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다시 부활한 ‘남양유업 갑질’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6.02.04 14:19
  • 호수 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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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대리점주들 “‘물량 밀어내기’ 사라졌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 여전”

남양유업 대리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회사의 불공정행위를 중단하라”며 본사에 몰려가 단체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남양유업 측은 “일부 대리점의 주장”이라고 말한다. 내부 시스템을 개선한 만큼 불공정행위는 있을 수 없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2013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남양유업 갑질’ 사태가 재연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회사 불공정행위 성토하며 시위 재개

남양유업 대리점주 100여 명으로 구성된 ‘남양유업 피해대리점협의회’(이하 피대협)는 2013년 1월 회사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회사의 제품 밀어내기와 판촉사원 임금 전가 행위, ‘떡값’ 요구 등 불공정행위가 도를 넘어섰다는 취지에서였다. 이들은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위치한 남양유업 본사로 찾아가 시위를 벌였다. 남양유업은 집회에 참가한 대리점주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남양유업 사태는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남양유업 대리점주 30여 명이 1월19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남양유업 본사 앞에서 불공정행위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2013년 5월 남양유업 직원이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하는 녹음파일이 공개됐다. 2분45초짜리 파일에는 남양유업의 행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당시 34세였던 남양유업 직원은 56세의 대리점주에게 “(제품) 버리든가 망해 이 XXX아. 대리점장으로 그게 할 얘기냐”라고 몰아붙였다. 심지어는 “얼굴 보면 죽여버릴 것 같으니까. XX아 자신 있으면 맞짱 뜨게 들어와”라고 말하기도 했다.

파장은 컸다. 대기업의 갑질에 분노한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이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당장 회사 매출이 급감했다. 2012년 3분기 428억1000만원이던 이 회사의 영업이익은 2013년 3분기 140억원 적자로 전환됐다. 5월부터 8월까지 4개월 동안 남양유업의 주가는 50% 가까이 폭락했다. 사정기관이나 국회 등의 공세도 이어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남양유업에 12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곧바로 남양유업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국회에서는 이른바 ‘남양유업 방지법’(대리점거래 공정화법)이 발의되는 등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었다.

비난 여론이 일파만파로 확산되자 남양유업은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했다. 김웅 대표는 “회사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진심으로 고개 숙여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600억원의 상생기금을 마련해 대리점주들의 출산장려금과 자녀 학자금 지원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남양유업에 또 다른 대리점협회인 ‘전국대리점협의회’(이하 전대협)가 출범했고, 피대협을 와해시키기 위한 회사 측의 꼼수가 아니냐는 비난 여론이 내부적으로 일기도 했다. 남양유업은 30억원의 상생기금을 피대협에 지급했고, 피대협은 검찰 고소를 취하하면서 사건은 사실상 일단락됐다.

남양유업 사태가 발생하고 정확히 3년이 흘렀다. 남양유업의 갑질 사태는 현재 세인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상태다. 검찰에 기소돼 1심에서 1년 6월을 구형받은 김웅 전 대표 역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풀려났다. 김 전 대표와 함께 기소된 영업팀장 신 아무개씨 등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남양유업에 부과됐던 124억원의 공정위 과징금 역시 소송 과정에서 5억원으로 현저히 줄어들었다.

2013년 5월 남양유업 직원의 폭언을 담은 녹음 파일이 공개되면서 파장이 일자 김웅 남양유업 대표이사와 임원들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남양유업 “대리점 차별 주장은 사실무근”

