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을 결혼시켜라”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6.02.04 11:43
  • 호수 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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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한반도 정세가 다시 얼어붙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월22일 외교·국방·통일부의 업무보고 자리에서 북한을 제외한 한·미·일(한국·미국·일본)과 중·러(중국·러시아)가 만나는 5자회담을 제안했다. 6자회담이 8년여 동안 열리지 못했고 회담을 열더라도 북한의 비핵화에 도움이 안 된다면 실효성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일이 사실상 같은 이해관계에 있는 상황이라 중·러에 대한 압박으로 받아들여졌다.

중국은 곧바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월22일 정례 브리핑에서 “조속히 6자회담을 재개하고 동북아 지역의 장기적 안정을 도모하기를 희망한다”며 6자회담 고수 의지를 밝혔다. 중국 측은 오히려 5자회담의 실효성에 대해 반박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러시아 역시 반대이기는 마찬가지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1월26일 기자회견에서 “6-1 회담을 열자는 한국 제안을 들었다. 하지만 이는 좋은 생각이 아니다”고 밝혔다.

ⓒ 시사저널 임준선


“중국뿐 아니라 미국도 압박할 필요 있다”

중·러의 반대는 예상된 일이다. MB(이명박 대통령) 정권에서도 미국과의 공조하에 5자회담을 추진했지만 중·러의 반대로 실패했다. 특히 중국이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을 실질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이 미국과의 대립 구도하에서는 북한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우리 정부도 이와 같은 국제 정세를 몰랐을 리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왜 중국을 압박하고 나선 걸까. 그리고 중국에 대한 압박이 국익에 도움이 될까.

협상 전문가인 박상기 BNE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는 1월27일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것은 미국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동시에 나와야 한다”며 “왜 중국 탓만 하느냐, 미국을 압박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우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재자(mediator) 역할을 해야 한다”며 “그럴 기회가 왔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백 채널’(Back Channel)의 복원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외교 협상은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 공식 채널과 함께 비공식 채널인 백 채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MB 정부 때 대중(對中)·대북(對北) 백 채널이 무너졌다. 현 정부도 비슷한 상황이다. 출범 초기 미국과 중국에 대해 밸런스를 맞추는 듯했는데 지금은 미국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이 대표적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자신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한·미·일 3국이 공동 체제를 강화한 것으로 볼 것이다. 당연히 좋게 보지는 않을 거다. 이렇게 되면 중재자 역할을 못하게 된다.”

박 대표는 “백 채널을 복원했다면 이를 통해 외교 역량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냉혹하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중요한 점은 실력을 보여야 대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우리 정부가 미국과 중국의 속내를 상호 전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보여야 한다.

“미국 등에 업고 기세등등한 일본 무력화”

대결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을 어떻게 해야 협력 관계로 이끌어낼 수 있을까. 외교적 수사가 아닌 양국 정부의 본심을 들여다볼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박 대표는 “미국과 중국 양쪽 다 겉 다르고 속 다른 행동을 하고 있는데, 현재의 대치 국면을 하루빨리 탈피하고 싶은 게 속내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두 국가가 군비 경쟁과 경제 상황이 맞물리면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양국 모두 본심은 대결보다 협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국방 예산은 7000억~8000억 달러고 중국은 1400억~1500억 달러 정도다. 절대적 금액은 미국이 많지만 활용도를 놓고 보면 중국도 뒤처지지 않는다. 이렇게 많은 국방 예산을 쓰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천문학적인 금액의 부채를 안고 있고 중국은 고도성장을 달려온 경제가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상대 국가에 상당한 투자를 해놓은 상태다. 지금은 군비 경쟁보다 경제 협력이 더 절실한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뉴 데탕트’(긴장 완화) 시대가 오면 일본의 입장이 가장 곤란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박 대표는 “지금 일본은 미국을 등에 업고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중국 견제용으로 일본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라며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일본 편을 들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한국이 중재자로 나서 미·중 관계를 개선시킨다면 일본의 팽창주의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힘을 배분하는 외교를 펼쳐야 한다.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에 힘이 쏠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양쪽 모두 우리를 찾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방에 편중하는 외교는 절대 안 된다. 지금은 미국에 더 강한 요구를 해야 할 때다. 미국이 한국을 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우려하는데 미국은 우리를 버릴 수가 없다. 버릴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중국 역시 북한을 버리기 힘들다. 혈맹 관계라는 명분뿐 아니라 실리적인 측면에서도 중국에게 있어 북한은 버리기 아까운 카드다. 박 대표는 “북한의 석유 매장량이 세계 7위다. 얕은 바다와 내륙 일부로 이어져 있어 발굴 비용도 적게 든다. 또 희토류를 비롯한 광물자원도 풍부하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중국의 무역항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거론했다.

박 대표는 “우리 외교의 핵심은 ‘미국과 중국을 결혼시켜라’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협상 측면에서 보면 북한이 좋은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미국은 물론 중국에도 북한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이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미국과 중국이 뉴 데탕트를 맞아 협력하게 되면 북한의 입장 변화도 수월하게 이끌어낼 수 있다”며 “통일 문제 역시 우리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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