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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가정파괴범이 되다

치솟는 사교육비 ‘에듀푸어’ 양산…“공교육 제 역할 못하기 때문”

송응철 기자 ㅣ sec@sisapress.com | 승인 2016.03.03(Thu) 18:07:56 | 13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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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수업, 영어, 수학, 플루트, 태권도, 논술, 학습지, 숙제….”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김 아무개군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신의 방과 후 일정을 하나하나 세나갔다. 김군은 초등학교에서 정규 수업과 방과 후 수업을 마친 후 영어·수학학원과 태권도학원은 매일, 논술은 월·수·금요일, 플루트는 화·목요일에 간다고 했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밤 8시에서 9시 사이. 저녁은 김군의 어머니가 한 달 단위로 식비를 선지급해놓은 식당에서 먹는다고 했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도 일과가 끝난 게 아니다. 학습지와 학교·학원 숙제를 해야 한다. 이를 마무리하지 못하면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 이런 ‘뺑뺑이’ 생활이 평일 내내 반복된다. 듣기만 해도 숨이 막힐 지경이다.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김군은 “그래도 주말에는 쉬니까…”라며 말끝을 흐렸다. 자리에 동석한 김군의 어머니 김 아무개씨(42)는 “강남 초등학생들은 주말도 없이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받는다”며 “이 정도면 힘든 축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김씨가 느끼는 가계 부담은 어떨까. 맞벌이를 하는 김씨 가정의 한 달 수입은 세금을 제하면 450만원가량이다. 김군의 학원비 지출은 매달 70만원 정도. 둘째 아이의 유치원비까지 합하면 모두 100여 만원이 한 달 사교육비에 들어간다. 전체 소득의 20% 이상이 사교육비에 투입되는 셈이다. 김씨는 “아직까지는 괜찮다”면서도 “나중에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첫째가 중학교에 올라가면 부담이 더 커질 것 같다”고 말했다.

 

ⓒ 일러스트 정찬동

 


과도한 사교육 열기로 ‘에듀푸어’ 양산

 

한국의 사교육 열기는 그 어느 나라보다 뜨겁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사교육비와 관련해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사교육 시장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교육부가 밝힌 우리나라 사교육비 규모는 2015년 기준 17조80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영유아 사교육비와 유학비용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 한국교육행정학회 보고에 따르면, 실제 연간 사교육비 총액은 30조원을 상회한다. 이는 양성적인 사교육비만을 대상으로 한 결과다.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고액 과외 등을 포함하면 사교육비 규모는 더 크게 치솟게 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하경제’ 사교육비가 15조원 안팎에 달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은 바 있다.

 

이처럼 과열된 사교육문화가 정착된 배경은 뭘까. ‘고도성장이 만들어낸 시대적 부산물’이라는 게 교육업계의 정설이다. 과거 고도성장기에 성장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지름길은 명문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당시 명문대 출신들은 좋은 일자리를 쉽게 얻고 승진도 빨랐다. 이런 경험을 한 세대가 자신들의 자녀를 성공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사교육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학생 과외 아르바이트’나 ‘단과 학원 강좌’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이후 학벌 구조가 명확해지고 점수 위주의 학생 선발 방식, 학력 차에 따른 임금 격차 등 사회구조적 문제가 고착화하면서 사교육 열풍은 한층 거세게 몰아쳤다. 이로 인해 국내 사교육 시장은 거대 산업화했다.

 

그러나 이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먼저 재정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가정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에듀푸어(Edu-Poor)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가계가 적자 상태인데도 평균보다 많은 교육비를 지출해 빈곤하게 사는 가구를 일컫는 말이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거주하는 유 아무개씨(44)도 이런 경우다. 결혼 이후 줄곧 주부로 지내오던 유씨는 최근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올해 두 아이가 각각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사교육비 부담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학원 밀집 지역 ⓒ 시사저널 고성준

고등부 영어와 수학이 각각 30만원씩이고, 중등부는 20만원이다. 기본적으로 100만원이 사교육비로 나가는 셈이다. 여기에 고등학교로 진학한 큰아이에게는 사회탐구 과목을, 작은아이에게는 논술을 각각 추가했다. 이렇게 두 자녀의 사교육비로 매달 들어가는 돈은 150만원 정도. 주택대출금 상환과 공과금, 생활비 등을 제외하면 최근 몇 년간 가계부는 계속 적자 상태다. 학원비를 대기 위해 대출을 받은 적도 있었다. 계속해서 허리띠를 졸라매왔지만 남편이 벌어오는 월급만으로는 가계를 꾸리는 것이 어려워졌다.

