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중산층이여
  • 김재태 편집위원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16.02.04 11:19
  • 호수 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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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그들이 있어 우리는 훈훈했습니다. 따뜻한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거기 있었습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 얘기입니다.  그 흔한 재벌집 아들이나 신데렐라 며느리도 없이, 1988년 서울 변두리 골목에 옹기종기 모여 살던 보통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이 드라마가 그토록 큰 인기를 얻은 것은 어쩌면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낸 친근한 내용 덕이 아닐까 싶습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잘났거나 못났거나 서로 차별하지 않고 포용하며 살아갑니다. 서로를 챙기는 마음도 애틋합니다. 그때 그 시절에는 그렇게 우리네 골목에, 사회에 끈끈한 정과 내일을 향한 희망이 살아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드라마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1988년은 그런 시대였습니다. 비록 소득은 지금보다 많지 않았지만 삶에 여유가 있었고, 미래에는 더 나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그해 경제기획원이 발표한 사회통계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60%가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여겼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습니까. 국민소득이 그때보다 네 배 가까이 늘어났지만 스스로를 중산층 이상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형편없이 줄어들었습니다. 한 증권사에서 객관적 자료를 통해 중산층으로 분류될 수 있는 가구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16년 대한민국 중산층 보고서’에는 대상자 중 79.1%가 자신의 상태를 중산층보다 못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실제 주위를 둘러보면 과거에는 자신이 중산층이었지만 지금은 빈곤층으로 떨어져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씀씀이도 늘고 빚도 늘어나 생활에 여유가 없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지난해 3월 현재, 가구당 평균 부채가 6181만원이라는 정부의 통계 자료가 그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중산층이 줄어든다는 것은 우리 경제의 허리가 얇아지고, 축구에 비유하면 공수를 든든히 받쳐줄 미드필드가 뚫리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국민들의 삶이 그만큼 고달파져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올해의 사정도 여의치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운이 좋으면 침체, 운이 나쁘면 위기’라는 진단이 공공연히 나옵니다. 얼마 전에는 청년 실업률이 9.2%로 통계 작성 이래 최악이라는 뉴스까지 전해져 우울함을 더했습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공약으로 내세운 경제민주화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고 자화자찬하기 바쁩니다. 틈만 나면 국회가 경제의 발목을 잡아 한 걸음도 못 나간다고 투덜거립니다. 법이 아닌 정책에서 문제는 없었는지 돌아보려는 태도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법이 문제라면 야당의 반대가 심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야당 의원들을 일일이 접촉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처럼 설득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 정답입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올해 경기가 더 좋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상황입니다. 지금은 우리 경제의 방향타가 더 많은 국민에게 혜택이 가는 쪽으로 설정되어 있는지, 빈부 격차를 더 키우는 쪽으로 가고 있지는 않은지 정책을 끊임없이 되짚어보아야 할 때입니다. 남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간 중산층이라는 말마저도 우리 사회에서 영영 사라져버릴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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