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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적이고 특별한 인형들의 ‘19 금’

인형 캐릭터를 사용한 사상 초유의 섹스 묘사 본격 중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아노말리사>

허남웅 | 영화 평론가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24(Thu) 21:35:09 | 13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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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의 섹스 묘사다. 캐릭터 인형들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섹스를 나눈다. 앗! 필자가 너무 흥분했다. 제목이 뭔지, 어떤 영화인지 소개도 못했다. 제목은 <아노말리사>다. <이터널 선샤인>(2004), <어댑테이션>(2003), <존 말코비치 되기>(1999) 등을 연출한 찰리 카우프먼이 처음으로 손을 댄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이지만, 신나는 구석은 없다. 예(例)의 찰리 카우프먼 작품이 그렇듯이 고독한 현대인의 피로감이 스크린 곳곳에 성에처럼 차 있다.

 

개성 없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인형들


<아노말리사>는 찰리 카우프먼이 ‘프란시스 프레골리’란 필명으로 시나리오를 쓴 연극에서 시작됐다. 이 연극은 라디오 플레이라는 설정으로 시작해 목소리로만 진행되는 독특한 방식을 취한 것으로 유명하다. 스태프와 출연진의 면모가 엄청나다. 이 연극의 연출은 곧 개봉을 앞둔 <헤일, 시저!>(국내 개봉 3월24일)의 코언 형제가 맡았고, <헤이트풀 8>의 제니퍼 제이슨 리와 <해리 포터> 시리즈의 데이빗 듈리스, 톰 누난 등 3명이 목소리 출연을 했다.

 

가만, 출연자가 단 3명이라고? 그렇다. 연극에서처럼 영화에서도 목소리는 이들 단 3명뿐이다. 하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은 수십 명이 넘는다. 마이클 스톤과 리사의 목소리로 각각 출연한 데이빗 듈리스와 제니퍼 제이슨 리를 제외하면 톰 누난이 모든 사람의 목소리를 맡았다. 이는 연극 공연 당시 예산상의 문제로 한 명의 배우가 여럿을 연기한 것에서 기인하지만, 찰리 카우프먼은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두 같게 들린다는 설정이 독특해 이를 그대로 영화 <아노말리사>에 사용했다.

 

애니메이션 <아노말리사>는 권태에 찌든 중년 남성 마이클 스톤의 심리를 그려나간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찰리 카우프먼이 <아노말리사>를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연출한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아무리 창작자의 섬세한 터치가 가미되어도 실제 인간의 미묘한 표정을 묘사하기에 한계가 있다. 찰리 카우프먼은 바로 이 점에 착안했다. 극 중 스톤의 인물 설정을, 자신이 만나는 여러 사람이 사실은 변장한 동일인이라고 생각하는 ‘프레골리 망상(Fregoli Delusion)’에 걸린 것으로 했다.

 

현대인들의 처지가 그렇다. 사회라는 시스템의 한낱 부속품으로 전락해 개성을, 감정을, 정체성을 거세당한 것이 꼭 꼭두각시 인형 같다. 기발한 상상력에 자아를 결합한 철학적인 주제를 접목해 천재 작가로 평가받는 찰리 카우프먼 자신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앞서 밝혔듯 연극 작업 당시 필명이 프란시스 프레골리였는데, 바로 프레골리 망상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러니까, 극 중 작가로 등장하는 마이클 스톤은 찰리 카우프먼이 영화에 투영한 자신의 자아인 셈이다. 그리하여 스톤의 눈에 비친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같은 얼굴에, 목소리마저도 똑같다. 단 한 명, 고객 서비스에 대한 연설을 듣겠다고 일부러 휴가를 내고 찾아온 리사만이 마이클 스톤에게는 유일하게 개성적인 존재로 부각된다.

 

그녀의 개성은 흘러내린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있는 얼굴 위의 흉터다. 그 흉터에서 스톤은 리사의 내면의 상처를 나름으로 짐작하는데, 같은 얼굴과 목소리와 생활방식에 노출된 이들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띄는 개성이라 할 만하다. 그렇게 스톤은 리사(의 흉터)를 인식하면서 흥분하기 시작한다. 자포자기의 권태로운 삶으로부터 탈출할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의 실현은 다름 아닌 섹스다. 스톤과 리사, 이 두 인형이 스톱모션으로 나누는 비(非)인간적인 형태이되 ‘아랫도리’가 먼저 반응할 만큼 인간적으로 흥분시킨다. 개성 없는 인간보다 사연을 가진 인형이 더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것. 사실 이는 인간이냐 아니냐의 여부가 아니라 감정의 유무 문제다. 그래서 인형의 섹스일지라도 그들의 행위에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찰리 카우프먼은 <아노말리사>의 제작 단계부터, 이들이 애니메이션 캐릭터이되 관객들이 감정적으로는 실제처럼 느끼게끔 설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목표는 관객들이 영화를 보았을 때 단순한 인형을 넘어 작지만, 감정적으로는 실제 사람처럼 보이기를 바랐다. 각 캐릭터에게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인데, 디자이너들은 스톤과 리사를 포함한 모든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어줬다.”

 

그중 스톤과 리사의 섹스 장면은 그 무엇보다 어려운 도전이었다. 서로의 옷을 벗겨주는 과정, 그럼으로써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맨살, 발가벗은 인형이 서로 접촉해 ‘피스톤 운동’을 벌이기까지, 이 모든 장면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작업하기에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예컨대, 스톤과 리사 두 애니메이션 인형 캐릭터가 서로 발가벗은 몸을 밀착하는 순간부터 자세와 체위에 맞춰 디자이너들은 꼼꼼하게 손을 봐야 했고, 좀처럼 끝나지 않는 이 둘의 섹스 시간이 길어질수록 작업량도 그에 비례해 늘어났다.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섹스 필요했던 이유


실제적인 묘사에 더해 찰리 카우프먼은 스톤과 리사의 섹스를 보게 될 관객들이 황홀경에 빠졌으면 하는 마음도 잊지 않았다. 두 캐릭터가 호텔 방문을 열고 함께 들어오는 순간부터 섹스를 나누기까지 하나로 이어지는 감정이자 행위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애니메이션으로는 파격적이지만, 섹스 장면이 지나치게 튈 경우 감정선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게다가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섹스 장면을 연출하게 되면 자칫 우습게 보일 수 있다는 점도 심각한 고려 사항이었다. 대사를 줄이고 숨소리로 긴장감을 조성하며 모든 움직임을 세밀하게 가져가는 것이 중요했다.

 

인형들의 섹스에 이렇듯 반응하다니, 필자가 너무 변태스러운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변태적인 성향도 그 사람의 고유한 개성이 될 수 있다. 스톤이 리사의 흉터에 뽀뽀하는 것은 변태 같아 보여도 그녀의 상처를 보듬어주겠다는 의미가 반영된 태도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건 바로 그와 같은 이해와 배려다. ‘아노말리(Anomaly)’는 변칙 혹은 예외라는 의미가 있다. 찰리 카우프먼은 여기에 여주인공 리사의 이름을 합쳐 제목을 ‘아노말리사’라고 정했다. 예외를 인정하는 사회는 그래서 중요한 법이다. <아노말리사>는, 극 중 스톤과 리사의 섹스는 쉽게 보기 힘든 애니메이션이자 장면이라는 점에서 예외적이고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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