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자신의 프로필을 ‘여장’ 사진으로 교체한 까닭은?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6.03.24 21:20
  • 호수 1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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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DS를 발칵 뒤집어놓은 30대 남성 직원 P씨의 눈물의 퇴사 사연 직장 내 성소수자 실태 추적

지난해 12월 중순, 삼성SDS가 발칵 뒤집혔다. 30대 남성 직원 P씨가 자신의 사원 정보 프로필을 여장(女裝) 사진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P씨의 사진은 카카오톡 등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 P씨가 여장 사진을 올린 배경을 놓고 회사 안팎에서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당사자인 P씨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12월말 조용히 회사를 떠났다. 현재는 외부와 연락을 끊고 잠적한 상태여서 사건 역시 조용히 묻혔다.

 

삼성SDS 측은 “P씨가 프로필 사진을 바꾼 이유를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성전환 수술을 받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의사와 일정을 조율한 것으로 안다”면서도 “회사에 병가를 냈다거나, 상담 신청을 한 적이 없어 우리도 이유를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사 안팎에서는 다른 얘기가 나오고 있다. P씨가 성전환 수술을 받기 위해 병가 신청서를 냈다가 거부당하자 항의 차원에서 프로필 사진을 바꿨다는 것이다. 삼성SDS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P씨가 삼성SDS 측에 병가를 내려다 관련 근거를 제출하지 못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SDS 한 직원이 지난해 말 사원 정보 프로필을 여장 사진(작은 사진)으로 바꿔 배경이 주목된다. 사진은 성소수자들의 최대 축제인 퀴어문화축제 거리 퍼레이드 모습. ⓒ 뉴스1

 


삼성 계열사, 성소수자 문제로 잇단 구설

 

P씨가 갑자기 회사를 그만둔 배경도 석연치 않다. 삼성SDS 측은 “P씨가 12월31일까지 퇴사하겠다고 회사에 밝혔다”고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퇴사 압박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P씨는 퇴사 직전이던 12월말 자신의 사원 정보 프로필에 짧은 글을 올렸다. ‘12월31일 퇴사한다. 응원 전화나 문자 감사하지만 받을 수는 없다. 삼성에 들어오려고 SSAT(삼성직무적성검사)만 5번 쳤는데 이제 나가려니 눈물만 난다’는 내용이었다. P씨가 남긴 글을 감안할 때 퇴사 압박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법조계에서는 만약 P씨의 병가 신청서가 반려됐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공익인권변호사 모임인 ‘희망을만드는법’의 류민희 변호사는 “비(非)트랜스젠더의 성전환 수술은 ‘젠더 위화감’이라는 진단명을 가진 의료적 조치”라며 “P씨가 수술을 위해 병가 신청서를 냈다가 거절당했다면 근로기준법이나 국가인권위원회법상 차별 금지 위반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사실 성소수자 문제로 삼성이 입방아에 오른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2013년 자사의 모바일 앱스토어인 ‘삼성 앱스(현 갤럭시 앱스)’에서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 관련 앱을 차단해 논란을 빚었다. 호넷(Hornet)이라는 게이 데이팅 앱을 삼성 앱스에 실리도록 한 신청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당시 호넷의 개발사는 강하게 반발했다. 호넷이 왜 삼성 앱스에 실릴 수 없는지를 삼성전자에 공식적으로 물었다. 외신에 따르면 삼성전자 측은 “지역의 법과 관습에 따라 허가할 수 없었다”고 답했다. 삼성 측 대변인 켈리 여(Kelly Yeo)는 “삼성이 LGBT 콘텐츠를 국가별로 제한하지는 않는다. 현재 지역의 법과 관습에 따라 제한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양측의 설전은 외신을 통해 고스란히 중계됐다.

 

주목되는 사실은, 막상 삼성전자가 매년 발표하는 ‘행동규범 가이드라인’에서 성소수자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은 2005년 임직원 행동규범을 제정했다. 이후 지속 가능 경영을 실현하기 위해 행동규범 가이드라인을 지속 가능 경영 보고서에도 게재하고 있다. 시사저널이 확인한 삼성전자 ‘비즈니스 행동규범 가이드라인 2015’의 초반부에 ‘다양성 존중’ 코너가 있다. ‘다양한 인재를 확보·유지할 수 있는 근무환경 조성을 위해 모든 임직원에게 동등한 기회를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대상에는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성적 발현’자도 포함돼 있었다.

 

한 고객이 최근 출시된 갤럭시S7을 구경하고 있다.

 


구글·애플 등 글로벌 기업은 성소수자 지지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 측은 “갤럭시 앱스의 판매는 전적으로 해당 국가의 법률과 정책에 따라 달라진다. 삼성의 인사 정책과는 별개”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해당 국가의 법률상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는 곳에서만 앱 판매가 제한된다”며 “LGBT 관련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이외 국가에 대해서는 현재 적정 연령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애플은 현재 LGBT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자사 앱스토어에 성소수자를 위한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놓았을 정도다.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인 팀 쿡은 2014년 10월 미국 비즈니스위크지에 자신이 게이임을 당당히 공개했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 게이 축제에 팀 쿡을 포함한 애플 임직원이 참석하기도 했다. 사회적 소수가 갖고 있는 독특한 창의성을 경영에 활용하기 위한 조치였다.

