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악몽
  • 김재태 편집위원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16.03.10 19:09
  • 호수 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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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한 교육학자가 가난한 동네에 가서 한 아이에게 “네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날마다 돈벌이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던 그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꿈요? 저는 악몽밖에 안 꾸는데요.”

 

아이들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혹여 길을 가다 무거운 가방을 둘러메고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가는 아이를 보면 괜히 서글퍼집니다. 그 아이의 어깨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올려놓았을까 하는 생각이 밀려듭니다. 저 아이도 혹시 브라질의 가난한 아이처럼 악몽만 꾸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도 듭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에 내몰리는 것도 모자라 친부모에게 맞아 죽는 아이까지 생겨나니 안쓰러움이 더 커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생태계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라나갈 여건이 매우 부족한 상태라고 합니다. 성인 2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47.3%가 “아이들이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다는 것입니다. 이 보고서에는 또 전국 아동 손상(부상) 사고 발생 건수가 2007년 5만7058건에서 2014년 6만9817건으로 7년 만에 22%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다치고, 아프고, 경쟁에 지쳐 하루도 편할 날 없는 것이 우리 아이들의 현실임을 이 보고서가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누가 아이들을 이처럼 거친 세상으로 내몰았는지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른들의 욕심, 혹은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가 아이들의 숨통을 조였음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수렁으로부터 아이들을 구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지지부진입니다. 아직도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 아니 그보다 더 일찍부터 남들보다 공부를 잘해야 커서 잘 살 수 있다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야 합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겪어도 충분할 경쟁의 지옥을 어린 나이에 이미 체득하고 어쩔 수 없이 그 흐름에 몸을 던져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 아이들의 숙명처럼 되어버린 지 오랩니다.

 

아이들을 경쟁의 세계로 내모는 진짜 이유를 ‘대학병(大學病)’에서 찾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이른바 명문 대학을 가야만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병적인 믿음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대학병’이 원인이라면 아이들을 경쟁의 늪에서 구해낼 수 있는 방법도 그 대학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얼마든지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어차피 모두가 1등을 할 수 없고, 모두가 명문대를 갈 수도 없습니다.

 

공부뿐만이 아닌 다른 여러 선택지들을 쥐여줘야 합니다. 아이들이 학창 시절부터 좀 더 다양한 체험들을 할 수 있도록 많은 멍석을 깔아줘야 합니다. 경쟁하지 않고도, 밤낮으로 사교육에 시달리지 않고도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꾸려갈 수 있게 많은 통로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몇 해 전 한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지병 탓에 달리기를 할 때마다 늘 꼴찌를 했던 친구를 위해 같은 반 학생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뛰어주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그 미담처럼 모두가 1등을 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더는 경쟁에 지치지 않고 함께하는 삶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결국 어른들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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