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의 기억 심리부검] “형은 외로워서 먼저 간다”
  • 서종한 | 프로파일러 (사이몬프레이저대학 정신건강법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03 18:18
  • 호수 1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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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노인을 죽음으로 내모나…경제적 어려움에 건강까지 악화

강원도 삼척에서 70대 독거노인 송창식씨가 목을 매 자살했다. 가끔 드나들었던 같은 연배의 김희연씨가 오랜만에 찾아왔다가 문고리에 목을 매고 숨져 있던 송씨를 발견하고 경찰서에 신고한 것이다. 때가 탄 누런 타월을 목에 두른 상태였다. 부검 결과 질식사였다. 시체는 사망한 지 5일 정도 경과했지만 한겨울 냉방이어서 거의 부패하지 않아 냄새가 나지 않는 상태였다.

 

끼니를 제때 해결하지 못해서인지 앙상한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왜소한 체구였다. 목 주위의 상흔 이외에 몸 여기저기 경미하게 긁힌 상처도 많이 보였다. 단독주택의 허름한 집 주변으로는 침입 등의 흔적도 없었고, 유서가 발견돼 자살로 추정했다. 방 한편에는 수십 개의 빈 술병이 쌓여 있었고, 먹다 남은 김치 조각 이외에는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었다.

 

ⓒ 일러스트 임성구

경남 고성에 살고 있던 남동생이 소식을 듣고 다음 날 아침 삼척으로 왔다. 시신을 인계받고 가까운 곳에서 화장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와 헤어진 후 3개월이 지난 시점에 그로부터 형인 송창식씨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들어보기 위해 가까운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심리부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누구와 면담을 하느냐다. 면담 대상자를 통해 얻어지는 정보가 심리부검에서 가장 핵심적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그와 동거하는 유가족, 독립했다면 그와 가장 가까이 지낸 친구나 지인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신뢰할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송창식씨의 경우는 남동생과 함께 그가 다녔던 절의 주지 스님이 해당자였다.

 

주변에 친구 없고 동생들과도 가깝게 못 지내


“형은 어릴 때 4남매와 같이 성장했다. 아버지는 16세 때 교통사고로 죽었고 그 후 어머니가 생계를 꾸리며 힘들게 살아왔다. 홀어머니 밑에서 청소년기에는 방황하며 가출이 잦았고 결국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살아 있는 나머지 형제들과는 어릴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고 학교는 가지 않고 혼자 지내며 소설을 읽고 지냈다.”

 

학력이 부족해 정기적으로 다닌 직장은 없었고, 정신질환이 발병하기 전까지 막노동을 한 것이 다였다. 며칠 막노동을 하고 술 마시다 돈 떨어지면 다시 막노동을 하며 살았다. 돈에 대한 욕심도 결혼에 대한 미련도 없었다고 한다. 정작 건축 일을 해보고 싶었던 꿈을 접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 것을 슬퍼하며 한탄했다. 그런 그가 절을 10년 동안 다녔고 갑자기 종교에 심취하게 됐다. 여동생의 권유로 절을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여동생과도 그의 광신도적인 믿음으로 갈등이 생기게 됐고 서로 연락하지 않고 지냈다. 최근에는 1년에 한 번 정도 만나며 지내왔다.

 

그는 평소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같은 절에 다니는 보살들과 마주쳐도 인사도 하지 않고 자기 볼일만 보고 갔다. 뭔가 얘깃거리가 생긴다 싶으면 불교 이야기를 했고 중생으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한다며 광신도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친구가 없었고 친동생들과도 가깝게 지내지 못했다. 심적으로 의지할 곳은 그가 다녔던 절밖에 없었고 가끔 대화를 할 수 있었던 사람은 그곳 주지 스님이 유일했다. 하지만 가끔 술을 먹고 절을 찾아 난동을 부리는 등 말썽을 일으킨 적도 몇 번 있었다.

 

그가 자주 찾아가서 의지했던 스님을 찾았다. 좀 더 최근에 그가 살아온 삶을 알고 싶었다. 절을 찾아 간단히 나에 대한 소개를 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더 깊이 들었다. 그의 가족 중에 정신질환을 앓았던 사람은 없었다. 특이하게도 어떤 절에서 운영하던 도량 기도원을 갔다 온 이후로 갑자기 정신분열증이 발병했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접신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10년 전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증상이 심할 때면 가까운 폐쇄병동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부처님의 음성이 들린다며 환청을 호소했고 “시주를 더 하라, 해탈하라, 절에 더 열심히 다니라”는 지시환청을 듣기도 했다. 그러다가 또 증상이 재발하면 폭음을 하며 폭력적으로 변했지만, 스님의 도움으로 외래치료를 받으며 약물을 꾸준히 복용했다. 그 이외에는 관절이 좋지 않아 걷는 데 고통을 많이 호소했다.

 

“죽거든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달라”


죽기 전까지 폐가(廢家)이다시피 한 집에 혼자 살면서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어했다. 외래진료를 받으며 약물을 복용했지만, 사망 당시에는 약조차 살 형편이 못 됐다. 사람들과의 왕래도 전혀 없었고, 가족들과도 관계가 크게 악화돼 한동안 소식을 주고받지 않았다. 정신분열 진단으로 정신장애 2급을 받고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으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최근 장애등급이 떨어지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에 봉착했다. 마지막 희망의 끈이라 여겼던 보조금마저 줄어들면서 앞날이 막막했다. 이때쯤 자주 신세를 한탄하며 스님과 보살들에게 죽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신변을 비관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분열 증상이 악화됐다.

