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의 기억 심리부검] 내연녀 시신으로 발견되자 가짜 ‘결백 유서’ 쓰고 자살
  • 서종한 | 프로파일러(사이몬프레이저대학 정신건강법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31 18:32
  • 호수 1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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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용의자로 지목돼 수사받던 내연남, 심리적 압박감 못 이겨 극단적 선택

2007년 여름, 강원도 원주에서 40대 중반의 평범한 가정주부 김현희씨가 주거지 부근의 야산에서 암매장된 채 발견됐다. 고사리가 한창이던 때라 그곳에서 고사리를 따던 할머니가 밖으로 노출된 손을 보고 112에 신고했다. 발견 장소는 왕복 2차로 국도에서 우거진 가시덤불을 헤집고 10분 정도 들어가야 나오는 음침한 곳이었다. 대낮인데도 어두워서 시야가 좋지 않았다. 주변 여기저기에 소주병과 담배꽁초가 널려 있었고 시신은 얕게 판 고랑에 흙과 나무 그리고 돌로 덮여 있었다. 전날 비가 내리면서 그중 일부분이 노출된 것이다.

 

신원 확인은 시신의 옷과 신발, 주머니에서 발견된 소지품을 통해 이뤄졌다. 한참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했고 근래 봄비가 자주 온 상태여서 부패가 심했다. 그렇다 보니 부검을 통해 사인을 밝힐 수 없을 정도로 백골화가 진행됐다. 시신 발견 소식을 들은 남편이 찾아와 직접 신원을 확인해줬다.

 

ⓒ 일러스트 임성구

결혼한 지 15년이 되는 망자(亡者)는 2년 전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우연히 옛날 짝사랑했던 동창생 김진수씨를 만나 점차 내연관계로까지 발전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을 둔 그녀는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고 생각해 관계를 정리하고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내연남은 그녀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가 만나주지 않자 밤낮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끈질기게 스토킹을 했고, 그녀의 직장에 찾아와 기다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협박과 회유가 3개월간 지속되자 망자는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지쳐갔다.

 

그만 만나자던 내연녀 끈질기게 스토킹


남편이 야근으로 늦게 들어오는 날 내연남은 그녀의 집 근처에 와서 만나줄 것을 요구했다. 만나주지 않으면 집으로 찾아가 남편에게 모든 것을 말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다짐하며 두 아이를 일찍 재운 후 집 앞 호프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에게로 갔다. 그렇게 나간 그녀는 그날 밤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저녁 늦게 귀가한 남편이 부인과의 연락이 두절되자 실종 신고를 했고, 경찰은 타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신속하게 수사에 들어갔다. 아파트 인근 편의점 폐쇄회로 화면에서 그녀와 함께 내연남이 술과 물을 사는 장면이 포착됐다. 이후 함께 차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다.

 

내연남은 주거지에서 긴급 체포돼 수사를 받았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영장이 기각돼 곧 풀려났다. 하지만 그는 수사의 중압감과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차를 타고 가다 고의로 다리 펜스를 들이받았지만 난간에 차가 걸려 떨어지지 않았고, 가벼운 상처만 입은 채 병원에 후송됐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그는 형사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병원 지하 보일러실 배관에 목을 매고 자살했다. 그가 남긴 유서는 다음과 같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데 자꾸 나한테만 추궁한다. 견디질 못했다. 이걸 선택한 것에 대해 참 죄송하고 착잡하다. 내가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훗날 모든 걸 알게 되면 결백한 걸 알게 되면, 미안해 여보. 죄송합니다. 어머니.” 달력 종이를 찢어 빨간색 볼펜으로 쓴 유서는 몹시도 급하게 준비한 것으로 보였다. 생각을 미리 정리하지 못한 듯 두 줄을 긋고 다시 쓴 부분이 많았다.

 

진실한 결백 유서와 가짜 결백 유서 차이


필자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돼 수사를 받던 중 심리적인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사람들이 스스로 결백하다는 유서를 남긴 15개의 사례를 모아 비교해봤다. 이들의 유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글의 양이 매우 적고 내용이 논점 없이 장황하며 끊어지거나 생략 혹은 축약되는 문장이 자주 나타났다. 둘째, 억울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자가 흔히 경험하는 화와 분노 감정이 많은 부분 희석돼 있었고 오히려 불안, 초조,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과 관련된 내용이 주로 표현돼 있었다. 마지막으로 결백을 주장하는 적극성과 강렬함에 비해 유서는 짧고 즉흥성이 두드러졌다.

