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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아의 음식인류학] 세포 수준에서 벌어지는 봄나물의 ‘초한지(楚漢志)’

서로 주기도, 뺏기도 하는 봄나물과 인간의 상호작용의 역동성

이진아 | 환경·생명 저술가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10(Thu) 20:32:23 | 13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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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 음식 하면 그 무엇보다 나물이다. 요즘이야 사시사철 취나물·냉이·달래 등 봄나물을 입맛대로 구할 수 있지만,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겨우내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어려웠다. 때문에 봄 시장에 나물이 나오기 시작하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긴 겨울, 비타민C 부족을 어느 정도 겪어야 했던 사람들은 이 봄나물이 얼마나 반가웠을까? 그래서일까. 나물 캐는 것과 관련된 노래와 시가 상당히 많다. 

 

"한치 뒷산에 곤두레 딱주기 님의 맘만 같다면 병자년 대흉년에도 봄 살아나지. 산나물 하러 가세 산나물 하러 가세, 우리나 산 넘세 봄나물 가세"

 

강원도와 충청도 동북부 지방의 ‘나물 캐는 노래’ 가사다. 뒷동산에 올라가 햇볕을 받으며 쪼그리고 앉아서 한나절 나물을 캐노라면 다리도 저리고 허리도 아파온다. 그럴 때 동네 처녀들이 삼삼오오 함께 나물을 캐러 가 이런 노래를 부르며 고단함을 이기려 했던 것이다.

 

ⓒ 시사저널 임준선


독성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봄을 노려 공격


봄나물 캐는 시기는 식량이 떨어지는 시기와 일치한다. 가을철 쌀농사를 거둬 소출을 내면 얼마 안 되는 쌀에 잡곡을 섞어 근근이 겨울을 나는 게 소농들의 삶이었다. 4월, 겨울밀이 수확되는 시기가 가까이 다가오면 가난한 농가들은 하루하루 나기가 어려운 ‘보릿고개’를 겪었다. 특히 전년도가 흉년이었다면 영양실조로 얼굴과 사지가 붓기도 했고 춘곤증으로 무력해지기도 했다. 이때 봄나물을 무쳐서 실컷 먹고 나면 부기도 빠지고 몸에 활력이 돌아왔다. 이런 봄나물은 정말 ‘님의 맘’같이 생각됐을 것이고 ‘병자년 대흉년’을 겪고 난 다음에도 ‘봄 살아난다’는 믿음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나물, 즉 산과 들에 나는 풀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들이 자신을 환영하는 일이 좋을 수는 없을 게다. 생리학자 네스와 윌리엄스는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라는 책에서 이런 풀과 인간의 초한지, 즉 전략 경쟁 과정을 설명한다. 사람뿐 아니라 산짐승들도, 그리고 벌레들도 따사로운 봄볕을 받아 돋아나기 시작하는 연하고 영양가 담뿍 든 식물들을 노릴 것이다. 무성하게 자라 자손을 번식하려는 욕구는 식물에도 있다. 자신의 잎새가 동물과 곤충의 유충들에게 깡그리 먹힌다면 열심히 양분을 만들어가며 자식을 많이 키우려 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나물은 나름대로 전략을 개발한다. 벌레나 동물이 자신의 잎새를 뜯어먹는 순간, 혹은 인간이 손을 대 잡아뜯는 순간 그 신호가 잎새 전체로, 또 근처의 식물들에게도 전달되어 식물의 모든 세포가 스트레스 독성을 만들어낸다. 한 잎, 혹은 한 포기 뺏기는 것이야 막지 못한다 하더라도 더 이상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의지다. 독성이 있는 식물은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에게 ‘맛없는 먹이’로 인식된다. 한 입 뜯긴 식물의 재빠른 대처로 인해 스트레스 독성이 식물 전체로 퍼지게 되면 동물들은 한 입만 먹고 곧 포기할 수밖에 없다. 어떤 식물은 표면에 거칠거칠한 피막 구조를 만들어 아예 입에 대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식물은 식물대로 많이 뺏기지 않으려는 전략이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봄나물을 한껏 따서 삶아 무쳐 먹는다. 어떻게 해서 그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봄나물일 때만 먹으면 된다’는 것이다. 봄이 되어 날씨가 따뜻해지면 모든 생물이 잠에서 깨어나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식물들도 부지런히 세포분열을 해서 잎새를 내밀고 쑥쑥 뻗어간다. 이 시기, 즉 처음 눈이 트고 잎새가 돋아나기 시작할 무렵에는 모든 식물이 웬만큼 광합성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잎사귀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속성장을 하게 된다.

 

ⓒ 시사저널 임준선


나물의 전략, 많은 개체로 살아남기


이렇듯 식물들이 크기를 키우기 위해 에너지를 집중하는 단계에서는 독성을 만들어내는 데 쓸 만한 에너지가 별로 없다. 식물을 먹는 동물들의 입장에서 보면 연하고 양분은 많으며 독성이 없는, 그야말로 안성맞춤 먹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봄이 오면 우리네 여인들이 인근의 동산으로 쫙 흩어져서 나물을 캤던 게 아닐까. 데쳐서 양념한 나물을 먹고, 콩고물로 무쳐 먹고, 떡도 해 먹고, 국도 끓여 먹고. 한마디로 실컷 먹을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때라 해서 식물 측의 전략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단계의 전략은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많은 개체를 퍼뜨리는 것이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봄나물들이 쫙 깔린다. 따뜻한 봄볕을 받으며 한 두어 시간만 캐도 바구니가 수북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개체수의 식물이 사람들의 손길과 눈길을 피해, 그리고 초식동물들의 코를 피해 살아남게 된다.

 

이렇게 해서 살아남은 식물들이 웬만큼 잎사귀를 갖추게 되면 성장 속도가 떨어지고 독성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이 시기에 접어들면 여인들은 약간 억세진 나물들을 캐서 햇볕에 말린다. 햇볕에 말리게 되면 어느 정도 해독될 뿐 아니라 비타민D 등 새로운 영양소가 더욱 보강된다. 이것을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진 곳에 잘 갈무리해두었다가 정월을 넘긴 한겨울에 뭉근히 부드럽게 삶아 묵나물로 무쳐 먹는다. 은근한 열로 오래 삶게 되면 남아 있던 독성들이 열에 의해 서서히 분해된다. 그래서 대보름 무렵, 긴 겨울날을 지내는 동안 신선한 채소를 먹지 못해 결핍되었던 식물성 미량원소들이 충분히 공급되면서 몸 안의 독성도 해소해주고 활기를 잃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처럼 봄나물과 그것을 이용하는 인간은 서로에게 주기도 뺏기도 하고 잃기도 지키기도 하는 역동적인 전략을 구사하면서 공존해왔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잘 인식되지 않는다 뿐이지 세포 수준에서 생기는 인간과 식물 사이 상호작용의 역동성은 <초한지>의 주인공 항우와 유방의 팽팽한 기 싸움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인간은 그렇게 해서 자연계로부터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얻고 또 지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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