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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축구 대통령’ 등장 한국 축구에도 기회

개혁 외친 인판티노 신임 FIFA 회장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과 통할까

서호정 | 축구 칼럼니스트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10(Thu) 20:23:56 | 13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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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가장 단순하고 쉬운 스포츠다. 공 하나만 있으면 다른 제약은 없다. 지금 이 순간, 미국·중국·유럽은 물론 아프리카 오지에서도 축구공은 멈추지 않고 굴러간다. 그 대중성은 세계 축구의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영향력이 유엔(국제연합)마저 능가할 수 있는 힘이다. 1년 예산은 2조5000억원 규모지만 회원국 수는 209개국으로, 193개국의 유엔보다 많다. ‘축구 대통령’으로 불리는 FIFA 회장은 국가원수에 준하는 예우를 받는다.

 

지난 2월27일 FIFA는 세계 축구의 운명을 손에 쥘 수 있는 회장 선거를 치렀다. 스위스 취리히의 FIFA 본부에서 열린 특별총회에는 정치적 개입에 의한 징계로 축구협회가 자격정지 상태인 쿠웨이트와 인도네시아를 제외한 207개국 대표가 모였다. 당초 바레인 출신의 셰이크 살만 빈 이브라힘 알 칼리파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장이 유력한 당선 후보로 언급됐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판세는 달랐다. 2차 투표 끝에 지아니 인판티노 유럽축구연맹(UEFA) 사무총장이 과반에 해당하는 115표를 받아 당선됐다. 세계 축구에 인판티노 시대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 EPA연합


또다시 유럽에서 나온 축구 대통령


만 46세의 인판티노 신임 회장은 이탈리아계 스위스인으로 이중국적자다. 스위스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한 변호사 출신이지만, 2000년 UEFA의 법률사무장을 맡으며 축구계로 뛰어들었다. 2009년 사무총장으로 올라선 그는 미셸 플라티니 UEFA 회장의 절대적 신임 아래 다양한 개혁 작업을 주도해왔다. 이탈리아어·독일어·프랑스어·영어·스페인어·아랍어에 능통한 그는 후보자 소견 발표에서 다양한 언어 능력으로 지지를 호소했다. 1차 투표에서 탈락한 요르단의 알리 알 후세인 왕자, 프랑스의 제롬 샹파뉴의 표는 2차 투표에서 인판티노에게 향했고, 1차 투표 때와 큰 차이 없는 득표를 한 셰이크 살만 회장을 꺾었다.

인판티노의 당선은 또 한 번 FIFA가 유럽에 권력을 양위했다는 인상을 준다. 인판티노 회장 전까지 8명의 전직 회장 중 7명이 유럽 출신이었다. 유일한 비유럽 출신은 무려 24년(1974~1998)을 집권한 브라질 출신의 주앙 아발란제 회장이다. 당초 유력한 후보자였던 플라티니 UEFA 회장이 비리 탓에 자격정지로 출마하지 못하자, 그의 오른팔인 인판티노는 유럽 대표로 나섰다. UEFA는 회원 수가 53개국으로 각 대륙별 연맹 중 아프리카축구연맹(CAF·54개국) 다음으로 많다. 인판티노는 UEFA와 CAF의 표를 완벽히 흡수하는 전략으로 선거에서 승리했다.

 

대신 당선 직후 인판티노 회장은 ‘지역 균형 발전’을 강조했다. 자신을 포함한 유럽 출신들이 FIFA 회장직을 점유해왔다는 데 대한 반발을 의식해서다. 셰이크 살만 AFC 회장의 당선이 유력하게 점쳐졌던 것도 그런 반(反)유럽 정서의 결집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판티노 회장에게 주어진 첫 미션은 반대파와의 화해다. 그 첫 과정으로 자신의 업무를 도울 비서관을 비유럽 출신으로 구성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종의 탕평책이다. 셰이크 살만 회장에게도 바로 손을 내밀었다. FIFA를 흔든 부정부패 스캔들의 중심에 있는 2022년 카타르월드컵 개최는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셰이크 살만 회장은 카타르·UAE 등 아랍 세계의 지원을 등에 업었던 인물로 카타르월드컵의 겨울 개최를 강력히 주장해왔다. 인판티노 회장은 “축구는 더 이상 분열되지 않는다”는 소감으로 빠른 통합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축구를 다시 세상의 중심으로 옮겨놓도록 회원국들과 함께 새 시대를 만들고 싶다”는 목표도 밝혔다.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인 과거 청산과 개혁을 위한 의미심장한 발언이었다.

 

FIFA는 전임 회장인 제프 블래터를 둘러싼 부패와 추문으로 권위가 추락한 상태다. 블래터 전 회장은 2015년 5선에 성공하며 아벨란제 이상의 독재 체제를 구축했지만, 카타르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의 뇌물 의혹을 미국과 스위스 법무부가 파헤치며 위기를 맞았다. 게다가 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의 의혹을 자체 조사한 FIFA 윤리위원회 조사관 마이클 가르시아의 보고서를 축소·왜곡하는 ‘가르시아 보고서 스캔들’까지 빚어지며 블래터 전 회장은 권좌에서 물러나야 했다.

