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격차’, 인공지능 시대엔 더 벌어진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03.24 21:02
  • 호수 1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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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가져올 초(超)격차 사회에 대비해야”… 학자들이 말하는 미래, 그리고 그에 대한 준비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한때 화제였다. 방대한 데이터로 가득해 일반 독자들이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는 이 책의 인기 이유는 분명했다. 자본 축적에 의해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몸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공지능(AI) 세상이 도래하게 되면 과연 우리 사회에 어떤 일들이 생길까를 논할 때, 기술 발전이 경제·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속도에 대한 전망은 가지각색이다. 그리고 나름의 예상에 따라 학자들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그림을 그려왔다. 피케티의 이야기를 앞에 꺼낸 건 유독 향후 인공지능 세상이 가져올 ‘격차’에 대한 지적이 많아서다.

 

ⓒ 일러스트 김원만 ⓒ 시사저널 포토

 


중간이 사라지는 자본의 ‘초격차 사회’ 도래

 

타일러 코언(Tyler Cowen) 미국 조지메이슨 대학 교수(경제학)가 대표적이다. 그는 라는 책을 통해 중간이 사라지고 격차가 더욱 넓어지는 사회, 즉 ‘초(超)격차 사회’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변화의 바닥에 있는 것 중 하나가 기술 혁신으로 발달하는 기계, 그리고 그에 얹어진 인공지능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계는 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 그리고 뛰어난 하드웨어와 외부 저장장치, 그걸 엮는 고도로 통합된 시스템, 이들의 조합 등을 말한다.


지능을 가진 기계가 더 이상 지능을 가진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는 미래는 SF영화의 단골 소재지만, 현실에선 사람과 기계가 함께 일하게 될 것이다. 코언 교수는 기계가 지능을 높이고 사람과 함께 활동하고 있는 예를 ‘프리스타일 체스’를 가지고 소개하고 있다. 프리스타일 체스는 사람과 기계가 한 팀으로 경기하는데, 가장 좋은 기계를 가진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라 가장 잘 사용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코언 교수는 “프리스타일 체스는 미래의 세계에서 고소득자가 현명한 기계와 함께 일하기 위한 전략을 아는 단서가 된다”고 설명한다. 인간의 일하는 방식이 바뀌면 기업의 경영도 바뀌고 경제와 사회상도 변한다. 앞으로 사람이 반드시 전문가일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알고 기계의 결정에 몸을 맡기는 겸손과 담력이 필요하다는 게 코언 교수의 설명이다.

 

그가 바라보는 미래 사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게 된다. 인공지능 기계를 살릴 수 있거나 능력을 높일 수 있는 사람, 또는 기계의 방해를 받지 않는 사람과 세계가 한 축이 된다. 하지만 이는 누구나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소수의 풍부한 재능을 가진 사람과 세계만이 여기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축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사람과 세계가 또 다른 한 축을 구성한다. 소득 격차가 확대되고 기술 및 기계와의 교감이 없는 사람은 노동 현장에 뛰어들지 못하며 프리랜서들이 증가하게 되는데, 이 두 축의 격차를 축소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코언 교수는 비관적이다.

 

인공지능은 지적 노동을 기계화한다. 인공지능의 진보는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지며 또다시 인공지능의 성능이 더욱 향상되는 피드백 루프가 발생하게 된다. 이런 인공지능 혁명에 올라타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사이에 일어나는 격차에 대해서 신중하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코언 교수는 주장한다. 경제가 바뀌면 사회 구조나 정치도 바뀌며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 간 힘의 균형에 급격한 변화가 생기면 세계적인 안전보장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다.

 

‘격차’에 대한 큰 틀의 문제제기는 디테일을 가져왔다. 인공지능 사회가 만드는 격차, 그리고 그것을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에 대해서 학자들이 대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앨런 윈필드 영국 브리스콜 대학 교수(전자공학)는 세금제도의 변화를 말하고 있다. 그는 급격한 노동환경 변화,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기는 실업의 공백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자동화세(Automation Tax)’를 제안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을 사용해 인건비를 절감하는 기업으로부터 일정액의 세금을 거둬 직업을 잃은 노동자들을 위해 사용하자는 게 자동화세의 요지다. 이른바 ‘인공지능세’인 셈이다.

 

AI의 악영향, 정부 차원의 준비 시작해야


인공지능이 유행하는 시대의 교육은 어찌 보면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 될지도 모른다. 톰 미첼 카네기멜론 대학 교수(기계공학)는 “이제는 취직이나 전직, 그리고 교육이라는 것은 각기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묶음으로 생각해가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그 회사에 채용시키기 위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클래스도 함께 제공하는 식이다. 취직과 전직(轉職), 그리고 교육이 서로 지금보다 더 많이 겹치고 혼합돼야 한다는 게 미첼 교수의 얘기다. 미리 바뀔 패러다임에 따라 교육의 형태도 선제적으로 변화를 준비할 필요가 있는 법. 그는 “대학처럼 4년간 제대로 다녀야 하는 형태의 교육뿐만 아니라, 이미 온라인 교육기업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처럼 지금 필요한 기술만을 가르치는 교육의 형태도 다가올 미래에 늘어날 것이다. 특정 스킬을 빨리 익힐 수 있는 ‘저스트 인 타임 교육’이 도래할 것이고, 그에 따른 준비가 필요하다”고 전망한다.

 

새로운 개체가 등장하면 그에 따른 법제도 정비가 필수적이다. 현행 법률과 이론만으로는 이들을 모두 담아내지 못한다.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법률 체계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새로운 기술에 따른 긴장 관계를 미리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인데, 라이언 칼로 미국 워싱턴 대학 로스쿨 교수가 대표적인 경우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로봇이 데이터의 혼란으로 사람을 다치게 했다고 치자. 있음 직한 일이다. 이럴 때는 어디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칼로 교수는 “코드가 어떻게 사람을 제어하는가에 대해 고려하기보다 사람이 코드를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단 상해(傷害) 문제처럼 예상 가능한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인공지능에 사람과의 친밀함 코드를 입력하는 것에 반대할 이는 아마도 없다. 그런데 만약 ‘증오’의 감정을 코딩한다면? 슬퍼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마이너스 감성을 입력한다면? 그로 인해 스스로를 해하는 로봇이 나온다면? 사회에 악영향이 예상되는 이런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규제해야 하는지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칼로 교수는 정부 차원의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며 이미 미국 정부에 연방 로봇위원회 설립을 요구해놓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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