망펀드 운영을 위해 지난해 11월 청년희망재단을 설립했다. 황철주 청년희망재단 이사장은 취임 직후 “정부 예산으로 보살펴주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보완해 창조적으로 쓰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올해 12만5000명에게 고용 서비스를 제공하고 63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사업계획도 발표했다.

지난해 청년 실업률이 9.2%를 기록하며 사실상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청년들이 대거 취업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제활동인구는 2014년보다 8만명 늘었지만 취업자 수는 6만8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학생들이 방학인데도 취업 준비 등으로 도서관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실패한 사업조차 그대로 따라 하기

2016년도 사업계획서에 따르면, 청년희망재단은 사업 예산으로 199억8000만원을 책정했다. 일자리 매칭 사업에 33억7000만원, 인재 육성 프로그램에 96억1100만원을 쓸 계획이다. 청년희망채움 사업 예산 56억1000만원과 기관 운영비 13억8900만원도 예산안에 포함됐다.

일자리 원스톱 정보센터 구축 사업은 청년 취업 지원 제도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 모바일 앱을 개발하겠다는 내용이다. 올해 고용 서비스 목표 인원 12만5000명 가운데 10만명이 이 사업에 해당된다. 그런데 세부 사업을 살펴보면 기존 고용노동부의 ‘워크넷’ 사업과 대부분 중복된다. 이미 정부에서는 1999년부터 실업 대책의 일환으로 고용정보망인 워크넷을 운영하고 있다.

2만명을 대상으로 추진하겠다는 멘토링 서비스 사업은 전문가와 직장인 500명씩 멘토단을 구성해 취업 상담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또한 중소기업청과 창업진흥원의 ‘K-스타트업’ 사업, 각 대학에서 진행 중인 멘토링 사업 등과 겹친다.

강소·중견 온리원(Only-One) 기업 채용박람회 또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대학 등에서 진행하는 채용 프로그램과 유사하다. 대신 1개의 기업만을 위한 채용박람회를 열고, 서류 전형 없이 모두 면접 기회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 다섯 차례의 채용박람회를 열어 10명의 청년이 일자리를 구했다. 그동안 열린 여타 채용박람회보다 성과가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셈이다.

청년 글로벌 보부상 양성 사업은 해외 판로 개척과 수출 대행 전문가를 육성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지정한 전문 무역종합상사 등과 공동으로 인턴십 프로그램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해외로 눈을 돌리라”며 야심 차게 추진했던 ‘K-move’ 사업과 겹친다.

이것도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사업이다.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작성한 K-move 현장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2014년 한 해에만 청년들의 해외 취업을 지원하는 사업에 총 448억원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실제 취업에 성공한 인원은 2445명에 그쳤다. 예산 10억원당 해외 취업자가 90명에 불과할 만큼 사업 성과는 높지 않다. 심지어 고용노동부의 ‘판매·마케팅 전문 해외 인턴 사업’은 실상 의류매장 점원인 경우가 대다수였다.

펀드 설립 4개월 만에 관심 ‘시들’

왜 이렇게 됐을까. 펀드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9월21일 청와대 본관에서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 가입신청서에 서명하고 있다. ⓒ 뉴시스

모금이 시작된 지 4개월 만에 국민적 관심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청년희망펀드 홈페이지 아이디어 공모란에는 지금까지 133건이 접수돼 있다. 올해에는 8건의 의견서만 제출됐다. 아이디어 공모를 시작한 지난해 9월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 동안 41건의 의견이 올라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나마도 내용이 부실했다. 한 청년단체는 청년 실업자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스키캠프를 열자고 제안했다. 숙박비와 스키장 리프트권, 장비 렌털 등을 지원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정부 예산으로 추진해야 할 취업정착자금 융자 사업의 신용보증액을 분담하자는 의견을 제출했다.

애초부터 청년희망펀드를 제안한 것 자체가 정치적 이벤트 성격이 짙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미 정부는 청년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1조3654억원을 쏟아부었다. 전 부처를 통틀어 청년 일자리 관련 사업만 50여 개에 달한다.

이렇게 많은 노력과 예산을 들이고도 청년실업률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지난해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9.2%에 달했다. 1999년 통계 기준이 변경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오랫동안 대학에 남거나 공무원시험 등을 준비하면서 ‘비경제활동인구’로 남아 있던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취업 시장에 나섰지만 취업의 문은 그만큼 넓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청년층 경제활동인구는 전년보다 8만명 늘어났지만 취업자 수는 6만8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통계 조사 시점에 일주일 이상 돈 버는 일을 한 사람이 취업자로 분류되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청년 실업자는 더 많을 수 있다.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은 “애초부터 청년희망펀드의 모금 취지 자체가 정치적이었다”며 “정책적 필요에 따라 예산을 확보하고 집행해야 하는데 청년희망펀드는 돈을 모아놓고 쓸 곳을 찾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300명의 인재 육성 사업에 100억원 가까운 돈을 쓰겠다는 것은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나온다”고 지적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미 상당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정부에서 체계적으로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청년희망펀드는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고졸자나 학교 밖 청년 취업 지원 등을 공략하는 게 훨씬 효과적일 텐데 방향을 잘못 잡은 듯하다”고 평가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