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委의 칼 이번엔 재벌 제대로 겨눌까
  • 송응철 기자 (sec@sisapress.com)
  • 승인 2016.04.21 19:16
  • 호수 1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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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 몰아주기’ 조사 대상, GS·효성·영풍·코오롱·한국타이어·태광·대성그룹 등 줄줄이 거론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전방위적 조사를 벌이고 있다. 최근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앞서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일감 몰아주기’ 혐의를 확인하고 제재 절차에 착수한 것이다. 공정위는 지난 3월21일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에 계열사 부당 지원 행위와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금지 조항을 어겼다는 취지의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총수 일가가 대주주인 대기업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이 지난해 2월 효력을 발생한 이후 처음으로 공정위가 제재에 나선 것이다. 해당 법은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을 대상으로, 총수 일가 지분이 30%(비상장사 20%) 이상인 기업의 내부 거래액이 한 해 200억원 이상이거나, 연매출의 12%가 넘어가는 경우를 규제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관행에 대한 조사에 본격 착수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현대·한진·하이트진로·한화·CJ 조사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제부 변창중씨 소유의 회사 2곳에 일감을 몰아준 혐의를 받고 있다. 현대증권은 지점용 복사기를 임차 거래하는 과정에서 변씨가 지분 80%를 보유한 계열사 에이치에스티를 거래 단계에 추가했다. 이른바 ‘통행세’로 부당이득을 취하게 한 것이다. 에이치에스티에서는 2014년 총매출 99억원의 70%에 해당하는 69억원이 현대그룹 계열사들과의 거래에서 나왔다. 변씨(40%)를 비롯한 오너 일가 지분율이 100%인 현대로지스틱스에서도 택배 송장용지 납품업체인 쓰리비에 부당하게 일감을 몰아준 정황이 포착됐다.

공정위는 현재 다른 그룹들에 대한 조사도 진행하고 있다. 한진·하이트진로·한화·CJ그룹 등이다. 한진그룹에선 싸이버스카이와 유니컨버스가 대상이 됐다. 기내 면세점 통신판매업체인 싸이버스카이는 그동안 그룹 계열사들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매출을 올려왔다. 2014년 매출 49억원 중 81.5%에 달하는 40억원가량이 ‘집안’에서 나왔다. 이 회사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총괄부사장과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차녀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지분을 33.3%씩 100% 보유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싸이버스카이의 일감 몰아주기 문제가 도마에 오르자, 그해 11월 대한항공이 세 자녀의 지분을 62억6700만원에 전량 취득했다. 공정위는 2014년 이전 문제에 대한 처리 방안을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조씨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유니컨버스는 여전히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올라 있다. 이 회사는 2014년 매출의 78.1%(총매출 319억원-내부 거래액 249억원)를 내부 거래를 통해 올렸다.

하이트진로그룹에선 맥주 냉각기 제조업체인 서영이앤티가 비정상적인 내부 거래로 매출을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가 지분 99.91%를 소유한 이 회사의 2014년 전체 매출 중 40.1%(203억원)를 그룹 계열사들이 책임져줬다. 한화그룹에선 경영권 승계의 핵심 기업으로 꼽히는 한화S&C가 조사 대상이 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가 지분 50%를,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와 삼남 김동선 한화건설 과장이 각각 2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이 회사의 지난해 내부 거래율은 54%(총매출 3987억원-내부 거래액 2158억원)였다. CJ그룹에 대해선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동생인 재환씨가 지분 100%를 보유한 광고대행사 재산커뮤니케이션즈를 들여다보고 있다. 공정위는 이 회사가 CJ CGV가 운영하는 멀티플렉스 극장 CGV에서 상영되는 광고 물량을 독점적으로 수주한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서울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현대그룹 사옥(왼쪽 사진)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연합뉴스


규제 대상 못 벗어난 그룹들 여전히 다수

이처럼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에 본격적으로 칼을 빼든 모습이다. 사실 일감몰아주기법 개정안이 시행된 건 2014년 2월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신규 내부 거래에만 제동을 걸고 기존 내부 거래에 대해서는 1년간 적용을 미뤄왔다. 대기업들에 ‘시정’할 시간을 준 셈이다. 이후 1년 사이 대기업들은 저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탈출을 위한 노력을 해왔다. 여기엔 계열사 간 사업구조 재편이나 회사 청산, 지분 매각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됐다. 그 결과, 대다수 기업이 규제 대상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여전히 불씨를 털어내지 못한 그룹이 적지 않다. 공정위 안팎에선 향후 이런 그룹들을 대상으로 조사가 진행될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GS·효성·영풍·코오롱·한국타이어·태광·대성그룹 등이 바로 그런 경우다. SK그룹도 이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선 GS그룹의 경우, 규제 대상 계열사가 가장 많은 대기업 중 하나다. GS그룹 내에선 시스템 통합(SI)업체인 GS아이티엠이 먼저 눈에 띈다. 18명의 GS그룹 3·4세들이 지분 93.34%를 소유한 이 회사는 지난해 총매출 2082억원 가운데 53.1%에 해당하는 1107억원이 계열사들과의 거래에서 나왔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동생 허정수 GS네오텍 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한 전기공사업체 GS네오텍은 4980억원 중 467억원(9.3%)이, 역시 허씨 일가 지분이 100%인 부동산 임대업체 승산도 340억원 중 140억원이 내부 거래를 통해 발생했다. 그 밖에 화학제품 제조업체인 켐텍인터내셔날과 시설관리 용역업체인 엔씨타스, 담배 수입업체 옥산유통, 부동산 임대업체 보헌개발 등도 공정위 ‘살생부’에 회사명을 각각 올리고 있다.