 

 

‘구체제의 후계자’가 이끌 개혁의 그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판티노 신임 회장 역시 이 구(舊)체제와 연결돼 있다. 그 또한 블래터 회장과 협력 관계였던 플라티니 UEFA 회장의 최측근이기 때문이다. 플라티니 회장은 블래터 전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부패 스캔들의 한 축으로 꼽혔다. 결국 플라티니와 블래터는 FIFA 윤리위원회로부터 8년간의 자격정지를 당하며 국제 축구계에서 동시 축출됐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새 인물을 추대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들에 의해 성장한 인물이 권력을 이어받은 셈이다.

 

2019년까지 최소 4년 동안 FIFA의 수장으로서 세계 축구를 이끌게 되는 인판티노 회장은 당선 소감에서 플라티니를 언급했다. 그는 “플라티니 회장에게 고맙다. 그와는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추억은 추억으로 끝난다. 이제 축구를 아름다운 게임으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과거의 관계에 대해 선을 긋기도 했다. 구체제의 도움으로 성장했지만 현재 자신이 직면한 과제가 투명성 제고, 개혁임을 확실히 천명한 것이다.

 

실제로 인판티노 회장은 UEFA 사무총장 시절 과감한 정책과 탁월한 실무 능력으로 주목받은 개혁가 이미지가 강하다. UEFA 산하의 프로 리그에서 선수 인건비가 구단 수입의 총액을 넘지 못하도록 한 ‘재정 페어플레이(FFP)’가 대표적인 그의 작품이다. 유럽선수권(유로) 참가국도 프랑스에서 열리는 이번 유로2016부터는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늘어났다. 유로2020은 특정 국가에서의 단독 개최가 아닌 유럽 내 13개국 분산 개최라는 유례없는 방법을 도입했다.

 

FIFA 회장 선거에 나서며 그가 내세운 공약도 비슷한 맥락이다. 월드컵 본선 참가국을 현재의 32개국에서 40개국으로 확대하는 것이 첫 번째다. 다음은 회원국에 매년 500만 달러, 대륙별 연맹에는 매년 4000만 달러의 수익을 분배하겠다는 공약도 외쳤다. 두 번째 공약의 경우 선심성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재정이 취약한 대다수 회원국과 아프리카·아시아·북중미·남미 등의 축구연맹은 환영하는 모습이다. 취임 후 처음 업무를 시작한 날에는 판정에 대한 비디오 판독에도 열린 자세를 취했다. 블래터 전 회장이나 플라티니 등 구체제 인물들이 축구의 본질을 해칠 수 있다며 강력히 반대해온 기술 도입이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스포츠산업이 발전한 국가들은 이를 꾸준히 요구해왔다. 다양한 요구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실용적인 개혁가의 이미지를 꾸준히 알리는 것. 인판티노 회장이 구체제 계승자의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방법이다.

 

개혁과 변화를 화두로 삼은 인판티노 회장 시대에 한국 축구의 선택도 중요하다. 지금 한국 축구의 외교력은 그 어느 때보다 땅에 떨어진 상태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은 한때 FIFA 부회장으로 아시아 축구를 대표하는 인물이었고, 국제 축구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그러나 반(反)블래터 성향을 나타내자 수뇌부의 노골적인 훼방으로 2011년 FIFA 부회장 5선에 실패하며 순식간에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졌다. 블래터 지지파는 정 명예회장이 지난해 말 FIFA 회장 선거 출마를 천명하자 6년간의 자격정지를 내려 원천봉쇄하기도 했다.

 

 

인판티노 FIFA 회장은 비리 혐의로 낙마한 미셸 플라티니 전 유럽축구연맹 회장(오른쪽)의 최측근이었다는 굴레를 벗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 EPA연합


국제 축구계 주류 입성 노리는 정몽규 회장


정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한국 축구의 수장이 된 정몽규 현 대한축구협회 회장도 국제 축구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고전하고 있다. 지난해 4월 FIFA 집행위원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AFC의 권력은 단결력이 강한 중동 쪽으로 향해 있지만, 극동은 한국·중국·일본이 각기 따로 놀아 힘을 내지 못하는 형국이다. 정 회장은 중동으로부터 ‘합종연횡’을 제안받았지만 그것을 거부했다가 최저 득표라는 참담한 결과를 맛봤다.

 

투명성 제고를 위한 개혁을 내세운 인판티노 회장은 비리의 온상인 FIFA 집행위원회 폐지를 실행해야 한다. 대신 36명의 협의회가 도입된다. 한국 축구가 외교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 협의회에 가세할 필요가 있다. 정 회장에게 상황이 유리한 것은 아니다. 셰이크 살만 회장은 선거 전에 한국을 비롯한 극동아시아의 회원국이 자신을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 회장이 실제 투표를 셰이크 살만에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구도상 인판티노 회장의 반대편에 섰다. 개인의 뜻보다는 AFC 전체가 셰이크 살만을 지지하기로 한 상황이 만든 결정이다.

 

그러나 인판티노 회장이 선거 후 지역 균형을 강조하며 모두를 품고 가겠다는 뜻을 알린 만큼 과거는 과거로 묻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정몽규 회장에게는 명분이 있다. 인판티노 회장 체제에서 치르는 FIFA의 첫 메이저 대회인 20세 이하 월드컵이 내년에 한국에서 열린다. FIFA와 인판티노 회장으로서도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지난 2년간 계속된 정 회장의 국제 축구계 주류로의 입성을 위한 또 한 번의 기회인 셈이다. 개혁과 실리를 앞세운 인판티노 회장의 코드는 정몽규 회장과도 맞닿은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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