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호재 감독 "인공지능은 근원적 문제 해결 못해"
  • 윤민화 · 이용우 기자 (minflo@sisapress.com)
  • 승인 2016.03.02 11:2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공지능 주인공 삼아 인간과 로봇 간 교감 다뤄
이호재 감독과 인공지능 로봇을 주제로 한 '로봇, 소리'에 대한 인터뷰를 가졌다. / 사진=김재일 기자

관객이 로봇에 공감할 수 있을까. 7년 공백기를 깨고 돌아온 이호재 영화 감독이 던진 질문이다.

인공지능은 첨단 소프트웨어 기술의 총합이다. 학습, 추론, 지각, 언어 이해 능력을 프로그램화하다보니 난해하다. 그나마 인공지능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쟝르는 영화와 소설이다. 

국내에선 인공지능 로봇을 소재로 한 작품은 손에 꼽는다. 제작 기반이 미흡할 뿐만 아니라 국내 SF물에 대한 관객들의 시선이 아직 차갑기 때문이다.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이호재 감독은 쇳덩이 로봇 '소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소리는 인공지능 로봇이다. 자아도 있고 인간과 감정적으로 교감한다. 자아를 가진 인공지능에 대한 질문엔 이호재 감독은 “지금까지 경험으로 봤을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대부분이 실현됐다. 인공지능의 미래도 같다고 본다. 넘어야 할 산은 많겠지만 언젠간 지금 상상하는 인공지능이 현실에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 어느날 아침 경복궁역 근처 조용한 카페에서 이호재 감독을 만났다. 근황을 묻는 질문엔 그는 “별일 없다. (로봇, 소리는) 2주만에 내렸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은 이호재 감독과 일문일답.

-'로봇, 소리'는 공상과학(SF) 영화인가.

이번 작품은 SF가 아니다. 이질적 존재를 다뤘다는 점에선 SF와 비슷하지만 줄거리, 감정 라인 등은 현실적 드라마에 가까웠다.

평소 SF 장르에 대한 관심은 많다. 관객 뿐만 아니라 제작자 입장에서도 흥미롭게 생각한다. 하지만 국내 SF 영화 제작 기반은 매우 약하다. 컴퓨터그래픽(CG) 기술, 예산 뿐만 아니라 국내 관객의 관용도가 굉장히 낮다. 그래서 서둘지 않았다. 미국 SF물을 당장 우리나라 설정에 맞게 바꿀 순 없다고 생각했다.

SF는 과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만든 이야기다. SF는 다른 장르와 겹치는 교점이 꼭 하나는 있다. 공상과학이라고 오로지 과학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모든 SF 영화는 인간의 관심사를 가장 중요시한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가족애로, ‘Her’는 사랑으로 과학을 풀어낸다. SF 영화는 과학적 지식과 생각을 기반으로 현재를 말한다. 미래를 다뤘다고 무조건 SF가 아니다.

-배우 이성민이 맡은 주인공 '해관'과 인공지능 로봇 '소리'의 호흡은 어떻게 그려냈나.

대화는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행동 중 하나다.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과 대화한다는 건 굉장히 놀랄 일이다. 하지만 공감하는 로봇보다 이를 대하는 인간의 감정을 더 중요시했다. 로봇을 향한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열렸는지가 인간과 로봇이 그려내는 소통의 핵심이었다.   

대구에 거주하는 40대 중년이 쇳덩이와 소통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이런 고민을 가장 많이 했다. 소통 수위, 범위에 관한 판단 대부분은 배우 이성민에 맡겼다. 소리는 이성민을 통해 표현됐다. 로봇의 행동, 표정만으론 연출에 한계가 있었다. 이성민은 1인 2역이었다. 이성민이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소리의 연기력도 올라갔다.  

-소리가 가지는 과학적 비약이 크다고 느껴졌다.  