 

그다음 과학적 범죄분석시스템(SCAS)에 입력돼 있던 진짜 결백한 사람의 유서를 10개가량 추려 비교했다. 진실한 결백 유서와 가짜 결백 유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단연코 분량이었다. 진실한 결백 유서들은 억울함에서 나타날 수 있는 정서적 과정과 관련된 다양한 단어를 많이 포함하고 있었고, 억울한 부분에 대해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도 함께 남겨놓았다. 그리고 상대방이 잘 알아보고 이해가 될 수 있도록 글을 정자로 썼고, 2건의 경우는 일반적인 유서로서는 드문 경우지만 워드로 작성해 가독성을 높였다.

 

결론적으로 심리부검 보고서를 통해 필자는 가해자 김진수씨가 자신의 명예회복 차원에서 거짓으로 유서를 쓰고 자살했거나 남겨진 가족에게 결백을 과시적으로 보여주거나 변명하는 차원에서 ‘거짓 유서’를 썼을 가능성을 수사진에게 제기했다.

 

다른 종류의 범죄 사건들과 비교해보면, 유력한 용의자로 수사를 받다가 자살한 사람들의 경우,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치정 관계의 갈등에서 비롯된 사례가 많았다. 즉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배신, 그리고 집요한 집착에서 오는 충동 내지는 우발적인 범행이다. 피해자가 자신을 배신하지 말았어야 한다며 오히려 피해자 탓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범행 책임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며 합리화하는 경향이 강하고, 오히려 억울함을 호소하다 종종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치정 살인 후 자살’ 자체가 경계선적 성격 특성과도 상당 부분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치정 관계의 상대방이 사망했으므로 자신만이 지탄의 대상이 되고 과도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다가 상황을 모면하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살을 택한다. 표면적으로는 가정에 충실하고 직장에서 동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던 이들이다. ‘치정 살인 후 자살’은 내연관계의 폭로로 주변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주고 자신의 명예도 실추된 것을 견디지 못해 발생한다. 우발적으로 피해자를 죽였다는 죄책감과 중압감도 큰 요인일 것은 물론이다. 이런 설명은 유서와 가짜 결백 유서 간의 차이점을 해명하는 데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내연녀를 살해한 A씨가 2013년 8월3일 현장검증에서 시신 유기 범행을 재연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가장 미심쩍은 유서’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심리학과 조이너 교수는 그의 책에서 ‘가장 미심쩍은 유서’라는 것을 언급했다. 한 남자가 자살에는 고통이 없다는 일종의 유서를 남기고 자취를 감춘다. 조이너 교수는 이것을 그가 본 유서 중에 가장 의심스러운 유서라고 표현했다. 그 이유로 그 남자의 차가 발견된 날, 사기죄를 선고받고 교도소에 출두했어야 했다는 점. 그리고 정말 자살하려는 사람은 자살의 위압적이며 두려운 면모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자살에는 고통이 없다는 식의 가볍고 경박한 말을 남길 리가 없다는 점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진짜 유서에는 추상적인 개념이 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간혹 추상적인 개념어가 등장하더라도 다른 일상적인 내용에 의해 밀려버리기 일쑤다.

 

이번 사례는 유부남과 유부녀가 만나 내연관계로 발전했고, 그 후 내연남은 헤어지자던 내연녀를 놓아주지 않고 스토킹과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반복적인 협박과 회유가 이어졌고, 결국에는 살인과 자살로 그 관계는 끝을 맺었다. 심리부검은 범죄의 흐름 내지는 진화 방식을 좀 더 연속적으로 설득력 있게 전달해준다. 희생자와 가해자가 보인 의도와 행동에 따라 범죄가 어떻게 전개됐는지를 내러티브(narrative) 방식, 즉 이야기하듯 재구성해 들려준다. 그리고 언어적 심리부검은 그들이 남긴 메시지가 작위적인지 아니면 진정성이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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