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 위해 웰다잉 생각하다
  • 장지연 인턴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10 20:13
  • 호수 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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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르포 웰다잉 프로그램, 죽음을 이해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 시간

2016년 2월18일 기자는 10여 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미래에 다녀왔다. 날짜도, 계절도 알 수 없는 어느 날 기자는 수의를 입고 목관에 누워 있었다.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누구일까. 예상치 못한 뜻밖의 사고를 당했다면 그건 죽음을 당한 것일까, 맞이한 것일까. 세상과 단절된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이 아득했다.

 

지난 2월18일 오후 1시 기자는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효원힐링센터’에서 임종 체험을 했다. 중학생부터 노부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 30여 명이 함께했다. 호기심과 숙연함이 동시에 감돌던 와중에 한 여학생이 홀로 차분하게 앉아 있었다. “우울증이 있어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에요. 체험을 하면 뭐라도 달라지지 않을까 해서 왔어요”라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던 정지은양(가명·18)은 두 달 전 스스로 삶을 끝내려 했던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2월18일 서울 영등포구 효원힐링센터를 찾은 시민들이 임종 체험에 참가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유한한 삶을 사는 시한부 인생”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전국의 100세 이상 인구는 1만6382명으로 이제 100세 시대가 머지않았다. 고령화에 따른 질병·고독사와 자살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웰빙(well-being) 열풍은 그 마지막 단계인 웰다잉(well-dying)으로 이어졌다. 웰다잉은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으로 품위 있는 삶의 마무리를 뜻한다.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 2009년 ‘김 할머니 사건’으로 존엄사 논쟁이 촉발됐고 이를 계기로 2016년 1월 ‘웰다잉법’이 합법화됐다. 환자의 결정에 따라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해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웰다잉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대두되면서 이와 관련한 프로그램도 마련되고 있다.

 

체험은 영정 사진 촬영으로 시작됐다. 사람들이 차례로 카메라 앞에 앉았다. 한 중년 여성은 립스틱을 덧발랐다. 마지막 모습이니 밝게 웃으려 했지만 어쩐지 어색했다. 촬영을 마치고 50여 분 동안 센터장의 강의가 있었다. 가족에 대한 애틋함에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졌을 즈음, 영정 사진을 받아들었다. 검은 테두리가 둘러진 영정 사진을 들고 사람들의 행렬을 따랐다. 철문 뒤로 계단길이 이어졌다. 사뭇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한 여성이 “섬뜩하다”는 말을 꺼냈다. 저승길을 묘사한 캄캄한 길의 벽에는 천사가 성수를 뿌리는 그림이 붙어 있었다.

 

계단을 따라 한 층 위로 올라가자 저승사자 복장의 남자가 서 있었다. 분향소처럼 꾸며진 곳에 고인이 된 유명인들의 영정 사진이 있었다. 수십 구의 목관이 줄지어 놓여 있었고, 관 옆에 각자 앉을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자리에 앉아 지나온 삶을 성찰하는 명상을 했다. 이후 시한부 인생을 사는 한 여성과 그 가족들의 삶을 담은 영상을 보며 분위기는 더욱 숙연해졌다. “결국 유한한 인생을 사는 여러분도 시한부 인생 아니십니까?” 답이 정해진 질문이 던져졌다. 수의를 입은 채 유언장 작성이 시작되자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언장을 작성하는 동안 대여섯 명의 사람이 유언장을 낭독했다. 한 여학생이 목이 메는지 어렵게 유서를 읽어나갔다.

 

“아빠, 우리는 서로에게 무뚝뚝하고 관심도 부족했던 것 같아.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멀리 왔지만 이제야 후회가 돼. 나는 아빠가 싫어서 그런 게 절대 아니야. 다시 태어나도 아빠 딸로 태어나서 잘할게.”

 

이어서 입관이 시작됐다. 관이 비좁았던 탓인지 두 손이 배 위로 가지런히 모아졌다. 관 뚜껑이 묵직하게 닫혔고 못을 박는 듯한 ‘쾅쾅쾅’ 소리가 관 전체를 울렸다. 딱딱한 나무 상자 안으로 불빛 대신 추모 음악이 흘러들어왔다. 애써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려 하자 아침에 봤던 가족들의 표정이 스쳤다. 10분의 시간이 지났는지 마침내 관 뚜껑이 열렸다. “관 뚜껑도 열리고 새로운 세상도 열렸습니다. 과거 아픈 일들은 관 속에 두고 행복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축하합니다.” 축하를 받으며 관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이들을 격려하는 박수를 보내고 악수를 나눴다. 수의를 벗는 사람들의 표정은 담담했고, 또 밝았다. 이윤희씨(가명·55)는 자신을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이라고 표현했다. “지병이 있어요. 식습관장애를 동반한 우울증에 몸무게가 34kg밖에 되지 않아요.” 그의 야윈 몸이 위태로워 보였다.

 

“차라리 시한부면 삶을 정리하고 죽음을 준비할 텐데 언제가 될지 몰라요. 항상 죽음에 대해 생각해요. 보호자 역할을 하는 딸은 내 걱정에 오랜 시간 외출도 못하고 늦둥이 아들은 마음의 병을 얻었어요. 아이들이 하나라도 느끼고 갔으면 좋겠어요.”

 

체험을 마친 그는 “그동안 아프다는 이유로 아이들한테 언어폭력이 있었는데 아이들 가슴에 상처가 되지 않게 하려고 해요”라고 자신을 반성했다. 참가자들과 체험 소감을 나누면서 어느샌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열여덟 살 여학생에게 마음이 쓰였다. “임종체험이 있다고 부모님한테 말씀을 드렸더니 이상하게 생각하셔서, 친구 만나러 간다고 하고 몰래 왔어요”라고 말했던 어린 소녀는 홀로 먼 길을 와서 무엇을 느끼고 갔을까. 마음속으로 어린 나이에 죽음을 생각하게 된 그 아이의 삶이 더욱 견고해졌길 바랐다.

 

서울 영등포구 효원힐링센터에 영정 사진이 놓여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죽음을 언급할 수 없는 사회”

 

죽음을 인식하면 삶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고 한다. 임종 체험을 진행하고 있는 정용문 센터장은 “사람은 죽음을 앞두고서야 삶을 돌아보고 감사하게 되는데 그런 계기를 마련해주고자 하는 치유 프로그램”이라고 프로그램 취지를 설명했다. 현재 웰다잉 프로그램은 민간 기관 및 단체에서 일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국내 유일의 죽음 문제 연구소인 한림대학교 생사학연구소의 오진탁 교수는 “포괄적이고 깊이 있는 죽음 이해가 필요하다. 공단이나 정부 부처가 단계적 과정으로 접근해서 제대로 된 교육을 통해 전문가를 양성하고 학교에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사학연구소 양정연 교수 역시 “죽음 교육이 자리 잡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이런 교육이 학교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공통된 입장을 보였다. 양 교수는 “죽음은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의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이 죽음에 대한 정규 교육을 마련하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 “젊고 어린 친구들도 가족·친구·애완견을 통해 죽음을 경험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죽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공감할 수 없는 분위기”라며 서양과 동양의 죽음에 대한 관점 차이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그는 “서양에서는 죽음 교육이 확산됐고, 학교 교육을 통해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문화다. 학교 교육과 민간의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대외적으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많다”면서 의미 있는 삶을 위한 죽음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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