 

자살 사건이 발생하기 며칠 전, 동생과 마지막 통화를 하며 좋지 않은 건강 때문에 더 이상 술과 담배를 하지 말라는 동생과 승강이를 했다. 갑자기 사망자가 외롭다며 동생과 함께 있고 싶다고 했지만 지금 당장은 힘들겠다는 말을 듣고 섭섭해하며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송창식씨는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새벽 2시면 잠을 깼고, 사다 놓은 술을 먹고 다시 잠이 들었다. 끼니를 거르는 건 다반사였다. 항상 삶에 의욕이 없었다. 죽기 전날에도 새벽 3시에 절에 가서 기도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스님의 말씀으로는 한참을 울다가 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아침 목숨을 끊었다.

 

달력 한구석에 유서 몇 줄을 남겼다. ‘미안하다, 절에 가서 해탈하거라. 형은 외로워서 먼저 간다. 내가 죽거든 화장을 해서 바다에 뿌려달라. 스님께 내가 남긴 돈을 전달해주거라.’

 

심리부검을 하다 보면, 노인의 자살 패턴은 청소년이나 젊은 청년들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죽음의 방식, 죽기 전의 신호, 자살의 원인, 죽음을 선택한 장소 등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래서 일반 성인과는 구별해 원인을 파악하고 대안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송창식씨처럼 독거노인들이 가장 많이 자살하는 곳은 자신의 거주지다. 그다음으로 산·바다 등에서 투신한다. 죽음의 순간에 기력이 쇠약해지고, 관절 등 신체적인 질병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른바 ‘수동적인 자살 방식’을 선택한다. 이를테면 자신과 가까운 곳, 익숙한 물건을 선택한다. 자살 방법은 송창식씨의 경우처럼 가장 손쉽게 목을 매는 방식을 선택하고, 농촌이라면 집 안에 있던 제초제 등으로 음독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아파트에 사는 경우 옥상이나 창문에서 투신하는 경우가 잦다.

 

 

 

 

노인 유서에 ‘없다’ 낱말 가장 많아

70세 후반의 송창식씨도 무릎관절이 좋지 않아 행동반경이 넓지 못했다. 신체질환 특히 관절 질병은 삶의 질을 급격하게 떨어뜨리고 자연스럽게 정신적인 우울증으로 이어져 삶의 무기력감과 마치 짐이 된 듯한 의식을 갖게 한다. 노인의 경우 여성보다는 남성의 자살률이 높고, 특히 부인과 먼저 사별한 경우에는 더욱 크게 영향을 받는다.

 

노인 중 대다수는 경제적인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이다. 송창식씨뿐만 아니라 70대 후반의 저소득층 태반은 월 100만원 내외의 생계비로 생활을 유지하는데, 이 중 상당 부분을 약값이나 진료비로 소비한다. 이를 제하고 나면 실제 손에 남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독거노인이 자살을 생각하는 원인 중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장 크다. 이 경제적인 어려움은 건강을 더 악화시키고 주변 관계를 피폐하게 만든다. 설령 직업이 있더라도 단순 일용노동직이나 경비, 농업이나 어업에 종사하며 입에 풀칠하는 정도다. 이미 만성화된 무기력증이 심하고 특히 정신분열이나 치매 증상이 있는 경우 자살의 위험성은 10배 이상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송창식씨의 경우, 경제적 문제가 삶을 지속하느냐, 그만두느냐의 기로에 서게 만들었다. 그리고 가족과의 갈등에서 오는 스트레스, 외로움, 무기력감, 무엇보다도 정신분열의 악화가 자살과 깊은 관련성이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그 외로움 때문에 가족에게 손을 내밀었다.

 

송창식씨의 유서를 포함해 노인 유서 65건을 분석해봤다. ‘결핍과 상실’ ‘배려’ ‘가족’ 등의 키워드로 귀결됐다. ‘나’(164회)라는 주어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없다’(130회)였다. 정신적인 외로움과 고독, 그리고 육체적인 질병과 고통이 이 ‘없다’라는 낱말에 함축돼 있다. ‘돈이 없다’ ‘갈 데가 없다’ ‘생활을 할 수가 없다’ ‘가치조차 없다’ ‘이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내 주위에 아무도 없다’ 등으로 절망의 순간을 기록했다.

 

특히 ‘없다’는 ‘사람’(56회), ‘자식’(36회), ‘돈(32회)’ 등의 단어와 주로 연결돼 결핍된 노인의 고단한 삶을 말해준다. 하지만 그들이 마지막으로 드러내는 것은 회환과 남겨진 자들에 대한 이타심이다. 자신의 존재로 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질 것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 자신의 고통으로 인해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짐 된 의식이 선명하다. ‘미안’(죄송하다 포함 163회), ‘용서’(60회), ‘생각’(43회), ‘부탁’(40회), ‘바란다’(39회), ‘고생’(32회) 등의 단어가 이를 뒷받침했다.

 

노인 자살은 쉽게 경시되곤 한다. 한국 사회는 늙고 병들었다는 이유로,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인 자살이라는 죽음을 크게 문제 삼지 않으려 한다. 설령 그게 사회적 문제가 되더라도 몇 번 회자되다가 쉽게 잊혀진다. 하지만 그렇게 죽어간 노인의 빈자리가 앞으로 우리가 서야 할 자리가 될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가장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 노인들이 가장 비극적인 방식으로 죽음을 맞는다는 사실은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비뚤어진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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