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몰려가지 마시라
  • 김재태 편집위원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16.02.25 18:04
  • 호수 1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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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표정들이 있습니다. 열정적이면서도 진지한 날것의 삶이 있습니다. 어떤 실력 있는 래퍼도 쉽게 흉내 내기 어려울 만큼 뜨겁고 생생한 생활의 말들이 ‘라이브 뮤직’으로 흐르는 공간입니다. 그렇게 갖가지 상품과 함께 살가운 정도 사고 팔리는 시장에는 사시사철 활기가 넘쳐 흐릅니다. 가끔씩 무력감에 사로잡힐 때면 특별히 살 물건이 없더라도 활력을 느껴보기 위해 가보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 시장의 자연스러운 풍경을 작위적인 연출의 공간으로 만들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거철이 되면 특히 더합니다. 떼로 몰려와 사진 찍고 악수하면서 기존의 질서를 마구 교란시키는 그들은 시장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엄연한 불청객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마치 자기 집에 온 것처럼 당당합니다. 행동거지도 대부분 비슷합니다. 인공의 미소를 장착한 채 머리를 거듭 조아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에 바쁩니다. 그들의 손에는 장바구니도 들려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시장 사람들에게 쥐여주는 것이라곤 자신을 알리는 인쇄물이 전부입니다. 그들이 한 번 다녀가면 시장은 바람 빠진 공처럼 맥이 풀리고 맙니다. 그동안 자연스러웠던 상품 사고팔기의 흐름은 당연히 끊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지정 관람 코스라도 된다는 듯 시장에 불쑥불쑥 찾아듭니다. 언제고 혼자 오는 법 없이 무리를 이끌고서 말입니다.

시장 사람들의 눈에는 그들의 행동이 좋아 보일 리 없습니다. 평소에는 눈길도 잘 주지 않다가 선거 때가 되면 문턱이 닳도록 넘나드는 꼴이 마뜩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네 시장에서 만난 생선 가게 아저씨 장씨의 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 사람들이 뭐 우리 사는 모습이 궁금해서 왔겠어. 사진 몇 장 건지러 오는 거지. 말은 우릴 위한다고 하지만 한 번씩 왔다 가면 진이 다 빠져. 물건을 왕창 사가는 것도 아니고.”

얼마 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당 대표가 시장에 갔다가 봉변을 맞았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시장 상인 가운데 한 명이 수행원들을 대거 동원하고 시장을 방문한 그 대표를 향해 “몇 장 찍었으면 됐지, 계속 붙어서 이렇게 하네. 좀 나가죠”라고 소리쳐 한순간 머쓱해졌다는 얘기입니다. 오죽했으면 그런 말이 나왔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지난 2월17일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후보 공천 신청을 마감함으로써 총선 레이스가 사실상 막을 올렸습니다. 이제부터 공천 경쟁을 하는 예비후보들의 시장 방문 발걸음도 더 분주해질 것은 불을 보듯 빤합니다. 시장을 찾아간 그들이 자신을 알리기 위해 어떤 모습을 보일지는 말 그대로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그들의 발길이 잦아지면 잦아질수록 시장의 풍경은

급속히 일그러질 것이고, 크고 작은 마찰도 생길 가능성이 큽니다. 잘 지내던 시장 사람들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져야 합니까.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평소 하던 대로 생업을 탈 없이 이어가고 싶은 그들의 마음은 왜 헤아려주지 못하는 겁니까. 후보자들이여, 제발 시장에는 우르르 몰려가지 마십시오. 굳이 가야겠다면 바구니를 꼭 챙겨 들고 조용히 들르십시오. 가뜩이나 경기가 좋지 않아 우울한 시장입니다. 표를 얻으려면 시장의 속마음부터 얻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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