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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뷰징 기사 넘쳐나는 시대에 경종 울리는 펜 끝의 힘

가톨릭 사제들의 조직적 권력 비리 파헤친 ‘보스턴글로브’ 탐사팀의 활약상 <스포트라이트>

이은선│<매거진 M> 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03(Thu) 19:11:10 | 13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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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journalism)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공공적인 사실이나 사건에 관한 정보를 보도하고 논평하는 활동’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한번 바꿔 던져보자. 지금은 저널리즘이 제대로 살아 있는 시대인가. 이는 우리를 둘러싼 매체 환경을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포털 사이트에는 단순 클릭 수를 유도하는 어뷰징 기사가 넘쳐난다. 인터넷의 도입과 함께 시작된 실시간 속보 경쟁은 팩트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상태로 수많은 베끼기 기사를 양산한다. 기자와 쓰레기를 합성해 만든 ‘기레기’라는 말은 비아냥거림을 넘어 보통명사처럼 쓰이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시대에 등장한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그 어떤 에두름도 없이 정공법으로 저널리즘을 말하는 영화다. 진실에 대한 끝없는 탐구가 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말하기 위해, 증명하기 위해서.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한 장면, 영화 <스포트라이트>에 등장하는 ‘보스턴글로브’의 기자들은 속도보다 책임감의 문제로 가톨릭 사제들의 성추행 사건에 접근해간다. ⓒ (주)팝엔터테인먼트

 


조직적으로 은폐된 아동 성추행 추적

 

<스포트라이트>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보스턴글로브’의 심층취재팀 ‘스포트라이트’의 실화를 그린다. 2002년 이들은 70명이 넘는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폭로했다. 동시에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해왔던 가톨릭교회의 행태를 만천하에 고발했다. 지역을 넘어 사회 전체를 폭넓게 지배하다시피 하고 있는 시스템의 권위에 언론이 도전한 초유의 시도였다.

 

영화는 2001년 여름 ‘보스턴글로브’의 신임 편집국장으로 마티 배런(리브 슈라이버)이 부임하는 순간부터 펼쳐진다. 배런은 출근 첫날 스포트라이트 팀에 취재 지시를 내린다. 한 칼럼에 대한 후속 취재를 진행하라는 것이다. 해당 칼럼은 30년에 걸쳐 수십 명의 아동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지역 교구 신부에 대한 글이었다. 가톨릭 신도가 대다수인 보스턴에서 가톨릭교회를 겨냥하는 취재는 엄청난 반향과 반발을 동시에 가져올 만한, 위험부담이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지시에 따라 팀의 책임자 월터 로빈슨(마이클 키튼)을 비롯한 스포트라이트 팀원들은 곧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피해자 측 변호사와 어릴 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비밀 법정기록의 공개를 요구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그 결과 이 사건은 훨씬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가톨릭교회의 차원에서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은 수십 년 동안 철저하게 은폐되고 있었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앨런 J. 파큘라 감독의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을 떠올리게 한다. 1970년대 미국을 발칵 뒤집었던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한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의 사건 취재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사건에 접근하는 기자들은 아주 작은 단서 하나까지 전부 접근하며 끈질기게 묻고 탐구하는 자세를 취한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결코 책상 앞에서 구해지지 않는다. 취재를 방해하는 정부 공작에도 불구하고, 사건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이 지칠 때까지 발로 뛰며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 행동은 결국 진실을 만천하에 알리는 선의(善意)에 다다른다. 실제로 이 사건을 담당했던 기자들의 취재는 미국 사회의 촉발제가 됐다. 저널리즘의 중요한 가치, 즉 언론이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 이 영화는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 최고의 화제작이기도 했다.

 

<스포트라이트>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 취재팀이 그랬듯 이 영화의 목적 역시 가톨릭교회 죽이기가 아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파헤치는 것이다. 저돌적인 자세로 법정 기록을 조사하는 마이크(마크 러팔로), 피해자들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지만 정확한 취재를 위해 단어 하나까지 바로잡는 샤샤(레이첼 맥애덤스) 등 스포트라이트 취재팀이 어떻게 사건에 접근했는지에 대한 과정을 촘촘하게 보여주는 건 그래서다. 결정적 단서를 잡은 팀원들은 “다른 매체에서 냄새를 맡기 전에 서둘러 보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럴 때 제동을 거는 것 역시 같은 팀의 의견이다. 빨리 보도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제대로 보도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해서다. 오늘날이라면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만한 그 주장은 결국 팀원들의 마음에 새겨진다. 실제로 스포트라이트 취재팀은 속도가 아닌 책임감의 문제로 이 사건에 접근했다. 이들은 2002년에 첫 기사를 낸 후 사제들이 저지른 아동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그해에만 총 600건에 달하는 기사를 실었다. 기자들은 기사를 내보낸 이후에도 피해자들과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오늘날의 언론 현실에 모범이 되어줄 것”


<스포트라이트>의 성취는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개인의 문제로 귀결시키지 않았다는 데 있다. 실제 사건이 그랬거니와, 영화 역시 이 문제가 몇몇 개인의 비뚤어진 악행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는 태도를 분명히 한다. 이들의 칼끝은 사건을 은폐한 시스템을 향하고 있다. 사건을 일으킨 조직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수년간 이 문제에 대해 방관하거나 침묵하고 있었던 언론 내부에 대한 비판 역시 빼놓지 않는다. 그 성숙한 태도가 저널리즘의 근간을 만드는 것임을 이 영화는 어렵지 않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언론이 취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다. 제대로 된 기본이 필요한 오늘날에 이 영화가 당도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오늘날 심층보도는 24시간 속보 뉴스와 연예인 가십을 주로 담은 자극적 기사들 때문에 뒷전으로 밀려났다. 인쇄 매체에서 웹 세대로 전환한 격동기를 맞이한 2000년대 들어 수많은 매체가 문을 닫았고, 취재 전선에 설 수 있는 베테랑 기자들도 설 자리를 잃었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언론사에서 독자적 탐사취재팀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은 견제하고 두려워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연출을 맡은 토머스 매카시 역시 “이 영화가 오늘날의 현실에 모범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양질의 고발성 기사가 현저하게 줄어든 오늘날, 충분한 시간과 자금 그리고 노련한 전문가들이 모여 이룬 저널리즘이 어떤 일을 해내고 어떤 영향력을 끼치는지를 <스포트라이트>가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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