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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도덕성만으로 실현되는가?

남인숙 | 작가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10(Thu) 20:33:44 | 13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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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필자는 코트를 싸게 살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어느 기업에서 주최하는 마지막 파격 세일 행사장에 달려갔다. 판매장은 그 건물 11층이었고, 주최 측 직원들은 예상 밖으로 몰려든 사람들을 통제하며 엘리베이터에 태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단 줄 끝에 선 필자는 헤아릴 수 없이 구부러지고 겹쳐진 기다림의 행렬을 지켜보며 고뇌에 빠졌다. 이대로 돌아갈 것인가, 남을 것인가. 기회비용을 따져보느라 시간을 더 보내버린 필자는 그냥 관성에 나를 맡기기로 했다.

 

자그마치 한 시간 반을 기다린 끝에 번호표를 받고 문제의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당연히 1층에서 11층까지 곧바로 올라가야 할 엘리베이터가 3층에서 멈췄다. 거기서 젊은 여자 둘이 올라탔다. 이내 엘리베이터 안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로비에서 비상계단을 통제하던데 다른 길이 있었나 봐요.” “우리는 두 시간 가까이 기다려서 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저 사람들은 바로 들어가는 건가요?”

 

엘리베이터가 11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소리치기 시작했다. “저 두 사람 못 들어가게 막아주세요! 새치기한 사람들이라고요!” 그러나 1층보다 더 아수라장이었던 판매장에서 그런 외침을 들은 직원은 없었고, 사람들은 곧 각자의 목적을 위해 흩어졌다. 그 순간, 필자는 앞서가던 두 여자가 주고받는 대화를 듣고 말았다. “얘, 우리를 못 들어가게 하란다.” “흥, 웃겨.”

 

미안함이나 죄책감은 없었다. 그녀들의 행동은 몰염치가 아니라 남을 앞지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삶의 지혜였으며, 아래에서 시키는 대로 기다린 우리가 우매한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도 그녀들의 뻔뻔함에 치를 떨던 필자는 문득 로비에 막 도착했을 때 그 망연함 속에서 나 역시도 불순한 생각을 잠깐 했다는 걸 기억해냈다. ‘엘리베이터가 이 난리라면 계단으로 가면 되지 않을까?’

 

비상구 쪽을 지켜보는 그 많은 눈이 없었다면 어쩌면 필자는 계단을 택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쯤 되자 3층으로 몰래 숨어든 그녀들이나, 그녀들의 저열한 양심에 대해 성토하던 필자나 오십 보 백 보의 윤리성을 가진 게 아닌가 싶었다. 냉정히 보자면, 필자는 정의에 어긋난 행동으로 불평등이 발생한 상황에 대해 분노한 게 아니라, 내가 못해 손해 본 행동을 그녀들이 해서 부아가 났을 뿐이었다.

 

평범한 인간이 순전히 도덕성에 의존해서 정의로울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한 사회의 정의는 인간의 이기심이 발견해낼 수 있는 모든 구멍들을 찾아내 틀어막을 수 있는 영리함에서 나오는 것 같다. 숱한 구멍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도덕성을 시험에 들게 하는 사회는 살 만한 곳이 못 된다.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인간 사이에서의 정의란, 사람의 가장 악한 영리함을 고려한 촘촘한 규칙과 실천이 있을 때에야 제구실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 오후였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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