 

IBM이나 P&G,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조직 구성의 다양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최고다양성책임자(Chief Diversity Officer·CDO)라는 직책도 운영하고 있다. 유명한 일화도 있다. 얼마 전 퇴직한 린 콘웨이(Lynn Conway) 미시간 대학 교수는 미국 최고의 여성 컴퓨터공학자로 꼽힌다. 그는 1960년대 말까지 IBM에 근무했었다. 오늘날 컴퓨터 혁명의 기초가 된 슈퍼컴퓨터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는 1968년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후 IBM에서 해고됐다.

 

그는 1973년 제록스의 팰로앨토연구센터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그는 VLSI(대규모 직접회로) 칩의 핵심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컴퓨터공학도의 필수 교과서라 불리는 도 콘웨이 교수가 저술했다. IBM은 큰 교훈을 얻었다. 회사의 명운을 바꿀 인재를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만으로 내보냈기 때문이다. 김현경 SOGI법정책연구회 연구원은 “이후 IBM은 성소수자 직원을 포용하고 다양성을 중시하는 모범적인 기업으로 변했다”며 “신입사원 채용 서류 전형에서 성소수자에게 가점을 부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웃나라인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가전기업인 파나소닉은 최근 사원의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사내 규정을 새로 만들기로 했다. 경조사나 휴가 등 복리후생 대상에 동성결혼 직원을 포함시키는 것을 검토 중이다. 일본 패션기업 레나운은 지자체에 증명서를 제출한 사원에 대해 결혼 휴가를 인정해주고 있다.

 

팀 쿡 애플 CEO는 2014년 게이임을 밝혀 주목을 받았다. ⓒ AP 연합

 


다양성 인정하지만, 성소수자는 안 된다?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도 최근 다양성이 경영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장애인과 외국인, 여성 등 ‘마이너리티 직원’들이 차별받지 않고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경영 방향을 급선회했다. 삼성전자는 2011년 ‘다이버시티 매니지먼트(diversity management)’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다양성 관리를 책임질 최고책임자인 CDO 신설도 검토 중이다. 적자에 허덕이던 쌍용차가 최근 흑자 반전에 성공한 배경에도 다양성을 존중하는 인도식 경영이 꼽히고 있다. 인도 마힌드라 그룹은 쌍용차를 인수하면서 억지로 인도식 문화를 강요하지 않았다. 핵심 경영진을 한국인으로 배치했고, 이들의 결정을 존중했다. 이런 마힌드라식 경영이 쌍용차 회생 과정에서 빛을 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성소수자는 예외였다. 조직에 위화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LGBT들은 구직뿐 아니라 업무 배치나 평가, 승진 등에서 여전히 차별을 당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4년 12월 발표한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44.4%가 성정체성을 이유로 한 가지 이상 차별을 당했다.<73쪽 상자 기사 참조> 이나라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활동가는 “미국의 한 성소수자 인권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2014년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 가운데 169개 기업이 트랜스젠더 직원에게 성전환 수술 등의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 역시 혁신이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성을 인정하고 성소수자를 포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직장인 10명 중 4명꼴, 성소수자란 이유로 차별당해 


성소수자들이 직장에서 받는 차별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국가인권위원회가 2014년 12월 발표한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 보고서에 그 실태가 구체적으로 언급돼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 응답자 518명 중 232명(44.4%)이 성정체성을 이유로 직장에서 한 가지 이상의 차별과 괴롭힘을 당했다고 토로한다.

 

종류도 다양했다. 성정체성을 이유로 업무 배치나 임금, 승진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30대 여성 간호사 A씨는 “외모가 여성스럽지 못하다고 외래 파트에 발령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40대 전문직 남성 B씨는 “커밍아웃 이후 우수 직원에서 제외됐다”고 답했다. 일부는 노골적인 성희롱이나 성추행까지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류업에 종사하는 30대 여성 C씨는 “‘레즈비언이 뭘 알겠느냐’는 식의 성희롱 발언을 상사에게 자주 듣는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30세 여성 D씨는 “파트타이머로 일하던 직장에서 아우팅(타인의 성적 취향을 강제로 공개함)을 당했다”며 “사장이 ‘잘리기 싫으면 나랑 잠자리를 가져야 한다’고 종용했다”고 말했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해고나 권고사직을 당한 경우도 많았다. 전체 응답자의 14.1%가 한 번 이상 권고사직 압박을 당했다고 답했다. 현직 교사 E씨는 “가르치는 학생의 신고로 학교에서 권고사직을 당했다. 아무런 조사 없이 일방적으로 권고사직 절차가 진행됐다”고 말했다. 20대 사무직 여성 F씨는 “사장이 PC 정보를 몰래 빼내 보는 등 감시를 당했다”고 말했다. 성소수자들은 직장에 취업할 때도 어려움이 많았다. 응답자의 27.8%가 외모나 복장, 말투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면접에서 안 좋은 평가를 받았다. 40대 남성 F씨는 “면접에서 독신의 이유를 밝히라고 종용하기에 커밍아웃을 했다. 그리고 채용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장서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성소수자들은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자연스럽게 직장 만족도와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며 “국가인권위나 고용노동부 등 관련 정부 부처가 연계해 지원 및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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