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으로, 대륙으로” 빠져나가는 콘텐츠산업 역군들
  • 정덕현 |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6.04.14 19:05
  • 호수 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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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의 주역 드라마·예능 PD·작가들이 중국으로 몰려가는 까닭

‘쌀집아저씨’ 김영희 PD는 MBC를 떠나 중국에 자리를 잡았다. 현지 투자가와 손잡고 현지법인을 만들었고, <폭풍효자>같이 중국인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현지에서 직접 제작해 후난(湖南)위성TV에서 방영했다. 김 PD의 중국행에는 다른 PD들도 합류했다. <라디오스타>를 만들었던 이병혁 PD, <느낌표>의 이준규 PD, <무한도전>의 김남호 PD, 그리고 중국판 <우리 결혼했어요>를 연출했던 황치훈 PD가 그들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나는 가수다>의 신정수 PD, <아빠 어디 가>의 강궁 PD, <나혼자 산다>의 문경태 PD, 그리고 SBS <짝>을 연출한 남규홍 PD와 SM C&C의 임정규 PD가 ‘김영희 사단’에 합류했다. <폭풍효자> 이후에 또 다른 프로그램을 론칭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중국, 국내 인기 PD·작가 직접 지목

이처럼 방송 인력 가운데 중국행이 두드러지는 쪽은 김영희 사단을 통해 볼 수 있듯이 예능 PD들이다. 중국 현지에 포맷 수출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중국판 <아빠 어디 가> <나는 가수다> <런닝맨> 같은 프로그램들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플라잉 PD로 중국을 넘나들던 예능 PD들이 그 과정에서 가능성을 본 탓이다. <런닝맨>을 연출했던 조효진 PD는 중국판 <런닝맨>을 제작한 인연으로 저장(浙江)위성에서 다른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고, <X맨> <패밀리가 떴다> 같은 초창기 중국 한류 예능부터 최근 <아빠를 부탁해>를 만들었던 장혁재 PD도 최근 SBS에 사표를 내고 중국으로 넘어갔다. 장 PD의 동생인 장태유 PD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연출한 감독으로 유명하다. 이미 장태유 PD는 SBS에 휴직계를 내고 중국으로 넘어가 <상학원합화인(商?院合?人)>이라는 영화를 찍었다.

김영희 PD의 이야기가 워낙 크기 때문에 예능 PD들만이 중국으로 대거 갔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유명한 드라마 PD들 가운데도 중국에서 활동하는 이가 적지 않다. <검사 프린세스>와 <닥터 이방인> 등을 연출한 진혁 PD는 중국으로 넘어가 36부작 중국 드라마인 <남인방-친구>를 연출한 바 있다. 그는 현재 400억원 규모의 한·중 합작 드라마인 <비취연인>을 제작하고 있다.

김은숙 작가와 줄곧 작업해온 신우철 PD도 중국에서 사극을 찍고 있다. 중국의 제작사가 삼화네트워크를 통해 제작을 제안하면서 아예 대놓고 신 PD를 콕 찍었다는 후문이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발군의 기량을 보여온 스타 작가 홍자매(홍정은·홍미란) 역시 본팩토리와 함께 중국에 진출했다. 이처럼 드라마업계의 중국행은 국내의 제작사들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중국과 공동 제작을 하고 있는 국내 제작사들에 직접 중국 측이 PD나 작가를 지목하면서 중국행이 이뤄지는 것이다.

국내에서 인기 드라마를 만들었던 PD들은 중국의 제작사들이 점찍는 1순위 PD들이다. <풀하우스>의 표민수 PD는 최근 중국에서 <풀하우스>의 속편에 해당하는 <낭만성성>을 제작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꽃보다 남자>는 물론이고 중국에서 화제를 모았던 <마이걸>과 <쾌걸춘향>을 연출한 전기상 PD 역시 중국에 진출했다. 제작사들 입장에서도 국내와는 상상할 수 없는 회당 제작비에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예능의 경우 국내에서의 회당 제작비가 7000만원에서 1억원 수준인 반면 중국은 거의 10배에 해당하는 7억~8억원 규모로 만들어진다.

“PD 개인 이익만 추구하는 것” 비판도

드라마와 예능, 나아가 교양까지 그 분야를 불문하고 이처럼 국내 PD들의 중국 러시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지난 3월 독립제작사협회의 안인배 신임 회장이 대놓고 중국행 PD들에 대해 이례적으로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한국의 유능한 PD들이 중국 회사로 가는 건 한국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게 아니라 PD 개인의 이익만 추구하는 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며 “개인의 이익만을 우선적으로 추구하기보다는 더 크게 대한민국 방송문화산업의 발전도 감안해 진로를 잡아야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비판적 시각에 대해 대중은 그다지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국내 콘텐츠 제작 현실이 너무 조악하기 때문이다. 국내의 조악한 제작 현실 속에서 PD와 스태프 같은 제작 인력들은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방송사에 소속된 PD들은 나은 편이지만, 외주제작사 PD들의 현실은 더 힘겨운 실정이다. 방송사와 제작사로부터 쪼이는 상황이고, 이대로 하다가는 소모품으로 전락하기 일쑤라는 위기감도 팽배해 있다. 이것은 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스타 PD들이라고 해서 그리 다르지 않다. 중국 같은 새로운 시장은 이들에게 그나마 트인 숨통이고 희망이 된다.

단지 높은 보수 때문에 국내 PD들이 중국으로 가는 건 아니다. 김영희 PD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글로벌 콘텐츠를 지향하는 중국 시장의 가능성이 PD들에게 더 큰 메리트가 되고 있다. 김 PD는 “제작 규모가 상상력의 규모”일 수 있다고 말한다. 국내의 제작 현실에서는 그 규모 때문에 할 수 있는 것과 불가능한 것이 분명히 정해진다는 얘기다. 적은 예산으로 시도할 수 있는 콘텐츠는 늘 그 안에서 뱅뱅 돌기 마련이다. 하지만 10배 정도 큰 규모가 가능한 중국 시장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내에서 스스로 검열해 한껏 줄여놓았던 상상의 폭을 마음껏 넓혀볼 수 있다.

“결국 중국이나 글로벌 시장은 피할 수 없는 미래”라고 김영희 PD는 말한다. 넘어가는 그들 역시 우리의 문화 유전자를 가진 PD들이다. 그들이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는 것을 꼭 국가적 잣대로 나눠봐야 할 것인가는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중국을 통해 한류의 외연을 넓혀나가는 것. 그것이 향후 지속 가능한 한류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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