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구조적 병폐 드러낸 검사외전 흥행
  • 고재석 기자 (jayko@sisapress.com)
  • 승인 2016.02.12 17:29
  • 호수 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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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독점에만 매몰되지 말아야”
영화 검사외전의 흥행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 사진=쇼박스

황정민‧강동원 주연 영화 검사외전이 설 극장가에서 대형 흥행에 성공했지만 독과점 논란이 거세다. 스크린 독점을 통해 흥행에 성공했다는 지적이 다수다. 

영화계 일각에서는 스크린 독점 못지 않게 작품성이 떨어지는 영화가 나오는 구조적 맥락도 함께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설 연휴 휩쓴 검사외전…시장상황 운 작용했다는 평가 있어

12일 영화진흥위원회 박스오피스에 따르면 검사외전은 개봉 일주일 만에 누적관객 630만 명을 돌파했다. 특히 설 연휴 개봉한 전체 영화 중 매출액 점유율이 70%를 넘었다.

검사외전은 이내 독과점 논란에 휩싸였다. 전체 스크린 2400여 개 중 1800개 넘게 차지해 관객의 선택폭을 상당히 줄였다는 비판이다.

검사외전의 스크린 독점은 이전 경우와 결이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영화 제작자는 “독과점 논란에 처했던 영화들은 블록버스터였다. 검사외전은 돈을 많이 들인 블록버스터가 아니다. 그런데도 스크린을 장악했다. 배급사가 의도를 갖고 움직이지 않은 듯하다. 시장 상황이 운 좋게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독과점 논란이 일었던 영화들은 대부분 블록버스터였다. 2015년 4월23일 개봉한 어벤져스2의 경우 전국 2281개 스크린 중 1741개에서 상영됐다. 개봉 17일 만인 5월9일 900만 관객 동원을 돌파했다. 

이와 달리 이번 설에는 검사외전의 경쟁작들이 마땅치 않았다. 영화업계 관계자는 “배급사나 제작사는 명절을 겨냥해 영화를 많이 준비한다. 그런데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촬영이 늘어지거나 후반 작업이 길어지는 경우다. 그래서 무주공산일 때가 가끔 생긴다”고 답했다.

◇작품성 논란…제작사 힘 왜소해진 구조적 탓

스크린 독점보다는 수준 이하의 작품성을 문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특히 제작사 힘이 왜소해진 결과 이 같은 논란이 발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0년대 중반까지 프로듀서로 활동했던 관계자는 “과거에 배급사는 제작사에게 제작과 마케팅을 맡기고 결과만 받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제작사와 프로듀서의 힘이 굉장히 강했다. 배급사들이 좋은 작품 만드는 제작사를 선점하려고 경쟁했다”라고 회고했다.

상황이 변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영화산업의 구조적 환경이 달라졌다. 2006년 단행된 스크린쿼터 축소는 환경변화를 자극했다.

김정호 경희대 연극영화학과 교수는 지난해 한국콘텐츠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2006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영화 투자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며 “2006년은 최고의 점유율을 보인 해인데도 투자 수익률은 마이너스 24.5%이고 최악의 투자수익률은 2008년 마이너스 43.5%이다”라고 밝혔다.

점유율이 역시 부침이 심했다. 한국 영화 점유율은 2006년 63.60%로 최대의 점유율을 보였다. 하지만 스크린 쿼터 축소 이후 2008년 42.1%로 줄어 최저 점유율을 기록했다.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 2012년 58.8%, 2013년 59.7%를 기록했다.

상승세로 돌아선 시점은 대형 투자배급사가 제작 과정에 입김을 넣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린다. 한 영화 프로듀서는 “2000년대 중반 이후 대기업 투자사들이 직접 제작하겠다고 나서면서 감독과 접촉했다. 이때부터 감독들이 제작사 사무실을 많이 차렸다. 기존에 시스템 형태를 띠던 제작사와 프로듀서가 빠지고 감독과 투자배급사 관계가 바로 제작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이 과정 속에서 배급사와 극장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하던 제작사의 입김이 크게 줄어들었다. 한 프로듀서는 “영화의 질이 시스템을 통해 나오는 게 아니라 감독 개인 역량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됐다. 지금은 대부분 감독이 제작사를 차리고 거기서 바로 투자업체와 계약을 진행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영화의 평균적인 질이 상대적으로 낮아졌다”고 말했다.

검사외전도 그 전형적인 사례다. 검사외전을 제작한 영화사 월광의 대주주는 범죄와의 전쟁을 연출한 윤종빈 감독이다. 검사외전 이전에 제작한 작품도 윤종빈 감독이 연출한 군도다. 검사외전의 이일형 감독은 윤종빈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검사외전 논란은 지난 10년 간 일어난 한국영화산업 구조변화의 산물인 셈이다. 향후 반복될 수 있다는 뜻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런 논란을 줄이려면 몇 가지 전제가 있어야 한다. 연출력을 인정받았으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감독이 있어야 한다. 제작에서 개봉에 이르기까지 배급사와 극장 간 이해관계와 정면으로 맞설만큼 힘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산업 구조상 소수 유명감독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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