효성그룹에선 우선 현금입출기(ATM) 제조업체 노틸러스효성이 규제 대상 명단에 올라 있다. 이 회사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장남인 조현준 효성 사장과 차남 조현문 변호사, 삼남 조현상 효성 부사장 등 삼형제가 지분을 14.13%씩 모두 42.39% 보유하고 있다. 노틸러스효성의 지난해 내부 거래율은 46.5%(총매출 5064억원-내부 거래액 2355억원)였다. 전년인 2014년의 33.8%(4335억원-1466억원)에 비해 내부 거래 비중과 규모가 늘어났다. 그 외에 조씨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신동진과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 공덕개발 등도 규제 대상이다. 이들 회사는 그동안 그룹 계열사에 사옥을 임대하며 안정적인 매출을 올려왔다.

영풍그룹도 공정위 사정권 내에 있다. 건물관리업체인 영풍개발, 유압기기 제조업체인 영풍정밀, 종합상사인 서린상사, SI업체인 서린정보기술 등이 대상이다. 특히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의 두 아들 세준·세환씨와 딸 혜선씨 등 오너 일가 지분이 66%인 영풍개발은 매년 전량에 가까운 매출을 그룹 계열사들이 밀어줬다. 이 회사는 지난해에도 내부 거래율이 무려 93.8%(총매출 24억원-내부 거래액 23억원)에 달했다. 오너가의 지분율이 43.16%인 영풍정밀의 경우, 2011년부터 매년 내부 거래 비중과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내부 거래율은 19%(727억원-138억원)로 여전히 규제 범위 안에 머물러 있다.

코오롱그룹에선 컴퓨터 시스템 서비스업체인 코오롱베니트가 거론된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지분 49%를 보유한 이 회사는 지난해 계열사들의 지원으로 73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해 전체 매출 3697억원의 19.8%에 해당하는 규모다. 처음부터 내부 거래율이 높았던 건 아니다. 당초 2%대에 불과하던 이 회사의 내부 거래율은 이 회장의 지분 취득 이듬해인 2007년 60%(605억원-366억원)까지 치솟았다. 또 다른 규제 대상 기업인 코오롱환경서비스도 비슷하다. 2006년 이 회장이 지분 40%를 매입한 이후 계열사 일감이 집중됐다. 지난해 이 회사는 내부 거래율이 31.6%(1031억원-326억원)였다. 그 밖에 이 회장이 지분 50%를 보유한 엠오디의 내부 거래율도 36%(806억원-290억원)에 달했다.

한국타이어그룹도 유력한 조사 대상 후보다.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아랑곳 않고, 매년 규제 대상 계열사의 내부 거래 비중과 규모를 오히려 늘려왔기 때문이다. SI업체 엠프론티어와 타이어몰드업체 MK테크놀로지가 그렇다. 이들 회사의 최대주주는 조양래 한국타이어그룹 회장의 장남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과 차남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이다. 우선 엠프론티어는 2013년 내부 거래율이 51%(781억원-400억원)에서 73%(991억원-728억원)로 상승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87%(1292억원-1125억원)까지 치솟았다. MK테크놀로지도 2013년 90%(448억원-404억원)에서 2014년 93%(537억원-503억원)로, 지난해에는 97.4%(684억원-667억원)로 올라갔다. 이외에 오너가 지분율이 100%인 건물임대업체 신양관광개발도 매출을 그룹 계열사에 사실상 의존하다시피 하고 있다.

태광그룹도 GS그룹에 못지않게 규제 대상 계열사가 많다. 티브로드홀딩스와 메르뱅, 바인하임, 서한물산, 세광패션, 에스티임, 티시스, 한국도서보급 등이 해당된다. 이 가운데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아들 현준씨가 지분 20.72%를 보유한 티브로드홀딩스는 상장을 준비 중이다. 만일 이 회사가 상장에 성공할 경우 일감 몰아주기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반면 오너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SI업체 티시스와 이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서한물산은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해 내부 거래율이 각각 76.6%(2117억원-1623억원)와 84.3%(84억원-71억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 밖에 세광패션과 실내건축업체인 에스티임과 주류도매업체인 바인하임·메르뱅 등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SK, C&C 지분율 30% 밑으로 줄이려 해

대성그룹에선 정보통신(IT) 서비스업체인 에스씨지솔루션즈와 가스시설업체 에이원, 건설업체 대성이앤씨 등이 규제 대상 기업으로 거론돼왔다. 그러나 대성그룹의 경우 경영권 승계 작업이 마무리돼 사실상 계열 분리와 다름없는 상황이다. 고(故) 김수근 창업주의 장남 김영대 회장이 대성합동지주, 차남 김영민 회장이 서울도시개발, 삼남 김영훈 회장이 대성홀딩스를 통해 각각의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형제들이 보유한 교차지분 때문에 공정거래법상 ‘한집안’으로 묶여 있다. 만일 삼형제가 지분 출자구조를 해소하고 계열 분리를 하게 되면 대성그룹은 자산 규모 5조원 이상의 대기업군에서 제외된다. 이 경우 대성그룹은 일감몰아주기법의 규제를 받지 않게 된다.

SK그룹의 경우, SI업체 SK C&C가 규제 대상으로 회자돼왔다. 당초 이 회사는 최태원 SK그룹 회장(32.92%)을 비롯한 오너가가 지분 43.45%를 보유해왔다. SK그룹 계열사들은 이 회사에 2014년 총매출 1조9741억원 중 9151억원(46.3%)을 몰아줬다. 그러나 SK C&C가 지난해 지주사인 SK와 합병하면서 최씨 일가의 지분율은 30.86%로 낮아졌다. 여전히 규제 범위 내에 머물러 있는 탓에 SK 측은 지분율을 30% 밑으로 줄이려고 애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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