그런데 3년 만에 이 회사에서 다시 잡음이 나오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기자가 만난 남양유업 대리점주들에 따르면, 과거의 불공정 관행은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갑질은 여전하다는 주장과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례로 A 대리점은 1월15일, 유통기한이 1월31일까지인 커피 제품을 받았다. 통상적으로 컵커피의 유통기한은 45일이다. 유통기한이 3일 정도 남으면 매장에서 반품 처리하기 때문에 최소 30일 이상 남아야 대리점 영업이 가능했다. 하지만 A 대리점에 제공된 컵커피의 유통기한은 사실상 10일밖에 되지 않았다. A 대리점 관계자는 “2013년 대리점주와 합의하면서 유통기한 임박 제품은 팔지 않기로 약속했음에도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남양유업과 대리점주들은 2013년 ‘상생을 위한 협상(안)’에 합의했다. 협상안의 가장 앞부분에 ‘대리점에 대한 부당한 거래 거절이나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2013년 11월 남양유업이 대리점에 보낸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은 사실의 통지’ 문서에도 ‘피심인(被審人)은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대리점에게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 또는 주문하지 않은 제품 등을 구입하도록 강제해서는 안 된다’고 언급돼 있다. 그럼에도 일부 대리점에는 여전히 유통기한 임박 제품이 배달되고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남양유업 대리점주는 “눈에 보이는 물량 밀어내기는 없어졌지만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또 다른 갑질이 진행 중”이라며 “한때 남양유업에 반기를 들었던 피대협 회원들이 대부분 피해를 입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지난 1월19일과 26일, 남양유업의 불공정행위를 중단해달라며 서울 중구 남대문로 사옥에 몰려가 단체로 집회를 열기도 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제2의 남양유업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남양유업 측은 또다시 여론의 주목을 받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현재 시위에 참여하는 대리점은 일부에 불과하다. 성실하게 영업하고 있는 나머지 대리점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도 대리점 차별은 없었다고 강조한다. 이 관계자는 “2013년 이후 대리점과 협상하는 상생위원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주문하지 않은 제품을 받을 경우 배송차량을 그대로 돌려보낼 수 있는 시스템이 이미 마련됐고, 대리점주에게는 자녀 학자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프로모션이나 인센티브는 자유의사에 의해 결정된다. 대리점을 차별하고 있다는 일각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사저널 취재 결과는 남양유업 측의 해명과 다소 차이가 났다. B 대리점주의 경우 이번에 자녀가 대학 3학년에 올라간다. 성적 또한 나쁘지 않다. 그럼에도 이 대리점주는 아직까지 한 번도 자녀 학자금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상생안에는 분명히 B+ 학점 이상의 경우 학자금의 50%를 지원하는 것으로 표시돼 있다”면서도 “피대협 소속 대리점주는 학자금 수령 대상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주변에도 비슷한 이유로 학자금 지원을 포기한 대리점주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프로모션을 진행하면서 대리점마다 차별을 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똑같은 제품이라도 C 대리점과 D 대리점의 가격이 100원 이상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가격 할인을 받지 못한 대리점의 경우 그만큼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기자가 만난 한 대리점주는 “대리점마다 납품하는 가격이 다르다 보니 한 슈퍼에서는 두 달간 우리 제품을 안 받았다”며 “피대협 소속이기 때문에 프로모션 진행 사실을 공지받지 못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1월24일 전직 남양유업 대리점주가 시사저널 기자와 만나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서울의 기온이 영하 18도까지 떨어진 1월24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위치한 남양유업 사옥 앞에서는 한 60대 여성이 추위에 떨면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울산광역시에서 남양유업 대리점을 운영했던 장미화씨(66)였다. 그는 1970년대부터 남양유업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적지 않은 밀어내기와 반품 거부 횡포를 당했다고 말한다. 또 40년간 생긴 피해액이 최소 수억 원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그는 2009년 남양유업을 상대로 소송을 벌였다. 남양유업의 불공정행위가 수면 위로 부각되기 전이었다. 1심은 남양유업의 손을 들어줬다. 장씨는 항소했고, 법원의 중재로 2심에서 양측이 합의했다. 장씨가 남양유업에 1억8000여 만원의 미지급금을 지급하는 조건이었다. 6500만원 상당의 법원 공탁금을 제외하면 미지급금은 1억1500만원 상당이었다.

대신 남양유업은 장씨의 부동산에 잡혀 있던 근저당 설정을 해지해주기로 약속했다. 장씨는 수십억 원 상당의 농장과 8억원 수준의 4층짜리 건물을 소유하고 있었다. 남양유업이 근저당을 해지하면 부동산을 현금화해 남양유업 미지급금을 비롯한 빚을 갚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남양유업은 시간을 끌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구매 의사를 보이던 사람들도 근저당 설정 때문에 난색을 표시했다.

답답한 마음에 장씨는 회사에 출근하던 홍 회장을 붙들고 사정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직원들은 “위에서 안 된다고 하더라”는 말만 메아리처럼 되풀이했다. 결국 장씨는 부동산을 현금화하지 못하면서 재산 대부분을 경매로 날릴 처지가 됐다. 그는 “남양유업에서 나중에 농장을 매입한다며 여러 차례 현장에 다녀갔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40년간 회사를 위해 헌신한 결과가 이런 것이었다니 허탈하다”고 토로했다. 장씨가 4개월간 남양유업 사옥 앞에서 쉬지 않고 1인 시위를 벌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남양유업 측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처리한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다른 채권자들이 경매에 들어올 수 있는 만큼 근저당을 풀어줄 수 없었다”고 말한다. 남양유업은 최근 장씨를 상대로 시위 금지 가처분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늦어도 2월 말이면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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