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집 읽고 ‘인증샷’
  • 이예원 인턴기자 (.)
  • 승인 2016.02.18 16:02
  • 호수 1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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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통해 ‘詩 열풍’ 확산…팟캐스트 등 시 감상 플랫폼도 다양해져

설 연휴를 며칠 앞둔 지난 2월2일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코너 앞. 각종 재테크부터 집밥 레시피까지 요즘 대한민국을 휘어잡는 온갖 키워드 사이로 조금은 낯선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다소 투박하지만 예스러움이 묻어나는 이 책의 작가는 ‘尹東柱’, 제목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다. 1955년 발행된 윤동주 서거 10주기 기념본 시집을 복제한 이 복간본은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의 개봉 시기와도 맞물리며 교보문고가 발표한 2월 첫째 주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종합 8위에 올랐다.

윤동주 서거 10주기 기념본을 복간한 윤동주의 는 2월 초에 출간된 이후 줄곧 각종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자리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복간본과 필사책 등 다양한 시집 인기

‘시 열풍’이 거세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1월 한 달간 시집 판매량은 전년 동기에 비해 36.3% 급증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간한 출판사 ‘소와다리’의 또 다른 시집인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 1925년 초판본의 복제본은 전주 대비 22위나 급상승하며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종합 40위에 올랐다.

그 밖에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종합 122위, 정재찬의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종합 140위를 차지했다. 2월 말 출간 예정인 백석 시인의 <사슴> 초판본은 예약 판매를 시작한 지 하루 만에 2500부가 팔렸다. 진영균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대리는 “최근 SNS 시나 복간본, 필사책 등 시집의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면서 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소설이나 자기계발서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을 적게 받는 장르였던 시가 다시 주목받게 된  데는 20~30대 젊은 층의 영향이 컸다. 특히 윤동주나 김소월처럼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유명 시인들의 시집을 초판본과 디자인까지 흡사하게 출간한 시집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옛 표지와 서체를 그대로 살려 특별한 소장 가치를 만들어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시집을 하나의 소장품으로 구매하는 경향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상에서 시집을 ‘인증’하는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검색하면 관련 게시글이 약 3000개에 달한다. 대부분 시집의 인증샷을 올리며 “이건 어쩔 수 없다. 정신 차려보니 내 손에 들려 있었다” “요즘 핫하다는 초판본 나도 한 번” 등의 글을 함께 올린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시집 ‘인증샷’을 올린 강유미씨(25)는 “페이스북에서 처음 이 책을 접하고 호기심에 구매하게 됐다”며 “디자인도 독특하고 예뻐서 인스타그램에 올려 지인들에게도 소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 감상의 확산은 필사 열풍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김용택의 꼭 한번 필사하고 싶은 시’라는 주제로 출판된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는 교보문고 시 부문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올라 있다. 올해 들어 <필사의 즐거움, 윤동주처럼 시를 쓰다>, 김용택 시인의 <내가 아주 작았을 때, 어른을 위한 토닥토닥 동시 필사> 등 다양한 필사 시집이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 지난해 말을 기점으로 출판업계에 불었던 ‘필사 열풍’이 시 분야로도 옮겨온 것이다.

시를 좋아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필사를 하고 감상을 나누는 모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시를 읽는 것에서 더 나아가 직접 한 자씩 써보면 시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매주 지인들과 시 필사 모임을 갖는다는 직장인 이지원씨(28)는 “각자 좋아하는 시를 가져와 서로 공유하고 함께 써보는데, 그러면 기분도 좋아지고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시 추천 전문 앱도 출시 예정

시집 복간본이 최근 2개월간 큰 인기를 얻고 있지만, 시 열풍이 시작된 것은 SNS 시인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지난해 초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와 인스타그램 등 SNS에 짧지만 공감 가는 시를 주로 올리는 SNS 시인들이 시를 대중 곁으로 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SNS 시인인 하상욱씨의 시집 <서울시>(2013년)와 <시밤>(2015년)은 출간된 이후 교보문고 시 부문 베스트셀러에 꾸준히 자리하고 있다. 역시 SNS 시인인 최대호씨가 지난해에 발간한 <읽어보시집>과 <이 시 봐라>도 20위권 안에 들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진행하는 ‘SNS 시인시대전(展)’의 일환으로 2월3일 열린 SNS 시인 ‘글배우’(본명 김동혁)의 강연에는 교복 입은 학생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청중 100여 명이 참가했다.

이처럼 SNS가 시 유통의 주 무대로 자리 잡자, 시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정헌재 작가는 웹툰과 시를 결합한 ‘포엠툰’을 출간해 큰 관심을 모았다. 이상옥 창신대 교수가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시를 함께 배치해 선보인 ‘디카시(dica-poem)’는 이미 문학의 한 장르로 인정받아 디카시 연구소가 운영되고 있기도 하다.

시인이 직접 팟캐스트와 같은 온라인 기반 방송을 진행하며 시를 소개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김사인 시인이 진행하고 출판사 창비가 제작을 맡은 <詩詩한 다방>은 김 시인이 직접 시를 골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감상을 전한다. 시 감상법을 ‘읽는 것’에서 ‘듣는 것’과 ‘소통하는 것’으로 확장시켜 대중과의 접근성을 높인 것이다. 강서영 창비 홍보부 대리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시를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며 “오는 4월에는 독자의 성향에 맞게 시를 추천해주는 시 전문 앱(애플리케이션)도 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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