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다시 ‘냉전 시대’ 격랑 속으로
  • 이승욱 기자│이영종 중앙일보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2.13 10:09
  • 호수 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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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强 대 强’ 박근혜와 김정은의 출구 없는 치킨 게임

2016년 새해 벽두부터 벌어지고 있는 남북의 가파른 대치 국면은 냉전 시대를 방불케 한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제4차 핵실험과 로켓 발사를 앞세워 기선 잡기에 집중했다. 여기에 대응해 박근혜 대통령은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기반으로 한 ‘강력한’ 대북제재 수순을 밟아왔다. 우리 정부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마지막 카드’라고 여겨졌던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까지 선제적으로 단행했다. 한마디로 ‘북핵 도발’에 ‘햇볕정책 지우기’로 양측이 맞짱 승부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개성공단 폐쇄는 남북의 완충 지대가 사라진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는 남북 관계가 무력충돌 등 심각한 양상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 북은 남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발표 직후, 개성공단 내 자산 동결 외에도 남북 간 판문점 채널을 차단하고 개성공단 일대를 군사통제구역으로 설정했다. 개성공단 조성 이전에 주둔했던 기갑·방사포 부대 등을 재배치하려는 수순을 밟아가고 있는 것이다. 남도 북의 부대 이동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대응 태세를 갖추고 있다. 결과적으로 남북 교류의 마지막 상징인 개성공단이 남북 무력분쟁의 새로운 도화선으로 뒤바뀔 수 있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남북 지도자, 숙명의 대결장에 서다

© 일러스트 신춘성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북의 핵실험과 로켓 발사, 그리고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 추진, 이어진 개성공단 폐쇄 등 일련의 남북 대치 상황에서 더 이상 탈출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 대통령과 김 제1위원장의 치킨 게임은 남과 북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한계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마치 남과 북이 대결의 대척점에 서 있는 듯 보이지만, 사안의 중심에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논의 등 동북아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의 미묘한 갈등 관계가 스며 있다. 남북이 미·일과 중·러 등 한반도를 중심으로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각기 다른 우방과의 틈바구니에서 풀기 힘든 실타래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2016년 한반도 정세는 그 해답을 찾기 어렵고, 직면한 상황은 살벌하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제1위원장. 두 사람의 핏줄 속에는 냉전 시기 치열했던 남북 체제 대결의 DNA가 녹아 있다. 대한민국 근대화의 기수라고 평가받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업주 김일성 주석의 손자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박정희와 김일성은 1970년대를 정점으로 18년에 걸쳐 사활을 건 체제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김 제1위원장이 첫 출발부터 대립각을 세운 건 아니었다. 한때 박근혜 정부 출범 후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이 점쳐질 정도로 화해 무드에 대한 기대감이 나타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대선 후보 시절은 물론 취임 이후에도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해서라면 북한 지도자와 만나겠다”는 입장을 피력해왔다. 대선 기간 박 대통령을 비난했던 북한도 박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이나 집권 초에는 비난을 자제하며 관망하는 입장을 보였다.

대선 직전 김 제1위원장이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라는 도발적인 행태를 보이기는 했지만, 완전히 판을 깰 정도는 아니었다. 핵무기와 로켓을 결합한 벼랑 끝 행보로 최악의 상황을 맞은 지금과는 달랐다. 김 제1위원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김정은, ‘매 맞아도’ 체제 공고화가 우선

© 일러스트 신춘성

하지만 김정은 제1위원장이 올 들어 핵실험과 로켓 발사라는 핵무장화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보인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그 계획이 치밀하게 이뤄졌다는 정황도 드러난다. 김 제1위원장은 지난 1월6일 핵실험을 전격적으로 감행했다. 앞선 세 차례와는 다른 ‘수소폭탄’ 실험임을 주장했다. 평양의 관영 선전 매체들을 내세워 ‘대성공’임을 자랑하고 나섰다. 전격적이라 부르는 건 사전에 전혀 낌새를 알아챌 수 없도록 연막을 쳤기 때문이다.

지난 1월1일 조선중앙TV로 방영된 육성 연설에서 김 제1위원장은 ‘핵’이란 단어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한국과 서방 국가의 대북관측통들은 이를 김정은 정권이 외부 세계로 보내는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4차 핵실험으로 허를 찔린 것이다. 이로부터 한 달여 만에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로 간주되는 광명성 로켓을 쏘아 올렸다.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논의가 한창 탄력을 받은 시점에 보란 듯이 추가 도발이 이뤄졌다는 측면에서 북한 체제와 김정은 정권에 대한 분위기가 격앙될 수밖에 없었다.

