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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티 커피가 일으킨 제3의 물결

커피의 품질·가격·취향을 찾기까지 100여 년 한국 커피 문화의 과거와 현재

서필훈 | 큐그레이더(국제커피감별사) 커피리브레 대& ㅣ . | 승인 2016.04.07(Thu) 19: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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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 주기가 유난히 빠르고 변덕스러운 한국 사회에서 지금의 커피 열풍은 단순한 유행이라고 부르기엔 꽤나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보인다. 생각해보면 꽤 오래전부터 커피는 한국 사회에서 그리 낯선 음료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예전부터 시골 할아버지·할머니도 식사를 마치면 숭늉이나 보리차가 아니라 인스턴트커피를 타서 마셨다.

하기야 한국에 커피가 전해진 것은 벌써 100년이 넘는 일이다. 당시 고종 이하 궁궐 대신들이 커피를 즐기기 시작하자 그 유행이 양반과 서민들의 생활 속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는 기록이 있다. 일제 강점기에도 지식인과 예술가들은 원두커피를 마시면서 시대를 한탄하며 예술을 논했고, 그들이 모였던 아지트는 언제나 그 시절을 풍미하던 다방이었다. 조선말과 일제 식민지 시절의 많은 기록은 당시 사람들이 커피를 근대화, 그리고 서양 문물의 상징으로 소비하고 열망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즈음 커피는 모던보이·모던걸의 라이프스타일이었던 셈이다.

인스턴트커피 문화에서 원두커피 문화로 국내 커피 시장이 다양해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연남동 한 커피 매장에서 원두커피를 제조하는 모습. ⓒ 시사저널 박은숙

이후 커피 문화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을 통해 들어와 시장에 퍼졌던 인스턴트커피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미군에 의해 대량 유통된 인스턴트커피는 빠르게 일반 대중에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박정희 정권은 외화 유출을 막기 위해 원두커피 수입을 극도로 제한했고, 동서식품에 여러 특혜를 줘 인스턴트커피의 국내 판매 및 수출을 독려했다. 덕분에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인스턴트커피는 일반 대중의 삶 깊숙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물론 싼 가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인스턴트커피에 포함된 다량의 설탕이 만들어낸 단맛이 결정적이었다. 지금이야 설탕이 싸고 흔하다 못해 건강의 적으로까지 여겨지지만, 한국전쟁 이후에도 상당 기간 설탕은 아주 귀한 음식 재료였다. 전통적인 한국 음식문화에서 설탕만큼 강렬하고 노골적으로 단맛을 만들어내는 음식 재료는 드물기도 했거니와, 그처럼 농밀한 단맛은 무엇보다 긴 시간과 공정에 의해 만들어진 진귀한 맛이었다.

커피 문화의 시작은 ‘설탕물’

변변한 차(茶)가 없었던 한국은 설탕이 만들어내는 강한 단맛을 가진 인스턴트커피에 쉽게 자리를 내줬다. 따라서 이 시기 커피 문화를 정말 커피 그 자체에 열광해 나타난 것이라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많은 것이 부족하고 피폐했던 당시 한국 상황에는 무엇보다 설탕물이 절실했던 것이다. 이 시기를 포함해 그 후로도 오랫동안 “커피 한잔 할래”의 진정한 의미는 커피 그 자체가 아닌 사교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커피 문화 쇼크 및 국내 커피 시장의 변화는 1999년 스타벅스의 도래와 함께 시작됐다. 입점 초기 스타벅스 커피는 뉴요커의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이미지로 소비되는 측면이 강했고, 밥값보다 비싼 커피를 사 먹는다는 과소비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860개 매장을 전국에 운영하는 현재 아늑한 분위기나 안정적인 품질, 훌륭한 마케팅과 고객 서비스로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의 성공한 상품들이 공통으로 가진 브랜드 소비라는 측면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스타벅스의 인기와 더불어 팽창한 원두커피 시장은 이전까지의 커피 문화와는 다르게 커피 자체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비로소 사람들은 커피의 중요한 가치를 카페인에 의한 생리학적 각성효과나 선진 사회의 신문물, 만남을 위한 매개체보다는 품질·가격·취향에 두기 시작했다. 커피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커피가 비로소 대접받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런 추세는 스페셜티 커피가 최근 국내에 소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진척되고 있다. 스페셜티 커피는 미국과 스칸디나비아를 중심으로 시작된 새로운 커피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스페셜티 커피의 모토는 간단하게 “커피 스스로 말하게 하자”라고 할 만하다. 즉 커피 자체가 가진 품질과 개성, 이야기 전개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과 스칸디나비아를 필두로 지금은 유럽·호주·일본에 이어 한국에서까지 시장의 호응을 끌어냈고, 이와 연관된 커피산업 전반의 변화를 가져왔다.

스페셜티 커피, 각각의 개성과 품질 강조

미국에서는 스페셜티 커피 트렌드를 ‘제3의 물결’이라 칭한다. 제1의 물결은 커피를 품질보다는 그저 카페인에 의한 각성제로 소비하던 20세기 중반까지의 대량 생산 시스템에 기반을 둔 커피 소비 패턴을 의미한다. 제2의 물결은 1960년대 말 피츠 커피(Peet’s Coffee·스타벅스 창업자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설립한 브랜드) 등을 필두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커피 품질이 개선되고 에스프레소 관련 음료의 대중화와 발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커피 맛과 품질에 가장 결정적인 커피 생두와 산지에 대한 관심이 적었고, 그나마 대형 커피 가맹점을 통해 천편일률적인 커피를 제공하던 시기다. 이에 비해 제3의 물결은 커피 산지의 특성과 다양한 가공 방식에 따른 맛과 품질의 변화, 커피 산지의 지속 가능성 문제, 커피 농가와 소비국 스페셜티 커피 회사의 긴밀한 관계, 기존과는 다른 가격 기준과 방식의 무역 거래, 각각의 커피가 가진 맛의 특성을 어떻게 로스팅하고 추출해 한 잔의 컵으로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기술적 관심, 이를 뒷받침할 만한 관련 기계들의 개선 작업, 소비자들에게 이런 커피를 어떻게 경험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소통 및 마케팅 방식의 창안 등 커피산업 전반에 문화적 충격과 실질적 변화를 가져온 일련의 흐름을 가리킨다.

커피가 가진 얼굴이라 말할 수 있는 각각의 개성과 품질을 강조하는 지금의 스페셜티 커피 트렌드를 단순한 유행 혹은 시장 변화로 보는 것은 피상적인 접근이다. 최근 식음료와 관련한 전 세계적인 흐름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여러 가지 요소들을 섞지 않은 본연의 것, 재료 그 자체의 특성이 잘 살아 있는 것, 즉 ‘개체성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개성의 크래프트 맥주, 블렌딩하지 않은 싱글 몰트 위스키, 싱글 오리진 초콜릿, 대형 가맹점 식당이 아닌 셰프들의 레스토랑처럼 말이다.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라는 한 TV 요리 방송 프로그램의 모토가 보여주는 것처럼, 자아 정체성과 개체성이 흐릿해지는 현대 사회의 한 측면이 지금의 커피 시장에서 커피 각각의 정체성을 경험할 수 있는 스페셜티 커피 트렌드로 표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것이 바로 커피를 사회와 문화로부터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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