소리는 수집한 자료를 분류하는 프로그램이다. 인공지능의 딥러닝(deep-learning) 개념을 집어넣었다. 딥러닝은 컴퓨터가 여러 데이터를 사람처럼 조합, 분석, 학습하는 프로그램이다. 사실 소리가 위성에 있을 필요는 없다. 위성은 전송 역할만 하기 때문이다. 

디자인, 크기 등에서도 비현실적 요소가 많다. 20년동안 정보를 수집한 인공지능 로봇치고는 크기가 너무 작다. 이런 구멍은 모든 영화에 적어도 하나는 있다. 관건은 관객에게 구멍을 들키느냐다. 제작자는 구멍을 들키지 않기 위해 관객과 기싸움을 한다. 이번 영화에선 구멍을 관객에게 많이 들킨 것 같다.(웃음)

가끔 의도치 않은 장면에서 색다른 해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변명하거나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 의도가 아니었다'나 '그냥 급해서'라는 변명은 '이 세상엔 산타는 없다'고 하는 것과 같다. 해석은 관객의 영역이다. 제작자의 의도를 떠나 관객의 해석이 가장 중요하다.

이호재 감독과 인공지능 로봇을 주제로 한 '로봇, 소리'에 대한 인터뷰를 가졌다. / 사진=김재일 기자

-소리를 능동적 인공지능(주체적 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으로 표현한 건가.

그렇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능동적 인공지능은 소리와 다를거라 생각한다. 소리는 인본적이다. 인본적 태도란 동물보다 인간을 우선시하고 모든 것을 인간의 시각에서 바라본다. 

소리는 미군의 민간 폭격으로 생사가 불분명해진 한 아프가니스탄 소녀를 찾아 떠난다. 극 중 소리가 내린 판단 중 가장 감성적이고 주체적이라 생각한다. 인간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에서 비롯된 결정이기 때문이다.

능동적 인공지능은 비(非)인본적일거라 생각한다. 능동적 인공지능에게 주체적 자아는 필수다. 기계가 사람에 반(反)할거란 두려움이 향후 인공지능 발전에 대한 우려를 초래한다.

-박성환 작가의 ‘레디메이드 보살'을 원작으로 한 김지운 감독의 영화 ‘천상의 피조물'에서는 득도 경지까지 이른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한다.

그 영화 매우 재밌게 봤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인간이 풀지 못한 난제, 인간의 근원적 질문 등을 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수동적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 옆에 와있다. 하지만 수동적 인공지능과 능동적 인공지능 사이에는 넘어야 할 큰 산이 굉장히 많이 있다.

-극 중 소리가 '인간은 인간이 수집한 정보로 인간을 파괴한다’고 말한다. 인공지능이 초래할 문제에 대한 경고 메시지인가.

인간이 가지는 자기 파괴적 본능에 대한 경고 메시지다. 이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SF영화 대부분의 주제다. 영화 매트릭스, 터미네이터, 아이로봇에서 기계는 인간을 공격한다. 인간이 파괴한 환경을 지키기 위해, 인간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오는 9일부터 이세돌과 알파고가 대국을 벌인다.

알파고는 해마다 바둑 실력을 키우고 있다. 알파고는 하루 100만번 이상 대국할 수 있다. 알파고의 학습수준이 어느 정도인지가 승패를 좌중할 듯하다. 많은 이들이 과학적 근거와 별개로 이세돌9단을 응원한다. 아직 인간이 기계보다 우월할거라는 기대감, 희망으로 해석된다.

한편 알파고가 이겨도 변하는건 없을거다. 알파고는 오로지 바둑만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이세돌9단을 이긴다고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가 되는 건 아니다. 이번 대국이 큰 이슈가 되는건 구글의 마케팅 전략도 한몫 했다고 본다.

-차기작으로 SF장르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은 있나.

여건만 되면 하고싶다. 하지만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선 좋은 시나리오를 만나야 한다. 인공지능 등에 대한 공부도 더 해야한다. 또 한국 영화 시장에서 SF장르가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지 증명해야 한다. 국내에서 순수 SF 영화를 제작할 기반은 아직 부족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