통상 북한이 과거 세 차례의 핵실험 과정에서 ‘선 로켓 발사, 후 핵실험’이라는 수순을 보였다는 점과 비교하면 북의 의도를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선 로켓 발사, 후 핵실험’ 수순에는 국제사회에 핵실험보다는 덜 민감한 로켓 발사를 먼저 한 후, 국제사회의 제재 수위에 따라 핵실험을 통해 출구 전략을 찾는다는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선 핵실험, 후 로켓 발사’라는 정반대 선택을 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으로서는 김정은 체제가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에서 핵 억제력과 미사일 능력을 통해 군사강국의 면모를 내부에 보여줘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중국이 거부하고 국제사회의 매를 맞더라도 정권을 공고히 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광명성 4호 발사 장면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월7일 보도했다. 사진 오른쪽은 광명성 4호 로켓 발사 모습. © 조선중앙통신 연합

박근혜, 2013년 경험으로 ‘힘’ 받아 강공 선택

북한의 연이은 도발에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으로 맞섰다. 박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공조에 앞서 ‘마지막 카드’라고 할 수 있는 사실 상 ‘개성공단 폐쇄’ 카드를 꺼낸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얻은 자신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북은 갓 출범한 박근혜 정부를 길들이기 위해 2013년 봄, 남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한·미 합동군사연습 중단같은 무리한 요구를 내놓았다. 남한 정부가 호락호락하지 않자, 개성공단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김양건 당시 노동당 대남비서는 공단 폐쇄를 거론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공단 내 우리 측 인원의 전원 철수를 지시했다. 공단 가동이 중단되자 다급해진 건 북한이었다. 5만여 명의 북한 근로자 조업이 중단되자 개성 지역 민심이 흉흉해졌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주민 20여 만명의 생계가 타격을 입게 되면서 체제에 대한 불만이 나타나고 이에 북한 당국이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결국 북한이 먼저 공단 정상화를 위한 회담을 제안했고 다시 가동에 들어갈 수 있었다. 김 제1위원장으로서는 첫 대결에서 박 대통령에게 일격을 당한 모양새가 됐다. 개성공단을 둘러싼 이번 충돌은 그 연장전이자 제2 라운드인 셈이다.

개성공단 카드의 유효성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엇갈린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실상 남으로서는 개성공단 폐쇄로 북을 압박하고,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 제재에 미온적인 중국을 제재 동참의 길로 이끌어낸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개성공단 가동 중단조치 이후 남북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중국의 태도에는 큰 변화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는 한 손에는 개성공단 중단과 다른 한 손에는 사드 배치라는 두 가지 카드를 쥐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불안감이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는 미국과 대척점에 있는 중국을 포함한 러시아로서도 절대 용인할 수 없는 사안이다.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조치로 압박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던 북한이 2013년과 달리 군사통제구역 선포와 자산 동결 조치 등 신속한 대응에 나선 것도 개성공단 카드의 유효성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북한은 지난 2013년 8월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정상적인 운영을 보장한다’는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남북 합의서를 근거로 남한 정부의 사태 파탄 책임론을 끈질기게 거론할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3년 3월20일 청와대 집무실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탈출구 없는 긴장 상황, 5월까지 이어질 듯

지금으로서는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제1위원장의 갈등과 충돌이 어디까지 치달을 지 쉽게 예견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김정은 정권이 군사대국을 선언할 것으로 예상되는 5월 북한의 제7차 당 대회까지 냉전기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도 나온다. 사실상 남북은 오는 5월까지 탈출구를 찾지 못한 채 살얼음을 걷는 대결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박 대통령은 김정은 정권과 북한 체제의 운명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핵과 미사일을 그대로 둔 채 교류나 대화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각오를 드러내기도 한다. 개성공단 폐쇄나 중국 등을 향한 대북 제재 동참 압박은 그 행동 목록이다. 반면 김 제1위원장도 도발적 행보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무엇보다 김 제1위원장이 박 대통령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느냐가 관심거리로 떠오른다. 김 제1위원장은 후계 수업 과정에서 아버지이자 선대 수령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접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2002년 방북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한 시간 동안 나눈 단독 면담과 이후 2시간 동안의 만찬 발언 녹음파일과 대화록을 들여다보며 향후 전략을 짜고 있을 수 있다. 탐색전을 끝낸 박 대통령과 김 제1위원장이 재격돌에 나선다면 한반도 정세는 다시 급격히 출렁일 수밖에 없다.

선대(先代) 이은 맞수, ‘박근혜’와 ‘김정은’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은 남북 대결의 선봉에 섰던 선대들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점 외에도 공통점이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은 대학 졸업 후 프랑스로 유학했고, 김 제1위원장은 10대에 스위스 베른의 공립학교에 다닌 조기 유학파다. 박 대통령은 22세 때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를 문세광의 총탄에 잃었다. 김정은의 경우 20세에 생모 고영희를 프랑스의 한 병원에서 유선암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박 대통령은 김 제1위원장의 선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도 인연이 있다. 2002년 5월13일 오후 7시 평양 북동부 대성구역의 백화원초대소에서 이뤄진 만남에서다. 박 대통령(당시 미래연합 소속 의원)을 만난 김 위원장은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께서 나라를 발전시킨 데 대해선 높게 평가하고 싶다”는 파격 발언을 했다. 같은 날 두 사람은 배석자 없이 한 시간 동안 밀담을 나눈 것으로 전해진다.

김 위원장은 “1·21 사건은 극단주의자들이 잘못 저지른 일이고,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은 죄를 받았어요”라는 말도 박 대통령에게 했다. 김일성 주석이 1968년 북한 특수부대인 124군부대 소속 요원 31명을 남파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려 했던 도발 사건에 대해 사실상 사과의 뜻을 전한 것이다. 박근혜·김정일 두 사람의 당시 만남은 남북한 냉전 대결을 이끌었던 박정희 대통령 딸과 김일성 주석 아들의 첫 대면이란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박근혜 ‘의원’은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정일 위원장은 2011년 사망했지만 그의 후계자 김 제1위원장이 권력을 물려받았다. 대를 이어 남북 관계라는 파워게임을 벌여야 하는 주인공이자 카운터파트로 자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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