 

이는 유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경제연구원 조사 자료에 따르면 에듀푸어는 전국에 82만4000가구, 305만명에 달한다. 이는 자녀 교육비 지출이 있는 전체 가구의 13%에 해당한다. 국내 교육비 관련 부채 규모를 봐도 천문학적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현재 28조4000억원에 달한다. 전년 6월말 현재 전세자금 대출이 60조원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30조원에 가까운 교육비 관련 가계부채 규모는 상당한 수준이다.

 

 

‘에듀푸어’가 ‘실버푸어’로 이어질 가능성도

 

이처럼 무리한 사교육비 지출은 가족 구성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무엇보다 부부의 노후 대책 준비에 어려움을 초래한다. ‘에듀푸어’는 ‘실버푸어’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하다. 자녀의 미래와 노후 대비를 맞바꾸는 셈이다. 노후 대비 비용은 고스란히 사회적 비용으로 전가된다. 결국 지나친 교육열이 국가의 부담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유씨는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문제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자녀들의 교육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자녀들에게 아낌없는 투자를 할 수 있는 ‘강남 학부모’들만큼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수준은 맞춰줘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유씨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 강남은 지금까지 국내 사교육 열풍을 주도해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강남 주민들의 사교육비 지출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강남구가 발간한 ‘2015 강남구 사회조사 통계표’에 따르면, 자녀 1인당 한 달 사교육비가 89만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교육 단계별로 보면 초등학생은 57만8000원, 중학생은 88만8000원, 고등학생은 130만5000원이었다. 특히 ‘사교육 1번지’로 통하는 강남구 대치동의 고등학생 사교육 평균 지출액은 257만4000원에 달했다.

 

강남의 사교육 열풍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게 바로 ‘돼지엄마’다. 돼지가 새끼들을 줄줄이 끌고 다니듯,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자녀 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엄마를 뜻하는 은어다. 돼지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자녀의 성적과 경제력, 학원 및 입시 정보력이 밑바탕에 있어야 한다. 자신의 자녀를 중심으로 그룹을 구성한다. 팀원 선발권은 전적으로 돼지엄마에게 있다. 그룹에 소속되기 위해서는 아이의 성적이 우수하고 경제력이 담보돼야 하며, 부모가 적극적으로 자녀 교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등의 조건이 붙는다. 그룹이 만들어지면 아이들을 단체로 우수한 학원에 보내거나 스타 강사를 초빙해 팀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고등학생 자녀의 교육을 위해 강북에서 강남 대치동으로 이사했다는 한 아무개씨(47)도 한때 돼지엄마가 운영하는 그룹의 멤버였다. 그에 따르면 보통 각 반마다 한 명씩 자녀 교육에 열을 올리는 돼지엄마가 존재한다. 다른 엄마들은 돼지엄마의 ‘간택’을 받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돼지엄마의 지휘 아래 자녀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한씨의 경우 자녀의 성적이 우수하다는 이유로 한 돼지엄마 그룹에 들어가게 됐다. 그룹 수업 등에 수백만 원의 비용이 들었다. 부담이 적지 않았지만 아이를 위해 견뎌냈다. 그러나 아이의 성적이 떨어지면서 결국 그룹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돼지엄마로부터 나오던 각종 학습 관련 정보는 중단됐다. 이 때문에 한씨는 강남에 위치한 학습관리업체를 통해 아이의 학원 스케줄을 관리받고 있다. 학습관리업체는 아이가 다녀야 할 학원을 관리해주는 신종 직종이다. 이 업체의 컨설팅은 학교생활기록부를 기준으로 부족한 부분을 점검하고, 이를 토대로 적합한 학원과 연결해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한씨가 컨설팅을 맡긴 업체의 비용은 70만원 선이다. 적지 않은 비용이지만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는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부모들은 자식의 성공을 위해 경제적 부담을 견디고 있다. 그만큼 자녀들도 고통에 시달린다. 과도한 사교육으로 인한 학생들의 스트레스는 이미 극에 달한 상황이다. 교육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4년과 2015년 2년 동안 자살을 생각해봤다는 중·고등학생은 무려 2만1700명에 달했다. 자살을 생각해봤다는 청소년 5명 가운데 1명이 최근 1년 내에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청소년들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며, 그 이유가 과도한 학업 부담이라는 조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이외에도 각종 연구 결과가 과도한 사교육이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하고 있다. 홍현주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팀의 연구가 그렇다. 사교육을 받는 시간이 긴 아동들에게 우울증이 나타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하루 4시간 이상 사교육을 받는 아동은 그렇지 않은 아동에 비해 3배 이상 우울증상을 많이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에도 육아정책연구소가 비슷한 취지의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영·유아기에 사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사교육을 받지 않은 아이들보다 더 심각한 정서적·사회적 문제행동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과도한 사교육 열기가 아동들에게 ‘마음의 병’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남들도 하니까’ 사교육 끊지 못하는 부모들


