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아의 음식인류학] 닭갈비를 춘천 대표로 만든 ‘보이지 않는 손’
  • 이진아 | 환경·생명 저술가 (.)
  • 승인 2016.04.14 19:10
  • 호수 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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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것에 작동하는 정치의 원리

얼마 전 종영한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중 인상 깊었던 장면 하나. 고려 말 개혁정치의 아이콘 정도전이 성문 앞에서 연설을 한다. “정치란 무엇입니까? 정치란 분배입니다. 누구에게서 받아서 누구에게 어떻게 나누어주는가, 이게 곧 정치입니다. 이제부터 제가 정치를 해보겠습니다.” 그리곤 수북이 쌓아놓은 토지대장을 불태운다. 지금까지 토지를 나누어주었던 방식, 즉 정치 방식을 싹 무시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나누어주겠다는, 말이 필요 없는 정치적 행동을 보여준 것이다.

 

음식인류학자가 이 장면을 보았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음식인류학의 대표적 명저 중 하나인 <요리, 명품 음식, 그리고 계급(Cooking, Cuisine and Class)>의 저자 존 랭카인 구디 경(Sir John Rankine Goody·1919~2015, 일명 ‘잭 구디’)은 “음식은 생산과 분배 구조, 사회적·우주적 구도뿐 아니라 계급과 정치적 위계질서까지 반영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가 이 장면을 보고 이해했다면 아마도 “그렇지! 먹을 것을 생산하는 기반인 토지를 나누는 게 바로 정치야!”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 연합뉴스

 


정치적 원리 작동해 전국화하는 향토 음식

 

정치에도 여러 수준이 있다. 소소한 인간 집단 내에도 힘의 크기를 견주며 구분하는 정치적 행동이 있고, 좀 더 크게는 한 행정단위인 지방자치단체나 국가 차원에서, 나아가 국제적 규모로도 끊임없이 정치가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잭 구디를 비롯한 많은 음식인류학자가 지적했듯이 음식을 매개로 해서도 다양한 형태와 수준의 정치가 끊임없이 작용한다.

 

아마 한국 사회에서 결혼한 여성 대다수가 체험하는 일이겠지만, 가정 내 대소사로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면 반드시 음식 차리는 일을 두고 의견이 분분해진다. 제사음식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중요한 제사여서 여러 친척이 모이는 경우라면 제사 좀 지내봤다는 집안 아주머니들 간에 서로 “이게 법도다!”라는 주장들이 맞서게 된다. 이럴 경우 주장자들은 대체로 ‘자기 집안’의 제사 방식이 가장 정통성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어서 양보하려 들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중 나이와 경험이 가장 많거나 집안에서 파워가 센 사람의 의견대로 제사상이 차려진다. 제사 상차림을 놓고도 한바탕 세력 겨루기가 벌어진 후 질서가 만들어지는, 명백히 정치적인 과정이 벌어지는 것이다.

 

대부분 민주주의를 채택한 현대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 과정 중 하나가 ‘대의(代議)정치’다. 복잡한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자신의 이해관계를 잘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 대신 정치행동을 하도록 하는 일이다. 지방 수준에서는 지자체 대표를 선출하고 국가 수준에서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기도 한다. 음식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대표를 내세우는 일을 두고 정치적 과정이 생겨난다.

 

이른바 ‘향토 음식’이 대표적인 예다. 황익주 서울대 교수(인류학)는 ‘춘천 닭갈비’를 예로 들어 향토 음식의 이미지가 생성되고 국가적으로 공유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한국 사람이 ‘춘천’이라는 지명을 듣는다면, 아마 두 가지 음식을 떠올릴 것이다. 막국수와 닭갈비다. 막국수는 오래전부터 춘천을 비롯한 강원도 음식의 대표 선수 격이었다. 하지만 닭갈비는 고작해야 1960년대 후반에 등장한 조리법으로, 처음에는 춘천시청 인근 식당에서 팔리던 것이 이제는 전국적인 춘천 대표 브랜드가 된 것이라고 한다.

 

황 교수는 신흥 음식인 닭갈비가 춘천의 대표 브랜드로 떠오르게 된 이면에 작용한 요인을 밝힌다. 주재료인 닭고기의 보급이 확대되었다는 점, 채소를 많이 넣는다든지 다 먹고 난 후 밥을 볶아 먹게 해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비교적 저가의 재료로 푸짐하게 먹을 수 있게 했던 조리법, 그리고 서울 등 대도시에서 자동차로 춘천에 와서 춘천의 향토 음식을 즐기고 가는 중산층의 관광 확대 등등. 닭갈비는 이런저런 요인이 얽히는 정치적 과정을 거쳐 춘천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를 굳혀온 셈이다.

 

‘기무치’와 ‘김치’가 국제무대에서 벌인 각축


정치판에서는 상황 변화에 따라 새로운 스타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미미했던 세력들이 결집해 기존 세력을 밀어내기도 한다. 인도 출신으로 포스트모더니즘 및 글로벌 담론의 대표 주자 중 한 사람인 인류학자 아르준 아파두라이(Arjun Appadurai)는 20세기 후반 이른바 ‘인도의 국민 요리’가 어떻게 형성되고 정착돼왔는지를 설명한다.

 

전통 인도 사회에서는 음식의 종교적인 측면과 생명에 관련된 측면을 강조했지만, 문건으로 조리법이 남겨진 사례는 없었다. 그러다가 16세기 중반 인도 아(亞)대륙의 상부 지배층을 장악해 19세기 중반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지배권을 차지하기까지 연명해갔던 무굴 제국(Mughal Empire·페르시아와 몽골의 후손인 바부르에 의해 세워진 이슬람 정권)의 영향으로 페르시아 음식인 궁중요리가 인도의 요리인 것처럼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판세가 뒤집힌 것은 영어를 쓸 줄 알며 현대식 교육을 받아 지역과 카스트(계급)의 경계를 넘어서는 의식을 가진 중산층 주부들의 수가 늘어나면서부터였다. 이들은 인도 각지의 토착 요리에 대해 알고 싶어 했고, 출판사들은 앞다퉈 인도 요리를 영어로 소개하는 요리책을 내놓았다. 그중 비교적 쉽게 재료를 구할 수 있고 이제는 널리 보급된, 현대식 부엌에서 조리하기 쉬운 요리들이 ‘인도의 국민 요리’로 자리를 잡아가게 됐다. 넓은 지지 기반이 있고, 상황에 따른 수요에 부응할 줄 아는 이가 큰 세력을 갖게 되는 정치판과 전혀 다를 게 없다.

 

음식의 정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국제무대에서 세력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이제는 인터넷에서 ‘김치(kimchi)’를 검색하면 우리의 전통 발효식품 김치에 대한 사진과 정보를 많이 접할 수 있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국제무대에선 김치가 아니라 ‘기무치(kimuchi)’라는 말로 통용됐다. 덥고 습해 발효가 빨리 진행되는 생태적 조건 탓에 발효를 억제해 신맛을 없애는, 진짜 김치의 맛을 전혀 살리지 못하는 일본식 조리법의 기무치가 판을 휘어잡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식품 관련 전문가의 노력으로 이젠 제대로 된 재료를 써서 알맞게 발효시킨 우리의 김치가 국제사회에서 많은 사랑을 받게 됐다. 그 뒤엔 엄청난 이해관계, 즉 ‘먹을 것’ 문제가 달린 세력 각축전이 숨어 있다. 우리의 브랜드가 세계무대에서 많이 팔린다는 것은 그 브랜드 제품을 생산하는 우리의 시스템이 벌어들이는 외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는 ‘먹고 사는 것’을 확보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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