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독립성, 법관 개개인이 스스로 지켜야”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6.04.14 19:08
  • 호수 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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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한과 오욕으로 얼룩진 대한민국 사법부의 민낯 공개한 한홍구 교수

지난 3월2일의 테러방지법 국회 통과를 지켜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이번 사안을 두고 삼권분립이 무색해진 민주주의의 붕괴라는 여론의 비판이 들끓었다. 무엇보다 이번 법 제정은 국회가 사법부의 권한을 침해하며 월권을 행사한 것인 데다, 사법부는 제 역할을 포기한 채 국가의 조력자임을 스스로 증명해낸 사건이기도 하다”고 개탄했다.

그는 최근 펴낸 <사법부: 법을 지배한 자들의 역사>를 통해 ‘사법 불신 한국 사회’를 낱낱이 파헤친 터였다. 10명 중 7명은 사법제도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설문 결과가 나오기까지, 이승만 정권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 사법부가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겪은 고통의 순간을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고문과 조작으로 쓰인 조사서를 근거 삼아 무기징역과 사형을 남발하는 동안 무고한 시민들이 세상을 떠났으니, ‘사법 불신’의 씨앗은 사법부 안에 있는 셈이다. 그는 사법부의 70년 역사를 심판대에 올려놓는다.

ⓒ 돌베게 제공

한홍구 교수는 2004년 10월부터 3년간 ‘국정원 과거사위(委)’에서 민간위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그는 국정원 내부 기밀문서들을 직접 읽으며 그동안 풍문으로 오가던 중정과 안기부의 재판 개입 과정을 문서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참혹했고 슬펐다. 자료들을 바탕으로 보고서를 쓰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이를 알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서야 책이 나왔지만, 그동안 의지가 흔들렸던 적은 없었다. 책을 준비하는 동안 일부 사건이 재심으로 무죄를 받는 과정을 지켜봤고, 그럼에도 사법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거듭 절망했다. 직접 법을 위반한 자들을 기록하는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 사업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여전히 ‘법’이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마지막 보루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지 않던가.”

“법정 소란·재판 거부가 일상적으로 일어나”

그는 이승만 정권부터 2000년 이후까지 시대 순으로 역사 현장을 따라가며 각 시기별로 굵직굵직한 현대사의 사건들을 들춘다. 그는 권위주의 정권이 사법부를 간단한 ‘작업’을 통해 자신의 수족으로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한 사건을 들었다.

“1971년 사법파동 당시 계엄령까지 생각했던 박정희 정권은 진짜 계엄령을 선포한 뒤 사법부를 손보았다. 박 정권은 1973년 말 새 헌법에 따라 모든 법관을 새로 임명했다. 법관 재임명이라기보다는 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 껄끄러운 법관들을 걸러내는 작업이었다. 대법원 판사 중 절반이 넘는 9명(사광욱·양회경·방순원·나항윤·손동욱·김치걸·홍남표·유재방·한봉세)이 ‘의원면직’ 형식으로 물러났는데, 1971년 국가배상법 제2조 1항에 대한 위헌판결에서 위헌 의견을 낸 이들이었다.”

피고인 중 일부는 사법부에 야유를 보내기까지 했다. ‘우스운 사법부’로 비친 사건들이 잇따랐다. “1985년부터는 피고인들이 재판을 거부하거나, 피고인과 방청객들이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법관에게 야유를 보내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당시 유태흥이 사법부 수장으로 있던 기간은 한국 사법부의 역사에서 최악의 시간이었다. 사법부는 권력에 완전히 종속되었고, 법정 소란과 재판 거부가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시위 학생들에게 가벼운 판결을 내린 법관에 대한 보복 인사 파문은 급기야 사법 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안 발의로 이어졌다.”

정의로운 법관 이야기에도 많은 지면 할애

물론 사법부 안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었다. 정권을 서슴지 않고 도우며 체제 찬양에 열을 올렸던 대법원장도 있었고, 사법파동에 동참하거나 소수의견을 냈던 판사들을 비롯해 소신껏 피의자들의 입장을 대변했던 변호사도 많았다. 화이트칼라에게 유독 엄격해 석 달 동안 공무원과 지도층 인사를 30여 건이나 정식 재판에 회부했던 박태범 판사, 제1세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시국 사건을 도맡았던 조준희 변호사,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다루면서 “눈물 없이는 상기할 수 없는 ‘권양의 투쟁’”이라며 눈물을 쏟아가며 변호했던 조영래 변호사 등등.

한 교수는 책에서 안기부의 압력 속에서도 양심적 판결을 내리고 변호했던 정의로운 법관들의 이야기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사법부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법과 정의가 무엇인지 물으며 사법부의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법부의 독립성은 헌법기관인 법관 개개인이 스스로 지키려 하지 않으면 지켜낼 방도가 없다. 2007년 1월말 긴급조치 사건 판결문 공개를 둘러싸고 법관의 이름을 포함시킬 것인가가 논란이 되었다. 법관의 이름은 판결문의 일부다.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고 하지 않는가.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다면, 자신이 미처 걷어보라고 말하지 못했던 그 바짓가랑이의 무게가 수십 년 세월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그 양심 위에 드리워 있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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