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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과 자퇴, 자학 그리고 죽음

19세 동성애자, 원룸에서 목매 자살…“이 세상에 미련이 없어지네”

서종한 프로파일러(사이몬프레이저대학 정신건강법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17(Thu) 19:55:25 | 13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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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의 어느 아침, 김진희(19)가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자 두 명의 친구가 급하게 그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아침인데도 안에서 인기척이 없자 불길함을 느낀 친구들은 문을 따고 들어갔다. 이들은 부엌 옆 옷방 문고리에 목을 맨 친구를 발견하고 119에 신고했다. 하얀색 원피스 잠옷을 입은 채였다. 유난히도 긴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은 채 문을 등진 상태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깨끗한 원룸은 누군가 금방 청소를 해놓은 듯 너무나도 잘 정돈돼 있었고 유서 한 장이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친구들은 새벽에 김진희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외로우니 술이 먹고 싶다’는 내용의 문자가 5차례나 와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아침이 돼서야 이 문자를 확인했다. 마지막 문자가 ‘이 세상에 미련이 없어지네’라는 불길한 내용이었다. 이들은 집에서 가까운 단란주점에서 함께 1년 정도 일했던 터라 서로 잘 알고 지낸 사이였다. 최근 그로부터 동거하던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힘들어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들로서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바로 그의 집부터 들르게 된 것이다.

 

ⓒ 일러스트 임성구

홍미진이라는 친구는 지난밤, 늦게 단란주점 일을 마치고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김진희의 집과 가까워서 보통은 함께 걸어서 귀가를 했다. 하루 종일 기운이 없어 보여 ‘몸이 좋지 않아서 그러나’라고 생각했는데, 길을 걷다가 “요즘 우울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무심결에 내뱉는 것이다. 동거하던 남자가 더 이상 지겨워서 자기와 있기 싫다며 짐을 싸서 나가버렸다는 것이다. 집 근처 벤치에 앉아서 한참을 울고 있던 그를 안아주고 진정을 시켰다. 걱정이 됐던 친구는 그가 집에 들어가 잠을 자는 것을 확인하고 귀가했다.

 

가족에게도 외면받는 동성애자의 죽음


김진희는 동성애자다. 그런 동성애자 자살의 경우 유가족을 찾기가 힘들다. 오랜 기간 가족들과 떨어져 있었고 호적과 주소지를 모두 바꾸기 때문에 현장에서 나온 단서만으로 유가족을 바로 수소문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가족에게조차도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과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이들이 적응하며 살 수 있는 방식은 회색인처럼 사는 것이다. 이 세상에 몸은 존재하지만 그 안에 깃든 마음과 정신은 없는 듯 인정받지 못한다.

 

혹시나 타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원룸을 자세히 살펴봤다. 옷장에는 남자 외투와 여자 원피스, 남자 속옷과 여자 속옷이 공존했다. 안방에는 화장대와 큰 거울이, 욕실에는 남성용 면도기가 놓여 있었다. 신발장에는 남자 운동화와 구두, 하이힐과 부츠가 함께 놓여 있었다. 여성들이 보는 잡지와 책들도 놓여 있었다. 모두 가지런히 정돈돼 있어 구석구석 섬세한 여자의 손길이 느껴졌다.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들은 모친이 멀리 경남 하동에서 올라왔다. 그가 죽은 지 3일 만이었다. 그의 부친과 다른 형제들은 올라오고 싶지 않다고 전했다. 죽어서도 그는 딸과 여동생이 되지 못했다. 모친만 올라와서 영안실에서 시신을 확인했다. 홀로 차갑게 누워 있던 자식의 손을 잡고 어머니는 조용히 흐느끼며 서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공부도 잘하고 한없이 늠름했던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부터 어머니는 자식을 거부했다고 한다. 뭔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를 바로잡으려고 애를 썼다. 고등학교 1학년 이전에 한없이 사랑스럽던 아들을 되찾기 위해 모친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한다. 최근에야 집을 나간 자식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립고 보고 싶었지만 이제 아들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시신 앞에서 모친은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며 절규했다. 엄마는 늘 엄마였다.

 

“이런 내가 너무 밉고 증오스럽다”


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던 16세 때 부모에게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는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부모와 마찰을 빚으며 점차 자기혐오와 우울증에 빠졌다. 학교에 가지도 못하게 했고 노트북과 휴대전화도 빼앗고 바깥출입을 금지시켰다. 그리고 하루 종일 교회에서 기도를 하게 했다. 악마가 씌었다며 새벽기도에 나가 통성기도를 하게 했고, 기도원으로 데려가 며칠씩 금식기도라는 이름으로 굶겼다. 당시의 심경을 담은 일기장의 한 대목이다. ‘내 부모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이런 내가 너무 밉고 증오스럽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었을까?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속 시원하겠다.’