최근에는 국내의 사교육 현실에 의문을 나타내는 부모도 늘어나고 있다. 좋은 대학을 졸업했다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성공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다. 실제 지난해 SKY대(서울대·고려대·연세대) 인문사회계열의 취업률은 44.5%였다. 명문대를 나와도 취업을 하지 못하는 현상이 일반화된 셈이다. 여기에 사교육이 학생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는 데 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중학생의 경우 하루 두 시간이 넘는 사교육을 받을 경우 성적 향상 효과가 미미하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그럼에도 대다수 부모는 사교육을 쉽사리 끊지 못하고 있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투자해야 한다는 막연한 책임감과 ‘남들도 하니까’라는 불안 심리가 그 배경으로 지적된다. 학원들도 이런 불안과 경쟁 심리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다른 학생들에게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공포심을 심어주거나, 학원 등록을 위해 면접과 시험을 진행하는 등 경쟁 심리를 부추기는 식이다. 결국 부모는 사교육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헤어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사교육 문제에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어느 정부고 빠짐없이 사교육비 절감 대책을 내놓았다. 이명박 정부의 경우 사교육비 절감 대책으로 ‘규제 완화’ 카드를 꺼내든 바 있다. 그 결과 2010년까지 전국에 자율형 사립고(자사고)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는 고교 평준화의 틀을 깨는 결과를 가져왔다. 학원가에는 자사고 입시 대비반이 연이어 생겨났고, 아이들이 사교육 경쟁에 시달리는 시기는 한층 당겨졌다.

 

박근혜 정부 역시 사교육비 절감에 양팔을 걷었다. 이를 위해 ‘교과서 완결 학습 체제’ 구축과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시험 금지, 각종 입시에서 이전 교과과정을 뛰어넘는 문제 출제 금지, 학교 교육 정상화 등을 대책으로 내세웠다. 박근혜 정부 들어 전체 사교육비는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학생 수 자체가 매년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1인당 사교육비 지출은 오히려 늘어난 셈이다. 2015년은 2007년 이후 최대치를 경신했다. 아직 정책의 성패를 말하기는 이른 상황이다. 그러나 사교육비의 증가세만 놓고 보면 현 정부의 사교육비 절감 정책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렇다 보니, 시민단체들이 과도한 사교육 풍토를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정부의 역할에만 기댈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사교육 풍토 개선 방안으로 △고등학교와 대학의 서열 체제 완화 △결과 중심의 대입 전형을 과정 중심으로 재편 △노동시장에서 학력이나 학벌에 따른 차별 문제 척결 등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정부를 상대로 정책 제안이나 입법 추진 등을 하고 있다. 또 학부모들의 인식 전환을 위한 다양한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공교육 강화가 가장 근본적이고 시급한 과제라는 입장이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팀장은 “사교육이 활개를 치는 건 공교육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공교육이 정상화돼야 과도한 사교육으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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