 

큰형은 그를 향해 “이런 병신 새끼, 너만 보면 역겨워”라고 몰아세웠다. 그는 스스로 몸은 남자지만 실제는 여자라는 사실을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모친과 가족의 학대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그는 결국 17세 나이에 가출을 결심했다. 한 여자로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서울로 올라왔다. 고시원을 전전했지만 작은 바에서 일을 하며 돈을 조금씩 벌기 시작했다. 생김새가 여자보다 더 예쁘다는 소리를 들어서 화장을 하고 가발을 쓰면 영락없이 앳된 여자아이였다. 아니 여자보다 더 여성스러워 보였다. 그렇게 그는 생계를 유지하며 살았다.

 

그는 ‘JH’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손님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소개할 때는 여자로서 하고 싶었던 발레리나라고 했다. 근처 단란주점에서 만나 유일한 단짝으로 사귀어온 홍미진에게 “나는 늘 이 세상에 하나뿐인 여자 김진희”라고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그 대가가 아무리 가혹하고 힘들어도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한 여자로서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게 그의 소박한 꿈이었다.

 

그런 꿈을 꾸던 그에게 한 남자가 나타났고 운명 같은 사랑에 빠졌다. 동거하며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남자친구에 대한 집착과 의심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혹여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불안해했고 남자친구를 추궁하며 힘들게 했다. 남자친구는 점차 불만이 쌓여갔고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외박을 하는 날도 잦아졌다. 그럴수록 ‘협박’과 ‘자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남자친구를 붙잡으려고 했다. 그 수위가 날로 높아져갔고, 결국 견딜 수 없었던 남자친구는 어느 날 조용히 짐을 싸서 떠나버렸다. 더 이상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그는 가족 다음으로 가장 소중했던 남자친구로부터 아픈 상실을 경험했다. 남자친구가 떠난 이틀 후 그는 조용히 집에서 목을 맸다

 

2015년 5월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함께하는 시민·사회·정당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멈출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동성애 학생 괴롭힘 당해도 적절한 대응 없어

 

‘인간은 처음에 남자·여자·자웅동체 등 세 종류의 성을 가지고 있었다. 제우스는 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자웅동체 인간을 나눠버렸다. 이에 인간은 자신의 반쪽을 간절히 갈망하게 됐다. 자웅동체에서 갈라져 나온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남자에게 자연스럽게 끌리게 됐다. 하지만 원래 여자에게서 갈라져 나온 여자는 여자에게, 원래 남자에게서 갈라져 나온 남자는 남자에게 끌리게 됐다.’(플라톤 <향연> 중)

 

고대·중세뿐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도 <향연>의 이야기처럼 레즈비언(Lesbian)·게이(Gay)·바이섹슈얼(Bisexual)·트랜스젠더(Transgender) 등 성적 소수자들이 있다. 이들은 분명 존재하고 있는 인물이지만 그 누구도, 심지어 가족조차도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특히 김진희의 경우처럼 청소년기의 LGBT 자살과 자해 문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현재 동성애자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가늠하기는 힘들지만 많은 사람이 자해를 시도하고 결국은 자살로 이어진다. 청소년의 경우 또래의 차별과 괴롭힘이 자살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다. 중·고등학교 과정에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이 전무한 현실에서 동기생, 심지어 친형제자매의 의식 중에도 동성애자를 막연히 ‘더러운 정신이상자’로 치부하는 경향이 뿌리 박혀 있다.

 

성소수자가 주로 피해를 당하는 방식은 모욕적인 말을 듣거나 따돌림, 성희롱, 그리고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동성애자는 교제하던 사람과 이별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가 잦다. 이런 생애 경험은 곧 스트레스, 우울증, 이별, 무기력감 등으로 이어진다. 더 큰 문제는 동성애자 학생이 괴롭힘을 당할 경우 적절히 대처해야 하는데 교사나 부모조차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는 게 다반사라는 점이다. 청소년들에게 학교와 교사, 심지어 부모조차도 보호망이 돼주지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든든한 버팀목이 돼줘야 할 부모가 정신적인 학대를 서슴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결국 안타깝게도 그들의 선택은 가출과 자퇴, 자학 그리고 죽음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도 성소수자 청소년들의 삶에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 냉대, 조롱, 편견에 여전히 시달리지만 부모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이해를 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자식의 성 정체성 문제로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부모들 역시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본다. 자식이 부모에게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이야기할 때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주는 부모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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